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감시와 사찰’의 역사···1825년 ‘데카브리스트의 난’에서 1917년 10월혁명까지

1825년 12월 14일 니콜라이 1세 즉위식을 틈타 귀족출신 장교들이 전제정치 타도를 외쳤다. 실패한 봉기로 ‘데카브리스트의 난’이다. 


섣부른 행동이 탄압을 초래하다

[아시아엔=김중겸 치안발전포럼 이사장, 경찰청 전 수사국장] 1825년 12월 14일 니콜라이 1세 즉위식을 틈타 귀족출신 장교들이 전제정치 타도를 외쳤다. 실패한 봉기, ‘데카브리스트의 난’이다.

피비린내 속에서 출발한 정권. 프랑스처럼 왕과 왕비가 목 잘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엄습했다.

싹부터 잘라야지! 검열법 제정했다. 황제통치를 비판하는 출판물을 처벌했다. 패배할 게임 시작했다.

 

1826년 러시아 공안사찰요원들이 반체제 아지트를 급습해 조사하고 있다.

“공안조직 만들어 더욱 더 옥죄자”

1826년 7월 15일 황제직속 관방3부 출범시켰다. 황제가 요원 임면과 활동을 직접 관장했다.

반체제그룹을 황실옹호세력으로 교화하는, 신뢰와 존경 받는 도덕의사道德醫師가 되라. 황제의 국내대사가 되어 황제시책 홍보하라고 했다.

모두 5과로 하여 업무를 배당했다.

1과; 반체제 및 혁명사상 사상 단속
2과; 통화위조, 종교이단, 농노, 살인, 교도소
3과; 외국인 감시, 해외정보 수집
4과; 농촌과 농민 감시, 분쟁, 공무원감찰
5과; 출판물, 연극대본 사전검열

황제는 보고서를 정독, 세세하게 지시했다. 유럽의 헌병을 자임하며 혁명을 분쇄해 온 황제의 관심은 정치활동 염탐(political spying)에 있었다.

국민의 원성이 자자한 공무원 부정부패 적발도 뒤로 밀렸다. 탄압의 도구로 변모했다.

1827년 창설된 러시아 군경찰. 헌병부대에서 엘리트를 골라 충원했다.

헌병도 차출하고

1827년 4월 28일. 헌병으로 군경찰특수대(the Special Corps of Gendarmers)를 편성, 4278명을 전국에 배치해 관방3부 수족으로 만들었다.

임무는 폭동진압, 도망자추적, 범죄자의 예방차원 구금, 법원영장 집행, 지방경찰업무 지원 등이었다.

그들은 청색과 백색으로 된 제목을 입고 자칭 ‘푸른 대천사’라 호칭했다. 하지만 이름과 달리 공포의 대명사로 악명이 높았다.

정보수집활동은 소문과 중상모략 수집수준에 그쳤다. 반혁명세력 순화작업도 순조롭지 못했다.

1878년 8월 4일 관방3부장 니콜라이 메젠초프(Nikolai Mezentsov) 장군 암살당했다. 실효성 없다며 폐지론 나왔다. 그렇다고 없앴을까?

경찰조직력에 승패 걸었다

1880년 8월 6일 관방3부를 폐지해 내무부에 경찰국(Department of State Police) 만들었다.

경찰국에는 공안기구 오크라나(Okhrana)도 신설했다. 1866년 4월 4일 황제 알렉산드르 2세 암살 미수 직후 상트페테르부르크 특별시장이 설치한 경비공안과가 그 모체다.

반체제 인사와 조직의 동향을 파악하는 감시과, 정보원을 관리하는 에이전트과로 편성했다. 우편물과 암호편지를 몰래 뜯어보는 Black Chamber도 운영했다.

모스크바는 비밀요원으로 구성된 외근분실을 운영했다. 혁명단체에 밀정을 심고 직접 침투도 했다. 파리를 거점으로 베를린, 런던, 뉴욕에 유급 정보원을 배치했다. 망명 러시아인 동향을 수집했다.

군경찰특수대도 인수받았다. 그런데도 1881년 3월 1일 황제 알렉산드르 2세가 암살당했다. 다섯 번의 미수에 이은 성공이었다.

공안조직은 더욱 확충됐다. 1905년 전국 주요 도시에 60개 보위부 지부가 들어섰다.

러시아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 요원들, 1905년


혁명의 열기는 날로 불타올랐다

1917년 2월 혁명 터졌다. 오크라나는 황제앞잡이-인민의 적 제1호로 공표했다.

2월 27일. 경찰관서 습격해 서류를 탈취한 후 방화, 전소시켰다. 흰 장갑 낀 도덕경찰(white gloved moral police)이라며 황제가 자랑했던 경찰관을 마구 죽였다.

1917년 3월 15일 임시정부가 들어섰다. 황제정부 때 투옥한 죄수들 석방했다. 풀려나온 범죄자들도 오크라나 요원, 정보원, 프락치 사냥에 나섰다.

러시아 10월혁명

1917년 10월 혁명으로 볼셰비키정권 들어섰다. 구체제 인물 말살리스트(Cleanse of Former People)를 배포했다.

그라인 니콜라이 파블로비치(Grain Nikolai Pavlovich, 1861년 출생, 경찰국장) 등 페테르부르크지역에서만 4393명을 즉결 처형했다.

참고로 1565년부터 1917년 혁명까지 황제의 공안조직들을 살펴본다.

△1565~1572 이반4세. Oprichniki(오프리치니키=‘측근’). 일명 黑衛(흑위) 부대

△1654~1676 알렉세이. Taynyy Prikaz(타이니 프리카스) 비밀과.

△1686~1726 피터대제. Preobrazhensky Prikaz(프레오브라젠스키 프리카스). 근위연대 정보과.

△1725~1726 예카테리나. Secret Expedition 비밀과.

△1731~1762 안나 이바노바 Secret Chancellery 관방비밀과.

△1762~1801 예카테리나 2세 및 파벨 페트로비치. Secret Expedition 비밀과.

△1826~1880 니콜라이 1세. 황제관방3부 the Third Section of His Imperial Majesty’s Own Chancellery. 일명 Third Department.

△1880~1917 알렉산드르 2세. 오크라나. Okhrana는 guard라는 뜻으로 Department for Protecting Public Security and Order 공안 및 질서 보위부의 러시아어 두문자다. 일명 Guard Department 또는 경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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