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섭의 대만 이야기] ‘중화민국’ 국호 둘러싼 국민당 vs 민진당의 ‘정통성 논쟁’
[아시아엔=허영섭 <이데일리> 논설주간] ‘중화민국’이라는 국호(國號)는 과연 타당한가. 요즘 대만에서 펼쳐지는 역사논쟁에서 핵심을 이루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단순히 역사적 사실 관계를 따지는 차원을 넘어 대만의 정체성을 확인하자는 논쟁이다. 내년 1월로 예정된 차기 총통선거를 놓고 승부를 겨루는 국민당과 민진당 간에 가장 중요한 이슈로 떠오른 게 또한 이 문제다. 보수성향 학자들과 진보 학자들이 다툼을 더욱 확대시키고 있다.
이를테면, 지금의 대만이 1911년 신해혁명의 성공으로 이듬해 출범한 중화민국과 역사적 연속성을 지니느냐의 여부를 가리자는 것이 그 핵심이다. 현재의 국호가 타당하지 않다면 바꿔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된다. ‘대만 공화국’, 또는 ‘포모사 공화국’이라는 이름이 대안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이 논쟁은 중국과의 통일정책이 옳은지, 아니면 대만의 독립을 추구하는 정책이 옳은지의 문제와도 연관된다.
국민당 측을 거드는 보수 학자들은 당연히 지금 대만이 쑨원(孫文)의 혁명세력이 세운 중화민국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주장한다. 장제스(蔣介石) 시절이던 1949년 국공내전의 패전으로 대만으로 쫓겨왔을망정 여전히 그 명맥을 잇고 있다는 논리다. 따라서 중화민국이라는 국호를 사용하는 데 있어서도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국민당 정부가 대만으로 옮겨와서도 벌써 60년 이상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그러나 민진당과 진보성향 학자들은 중화민국의 역사적 실체에 대해서부터 의문을 제기한다. 임시총통인 쑨원에 이어 위안스카이(袁世凱)가 초대 총통으로 취임하면서 중화민국의 건국 이념이 좌절됐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실제로 그때부터 중국 대륙이 군벌시대로 돌입했으며, 결국 국공내전을 거쳐 중화인민공화국의 탄생으로 이어지게 된다. 중화민국이라는 국호가 일찌감치 의미를 잃어버렸다는 것이 이들의 인식이다.
설사 제2차 대전이 끝나고 카이로 및 포츠담선언에 의해 중화민국이 승전국의 지위를 누리면서 존재감을 과시했다고 해도 국민당 정부가 마오쩌둥(毛澤東)의 인민해방군에 패배해 대만으로 물러나면서는 더 이상 명맥을 논하기 어렵게 됐다고 진보 학자들은 주장한다. 그 뒤에 이어지는 유엔 축출(1971년)과 미국과의 단교(1978년)도 그런 사실을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1992년 당시 리덩후이(李登輝) 총통은 본토탈환 의지를 공식 포기함으로써 대륙과의 연관성도 끊어지게 된다.
이런 일련의 주장에 대해 국민당 측에서도 반박의 여지가 없지는 않다. 중국공산당 사이에 이뤄진 이른바 ‘1992년 합의’에 의해 대만도 나름대로 중국을 대표한다는 개념이 아직 살아 있음을 지적한다. 대만이 국가로서의 역사적 연원을 중화민국에 두고 있다는 주장이다. 최근 주리룬(朱立倫) 주석이 훙슈주(洪秀柱)를 대신하여 총통 후보로 선출되면서 수락 연설을 통해 ‘중화민국’을 10차례도 넘게 언급하면서 ‘대만’이라는 표현은 단 한 차례도 쓰지 않은 데서도 이러한 인식이 엿보인다.
그러나 현실적인 장벽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중화민국이라는 국호를 인정한다 치더라도 국제사회에서 통용될 수 없다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내세우는 중국의 반대 때문임은 물론이다. 국제사회가 이 원칙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그것이 곧 대만이 중국의 일부분임을 인정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중화민국이라는 이름을 앞세워서는 국제기구에서의 활동이 제약을 받기 마련이다.
대만이 올림픽에 참가하면서 ‘차이니즈 타이베이(中華臺北)’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2009년부터 세계보건총회(WHA)에 옵저버로 참석하면서도 마찬가지다.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된 명칭은 ‘대만·펑후(澎湖)·진먼(金門)·마쭈(馬祖) 개별관세지역’이다.
대만의 최대 우방인 미국도 대만을 보호하기 위해 법을 만들면서 ‘중화민국’이 아닌 ‘대만’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대만 관계법(Taiwan Relations Act)’이 그것이다.
이처럼 중화민국이라는 국호가 현실적으로도 사문화되어 버렸다면 굳이 고집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는 주장이 팽배하다. 민진당 내에서는 내년 총통선거와 함께 실시되는 입법원 선거에서 개헌이 가능한 3분의 2 이상의 의석을 확보할 경우 헌법을 고쳐 이를 관철시켜야 한다는 견해가 적지 않다. 현재 차이잉원(蔡英文) 후보가 양안정책에서 ‘현상 유지’를 내세우고 있는 것은 보수성향의 유권자들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의도일 뿐이다
점차 대만 사회의 주류로 떠오르고 있는 신세대들도 중화민국이란 국호에 대해 그렇게 우호적인 분위기가 아니다. 자신들의 정체성을 ‘중화인’이 아닌 ‘대만인’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을 말해준다. 지난해 마잉지우(馬英九) 정부가 중국과의 서비스협정 체결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대학생들의 ‘해바라기 시위’가 일어났고, 최근에도 정부의 역사 교과서 개편 작업에 반발해 고교생들의 대규모 시위가 일어난 것이 이러한 의식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중국과의 관계를 부정하는 이들의 역사 인식은 과거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대만이 명나라 때부터 중국에 복속됐다고 하지만 대만에 식민지를 건설했던 네덜란드나 스페인처럼 새로운 정복자로 군림했을 뿐이라는 논리를 편다. 대만 원주민들의 혈통적 뿌리가 중국 대륙이 아니라 필리핀 열도라는 사실과 언어, 종교, 풍습 등이 다르다는 점에서도 대륙과의 일체감은 부족하다.
그렇다고 국민당을 따라 본토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대만으로 건너왔다는 사실까지 신세대들이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대륙에서 적잖은 사람들이 건너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이 대만에 정착해 새로운 생활방식을 개척했다고 이들은 받아들인다. 당시 국민당 군대를 따라 대만으로 넘어온 외성인(外省人)들이 최소 100만명, 많게는 200만명으로까지 추산된다.
본토에서 건너온 당사자들의 생각은 물론 다를 수 있다. 고향을 등지면서까지 중화민국이라는 이름을 지키려 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이미 상당수가 세상을 등졌고, 남아 있는 사람들도 노령화되면서 여론 형성층에서 밀려나는 추세다. ‘대만 민족주의’가 싹트는 가운데 중화민국이라는 이름이 계속 존속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