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중국 전승절 행사로 때아닌 ‘역사논란’ 몸살
[아시아엔=허영섭 이데일리 논설실장]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이라는 역사적인 시점을 맞아 대만 사회가 ‘역사 논쟁’의 홍역을 앓고 있다. 이미 고등학교 역사교과서 개편 시도와 관련하여 학생들의 문교부 청사 난입 등 집단 반발에 부딪친 상황에서 이러한 논쟁은 대만 정부의 정통성 문제로까지 확대되는 조짐이다. 대만해협 건너편의 중국에서 성대한 전승절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인 상황이다.
이번 논란의 직접 당사자들이 리덩후이(李登輝) 전 총통과 롄잔(連戰) 전 국민당 주석 등 역대 국가 지도자들이라는 사실이 더욱 심각하다. 여기에 내년 1월로 다가온 차기 총통선거와 맞물려 훙슈주(洪秀柱)·차이잉원(蔡英文) 등 여야 후보까지 논란에 가세하고 있다. 마잉지우(馬英九) 총통이 사태 수습에 나서고 있지만 집권 말기에 처한 입장에서 힘에 부친 듯한 모습이다.
논란을 촉발한 장본인은 리덩후이 전 총통이다. 최근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만은 제2차 대전에서 일본에 맞서 싸운 것이 아니라 일본을 위해 싸웠다”고 언급한 것이 불씨였다. “대만과 일본은 한 나라였으며, 나는 일본을 조국으로 생각한다. 위안부 문제도 더 이상 거론해서는 안된다”고까지 말했다. 역사적 사실 여부를 떠나 과거 12년 동안 대만 총통을 지낸 입장에서 개인적인 견해를 앞세운 것이 문제였다.
그는 이 발언이 문제가 된 뒤에도 “대만은 일본에 속해 있었으므로 일본에 저항하는 전쟁은 없었다. 70세가 넘은 사람 아무에게나 물어보라”라면서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오히려 “그때 우리 두 형제가 일본을 위해 싸울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까지 말한다. 그가 당시 이와사토 마사오(岩里政男)라는 이름으로 육군병으로 찹전했으며, 그의 친형인 리덩친(李登欽)도 해군으로 싸우다가 필리핀 전투에서 전사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얘기다.
이에 대해 대만 각계에서는 “일본을 조국이라 생각한다면 대만 국민으로서의 신분증을 반납하라”며 ‘국가에 대한 배신’이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마잉지우 정부도 “이런 언급은 일본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나려던 대만인들의 투쟁을 부정하는 것”이라며 질책하고 나섰다. 일각에서는 리덩후이가 전직 국가원수로서 누리는 햬택을 전면 박탈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거론될 정도다.
이러한 발언은 현 대만 정부의 정통성까지 건드린다는 점에서 더욱 미묘한 마찰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제2차 대전 당시 일본에 맞서 싸운 주체가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 세력이며, 현 중화민국 정부가 그 법통을 이어받고 있다는 것이 국민당 정부의 확고한 인식이다. 이에 반해 리덩후이의 발언은 지금의 국민당 정부는 국공내전의 패배로 1949년에야 대만으로 쫓겨왔기 때문에 원래 대만의 역사와는 관련이 없다는 인식을 대변한다.
이를테면, 대만의 역사가 대륙에서와 같은 배경을 지니느냐 하는 물음까지 함축하고 있다는 얘기다. 양안관계에 있어 국민당의 친(親)중국 정책과는 달리 대만의 독립을 추구하는 민진당의 노선을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차기 총통선거에서 가장 높은 지지도를 보이고 있는 민진당 차이잉원 후보가 “리덩후이도 개인적인 입장을 애기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감싸고 도는 것이 그런 까닭이다.
올해 92세로 원로 지도자인 리덩후이는 영유권 분쟁을 빚고 있는 동중국해의 댜오이타이(釣魚臺)에 대해서도 “대만 영토가 아니라 일본 영토”라고 서슴없이 내세운다. 지난달 일본을 방문했을 때도 똑같은 발언을 되풀이하며 대만에서 부르는 ‘댜오이타이’라는 이름은 아예 꺼내지도 않았다. 일본식으로 ‘센카쿠(尖閣) 열도’라고만 지칭했을 뿐이다.
