[허영섭의 대만이야기] 쑹추위의 3번째 도전, 대만 총통선거 ‘새 변수’
[아시아엔=허영섭 이데일리 논설실장] 내년 1월로 예정된 대만 총통선거에 쑹추위(宋楚瑜) 친민당 주석이 출마를 선언함으로써 판세가 요동치는 모습이다.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는 민진당 차이잉원(蔡英文) 후보에 대한 높은 지지도는 여전하지만 쑹추위와 집권 국민당의 훙슈주(洪秀柱) 후보와의 연합 여부에 따라서는 판세를 뒤집을 수 있는 가능성이 아직은 충분하기 때문이다.
현재 개별적인 지지도를 따진다면 차이잉원이 압도적인 우세를 지키는 상황에서 새로 레이스에 뛰어든 쑹추위가 2위, 훙슈주가 3위로 나타나고 있다. 친민당이 국민당에서 갈라져 나온 소수정당이긴 하지만 잠재적인 지지도가 낮지 않음을 보여준다. 다른 한편으로는 훙슈주의 갈팡질팡하는 모습에 등을 돌린 보수 성향의 유권자들이 쑹추위 쪽으로 관심을 돌리고 있는 결과다. 뿐만 아니라 쑹추위는 차이잉원의 지지표도 약간은 잠식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쑹추위는 이미 여러 차례나 총통선거에 출마했던 ‘올드 보이’다. 나이도 올해 73세로, 훙슈주(67세)나 차이잉원(59세)보다 훨씬 많다. 지난 2000년과 2012년 선거에 나섰던 적이 있으므로 이번 선거가 총통 자리를 향한 3번째 도전인 셈이다. 2000년 선거에서는 36.8%의 적잖은 득표율을 올렸으나 민진당의 천수이볜(陳水扁)에게 아깝게도 당선자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그 중간의 2004년 선거에서는 당시 국민당의 롄잔(連戰) 주석과 러닝메이트를 이뤄 부총통 후보로 함께 나서기도 했지만 역시 고배를 들고 말았다.
국립정치대 출신으로 미국에 유학해 버클리 캘리포니아(UC 버클리)와 가톨릭대학을 거쳐 조지타운대에서 정치철학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했을 때까지만 해도 그는 촉망받는 정치 신인이었다. 당시 장징궈(蔣經國) 총통의 통역을 맡으면서 정계에 입문한 그는 1994년 ‘대만성 성장’(省長)에 오르기까지 출세 가도를 달렸다. 하지만 그가 과거 권위주의 시절 정부 홍보를 총괄하는 신문국장을 지내면서 언론자유를 억눌렀다는 의혹이 지금까지도 큰 약점으로 꼽힌다.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잡지들의 발행을 중단시켰으며, 언론매체에서 만다린 외에 하카(客家)나 호클로(원주민 언어) 사용을 전면 금지시키기도 했다. 그에 대한 정치적인 평가가 크게 엇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장징궈의 타계 이후 리덩후이(李登輝) 총통의 국민당 체제에서 진로가 막히게 되자 뛰쳐나와 새로운 정당을 결성한 자체도 그렇게 칭찬받을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몇 차례 선거를 치르면서 이러한 약점들이 유권자들로부터 대부분 평가를 받았다는 게 쑹추위 진영의 주장이다. 더욱이 여당 후보로 추대된 훙슈주가 자신의 정견을 주장하는 과정에서 잦은 말 실수로 지지표를 깎아먹는 상황에서 쑹추위가 보수진영의 또다른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져가는 양상이다. 이미 국민당 내부에서도 쑹추위 지지를 위해 탈당 움직임이 이어질 정도다.
총통 선거가 이처럼 3파전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가장 큰 관심은 쑹추위와 훙슈주와의 연합작전이 과연 어떤 방식으로 성사될 것이냐 하는 점이다. 지금으로선 어느 한쪽이 상대방을 지지하고 후보 대열에서 벗어나는 식으로는 돌파력이 부족하다. 결국 두 사람이 총통과 부총통 후보로 러닝메이트를 이뤄야 하는데, 누가 마지막에 총통 후보를 양보하느냐에 관심이 쏠린다.
차이잉원 후보는 현재 가오슝 시장인 천추(陳菊)를 러닝메이트로 선택할 것이라는 추측이 적지 않았으나 일단 그를 선대본부장에 임명해 놓은 상태다. 대만 역사에서 여성이 최초로 총통에 오를 가능성이 다분해진 선거를 맞아 부총통 후보까지 여성으로 러닝메이트를 이룬다는 것이 오히려 심적인 부담으로 작용했을 법하다.
현재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는 차이잉원 진영에 훨씬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다. 더욱이 대만 정부가 최근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 내용을 개편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고교생들의 집단 반발은 양안관계에서 대만의 독립을 내세우는 민진당의 기본강령과도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학생들은 교과서 개편 내용이 중국 중심적인 데다 그 승인 과정이 불투명하다며 문교부 청사 진입을 시도하는 등 적극 반발하는 모습이다.
사회분위기는 민진당 차이잉원에 유리
민진당으로서는 당사자인 고교생들이 선거권을 갖고 있지는 않다 하더라도 이 기회를 살린다면 득표를 더 늘릴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없지 않을 것이다. 지난해 대학생들이 국회를 점거했던 ‘해바라기 시위’ 사태로 지방선거에서 우위를 차지했던 상황이 비슷하게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차이잉원의 경우 양안관계 정책으로 내세운 ‘현상 유지’(status quo) 공약에 의해 스스로 발목을 잡힐 개연성도 적지 않다. 민진당의 노선과는 기본적으로 어긋나기 때문이다. 설사 선거에서 이 공약으로 당선되어 총통에 오른다고 해도 양안관계를 현실적으로 수정해가는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을 겪어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나의 중국’을 요구하는 중국과의 관계에서 대만의 위치를 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생기는 필연적인 고민이기도 하다.
한편, 앞서 3명 외에도 과거 민진당 주석을 지낸 스밍더(施明德)가 무소속으로 출마를 선언한 상태다. 그는 “쑹추위가 당선될 경우 차이잉원의 당선보다 훨씬 걱정스런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며 두 사람에 대해 모두 공격의 칼날을 세우고 있다. 그러나 무소속 출마의 경우 유권자 27만명의 서명을 받아야만 후보 등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스밍더가 이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