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의 국가안보는 통치자 신변보호···인접국 점령과 공안사찰 ‘두 축’

러시아 공포정치 <이미지 필자 제공>

[아시아엔=김중겸 치안발전포럼 이사장, 경찰청 전 수사국장] 군주는 귀족에게 땅을 주어 충성을 샀다. 불충한 신하는 응징했다. 죽이고 재산 몰수했다. 내 손에 다시 들어온 토지는 충신에게 선심 썼다. 

반복되면 나도 결국 죽임 당한다는 의심암귀(疑心暗鬼)에 싸인다. 두려움 속에서 배반을 꾀한다. 그래서 줬다 뺏는 돌려막기는 좋은 방법 아니다.

그럼 어떻게 하지? 전쟁–>승리–>영토 확장으로 방향 잡는다. 확보한 새 국토를 논공행상으로 나눠줘 충성심 잡는다.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이유다.

측근 속마음과 민심 행로 파악에 신경 쓴다. 적국의 속셈과 실력 알아내려고 애쓴다. 노심초사 속 태운다. 잠인들 제대로 오겠는가. 밤이 두렵다.

나라의 안보야말로 국가 지상과제다. 치안은 마을마다 촌장을 중심으로 스스로 해결하게 해도 큰 탈 없다. 안전보장대책은 직접 장악해야 한다.

아시리아 공포정치는 3000년 뒤 스탈린 폭압정치의 롤모델이 됐다. 

뭘로? 공안사찰조직(secret police)이다. 세계 최초의 정부첩보기관(the world’s first government intelligence service)은 기원전 2000년 중동의 아시리아에서 출현했다.

왕의 눈(King’s Eye)은 국내외 동향을 파악했다. 왕의 사자(King’s Messenger)는 반란과 음모의 정보를 운반했다.

슬라브족의 터전 동부유럽은 기름진 검은 흙이라서 비옥했다. 숲이 우거져 야생동물 많았다. 돈 되는 모피도 손쉽게 잡았다. 살기 좋았다.

그런데, 취약했다. 동서 양쪽 국경에 큰 강이나 높은 산맥 없었다. 평평했다. 우랄산맥이라야 높아도 해발 500m. 장애물 없었다. 드넓은 메소포타미아에 자리잡은 아시리아도 그랬다.

몽고군이 휩쓸고 갔다. 핀란드와 폴란드가 침공해 들어왔다. 대책은 두 가지. 하나는 국경 인접국을 점령, 위성국가로 지배해 완충지대 만들기.

누구나 갖고 있었다

공안사찰기관은 군주의 신변보호에 필수적으로 활용됐다. 

또 하나는 공안사찰기관이다. 군주, 수상, 실세장관은 각각 첩보수집기구를 사유(私有)했다.

1654년 알렉세이 황제가 국가기구로서의 상설공안조직(Tayny Prikaz=Privy Office=secret police) 설치했다. 1676년까지 존속했다.

형사경찰(Razboiniy Prikaz=Robbery Office)과 조사부(Sysknoy Prikaz=Investigation Office)도 있었다. 반역사건 다루는 황제보호기관이다.

프리카스(Pikaz) 즉 오피스(Office)는 1717년 협의회(콜레기움(Collegium, Council)으로, 1802년 부(Ministry)로 이름을 바꿨다. 이때 내무부 생겼다. 외무, 국방, 법무, 재무 이외의 모든 국사를 관장했다. 경찰을 총괄했다.

최대의 국가안전보장은 통치자 신변보호

통치자가 암살당하면? 온 나라가 혼란에 휩싸인다. 호시탐탐 틈 노리던 반역자와 적국은 “이때다!” 하면서 정권탈취에 나선다. 침공한다.

케네디가 암살당했다. 국가방위태세 명령을 긴급하게 내린 나라는? 미국과 소련이다. 미국은 뜻밖의 국가사령탑 교체기니까 당연한 비상조치다.

소련은 왜? 암살자가 공산주의자라는 소문 나돌았다. 미국이 보복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다시 아시리아로 가보자. 국경이 열려 있고 다민족이 몰려 살았다. 무력을 바탕으로 독재했다. 왕의 눈과 왕의 사자가 왕 목숨 노리는 반역을 탐지하러 다녔다.

환경이 비슷한 러시아. 유사한 모델 갖췄다. 우연이 아니다. 제국 황제 목숨과 공산당 서기장 자리 노리는 세력의 제거가 공안의 주 임무다. 의심 나면 체포-고문-자백-증거날조가 횡행했다. 이러니 재판하겠나, 그대로 목 매달았다. 또는 머리 뒤를 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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