이에 대해 마잉지우 총통은 미국 <워싱턴 타임즈>의 ‘편집지에게(op-ed)’ 난에 장문의 기고를 통해 반박에 나섰지만 도리어 역풍을 맞고 있는 분위기다. 리덩후이의 발언이 잘못되기는 했지만 현직 총통이라는 위치에서 외국언론 기고를 통해서까지 집안싸움을 드러내는 것이 과연 온당한가 하는 것이다. 기고한 신문이 <뉴욕 타임즈>나 <워싱턴 포스트>가 아니라는 사실도 그렇거니와, 그의 직위가 편집진의 실수로 ’President, Republic of China‘에서 ’Republic of‘가 누락된 채로 인터넷에 나감으로써 더욱 일이 난처하게 꼬이게 됐다.
마잉지우 정부를 더 난감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중국의 전승절 행사에 참석하겠다는 롄잔 전 국민당 주석의 방침이다. 제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데는 장제스 군대의 공헌이 컸다는 점에서 중국이 요란하게 전승절 행사를 준비하는 데 대해 마땅치 않게 생각하던 마당에 마잉지우로서는 뒤통수를 맞은 꼴이다. 롄잔이야말로 최근까지도 그가 가까이 의지하던 정치적 동료이자 선배가 아니던가.
다시 말해서, 중국이 성대하게 전승절 행사를 마련하고 있는 자체가 넌센스라는 게 미잉지우 정부의 입장이다. 당시 마오쩌둥(毛澤東)의 공산당 군대가 대일 전쟁에 참여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잠재적으로는 오히려 국민당군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있었다는 것이 국민당의 일관된 생각이기 때문이다. 카이로 회담에 참석한 주인공도 장제스였다. 마잉지우 총통이 양안관계에 있어 친중국 정책을 표방하면서도 전승절과 관련한 기본적인 역사 인식에 있어서만큼은 양보하지 않고 있는 이유다.
물론 이에 대해서도 반론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과거 국민당 정부가 일본과 맞서 싸운 것은 대륙에서의 일이었을 뿐이라는 지적이 그것이다. 그것을 지금에 와서 대만의 역사와 직접 결부시키려는 것은 온당치 않다는 것이다. 국민당은 국민당이고, 대만은 대만이라는 주장이다. 사람마다 정치적 위치와 입장에 따라 분열된 역사 인식을 보여준다. 그야말로 한편으로는 빈곤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과잉된 역사 인식 시대에 처한 셈이다.
이처럼 의견이 혼재된 가운데서도 국민당 총통 후보인 홍슈주 진영에서는 은근히 롄잔의 베이징 방문 계획을 지지하는 분위기다. 양안관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견해를 내세운다. 정부의 대륙위원회가 “대만 국민 누구라도 일본에 저항했던 중화민국 당시의 역사적 사실의 바탕 위에서 처신하기 바란다”는 경고를 발하고 있지만 제대로 먹혀들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더 큰 인식의 괴리는 제2차 대전에 대한 일반의 기억이 이러한 정치적인 논란과는 달리 실제적인 피해의식으로 전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당시 일본에 의해 강제로 전쟁에 끌려간 사람들만 해도 20만명 이상에 이르렀고, 이 가운데 3만명 이상이 전쟁터에서 사망했다. 특히 전쟁 말기에 이르러 연합군에 의한 타이베이 대공습은 더욱 참혹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 과정에서 주민 3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고 1만명 안팎이 다쳤다. 국민들이 ‘역사의 정의’를 부르짖는 배경이다.
그런 점에서, 대만에서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으로도 쉽게 끝날 성질은 아닌 것 같다. 흔적을 지우려고 할수록 더욱 아픈 상처로 되살아날 것이기 때문이다. 대만 국민들이 역사의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싸움은 끊이지 않고 이어질 것이다. 오늘날 대만 사회가 당면한 엄연한 현실이자 비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