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만 ‘군복무 단축’ 속앓이
한국과 대만의 국방정책을 비교해 보면 서로 비슷한 고충이 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최근 양국에서 각각 추진되던 장병 충원 방식의 전환 및 복무기간 단축 문제가 거의 동시에 현실적인 장벽에 부딪친 것이 두드러진 사례입니다. 한편으로는 스스로 파놓은 함정에 빠져든 모양새입니다.
대만의 경우 2015년부터 현재의 징병제를 전면 폐지하고 모병제로 전환키로 했다가 시행 시기가 두 해나 연기되었으며, 우리는 장병들의 의무 복무기간을 현행 21개월에서 18개월로 단축하기로 약속했으나 역시 추진과정에서 정책 변경이 불가피해진 상황입니다.
국토가 분단됨으로써 대만은 중국과, 우리는 북한과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기본 구도부터가 비슷합니다. 대만은 중국의 잠재적인 무력 위협에 대비해야 하며, 우리도 북한의 도발 가능성에 늘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마냥 위기상황만을 내세우며 대치 국면으로 몰아가서도 안 된다는 것이 양국이 처한 고민의 공통된 출발점입니다. 대만의 경우 중국과의 양안(兩岸) 교류정책이 궤도에 올라 있고 우리도 기본적으로 한 핏줄인 북한과의 화해·협력을 이뤄나간다는 노선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선거 공약이 너무 앞질러 나갔다는 점입니다. 대만의 모병제 공약은 지금의 마잉지우(馬英九) 총통이 지난 2008년 대선에서 내세운 핵심 공약입니다. 모병제 방식의 직업군인 제도로 전환함으로써 현재 27만5,000명 규모로 유지되는 육·해·공군 병력을 21만5,000명 수준으로 줄이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대만은 이미 천수이볜(陳水扁) 총통의 민진당 집권시절이던 2003년 처음 모병제를 실시한 이래 계속 그 인원을 늘려 왔습니다. 군 복무 기간도 당시의 20개월에서 2009년에는 12개월로 줄어들었고, 2011년부터는 다시 10개월로 줄어든 상태입니다.
대만이 이처럼 군 복무 기간을 획기적으로 줄인 데다 모병제로 전환한다는 방침을 세운 배경에는 징집 대상자들로부터 환심을 사려는 의도가 깔려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양안간 경제교류 활성화로 현재 대륙에 상주하는 대만 기업인이 무려 200만 명에 이를 만큼 전쟁에 대한 위기감이 상당히 줄어든 것도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중국에서 대만을 겨냥하고 있는 미사일만 해도 1,700기에 이른다는 엄연한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대만이 미국으로부터 F-16C, 16D 등 최신예 전투기 구입을 타진하는 가운데 최근 조기경보기 2대를 새로 인도받은 데서도 이러한 위기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경제교류가 활발해졌다고 해서 국방 문제에 소홀할 수 없다는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겠지요.
결국 이런 처지에서 직업군인 지원자가 기대 수준에 크게 못 미치게 되자 징병제 폐지 시기를 2017년으로 연기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올해만 해도 2만8,000명을 모병으로 충원한다는 목표를 세웠으나 상반기 중 신청이 들어온 숫자가 기껏 460여명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지난 8월에는 제대를 며칠 앞둔 사병이 군기 교육을 받다가 숨진 돌발사건으로 군에 대한 불신감이 더욱 팽배해진 마당입니다. 국방장관이 즉각 해임되었고 소속 부대 지휘관 18명이 무더기로 재판에 회부되었어도 여론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따라서 대만 정부로서는 군 병력의 공백사태를 초래할지도 모르는 모병제를 그대로 밀고나갈 수는 없었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군 복무 기간 단축을 둘러싸고 논란이 빚어지는 우리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복무 기간을 줄이더라도 부사관을 증원한다면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판단에서 제시된 대선 공약이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만이 아니라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후보도 똑같이 꺼내들었던 카드였지요.
하지만 복무 기간을 줄일 경우 2만명 이상의 전력 공백이 생기게 되어 이를 부사관으로 대체하는 과정에서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대두된 것입니다. 여기에 소요되는 5,000억원 이상의 예산조달 문제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결국 국방부가 이를 중장기 과제로 넘김으로써 새 정부 임기 내에는 거의 실현되기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아직 여건이 마련되지 못했다는 것이 김관진 국방장관의 설명입니다. 여건이 마련되지 못했다면 아무리 중요한 공약 사항이라도 마땅히 시행을 연기하거나 내용이 수정돼야만 합니다. 공약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게 잘못이 아니라 애초에 무리한 공약을 내세운 것이 잘못이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논란이 한층 가열되고 있는 기초연금 공약에서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의 재정운용 여건상 65세 이상 노인들 모두에게 다달이 20만원씩 기본 생활비를 지급한다는 자체가 과욕이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국민연금과 연계하느냐의 여부는 부차적인 문제일 뿐입니다.
군 복무 기간 축소나 기초연금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 정부로서는 결코 변명의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약속을 지키려다가 국가적으로 더 큰 문제가 벌어질 소지가 분명하다면 당장 비난을 받더라도 약속을 포기하는 것이 오히려 책임있는 자세입니다.
현재 대만 정부도 모병제 공약의 연기로 야당의 집중 포화를 맞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국방 공백을 막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국방정책에 있어 검증되지 못한 어설픈 공약을 내세웠다가 다시 주워 담아야 하는 양국의 사정을 지켜보며 선거 공약의 한계를 실감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