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겸 칼럼] “학교·군대·직장 폭력, 이렇게 극복했다”
[아시아엔=김중겸 이실학회 이사장, 전 경찰청 수사국장, 충남경찰청장 역임] ‘국민학교’라는 명칭이 살아있던 어릴 적 충남 장항에서는 하이칼라 머리에 구리스grease 기름을 바른 분의 아들로서 핸섬보이였다. 선망의 대상이었다. 원제가 호위하고 영모가 거들었다.
4학년 2학기에 홀로 서울로 이른바 유학. 담임 여선생까지도 무엇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30cm 쇠자로 손바닥 찰싹찰싹 내리쳤다. 마귀할멈 같았다.
얼굴 검고 콧물 흘린다 하여 따돌림 독하게 받았다. 인내의 한계에 이를 즈음 중대한 결심에 이르렀다. 이대로 무너져? 아니지! 졸개들 대장 불러냈다. 조개탄을 쥐고 있다가 얼굴 후려쳤다. 기습이었다. 모두 보는 앞에서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 이후 편안한 생활 이어졌다.
1.21사태 직후 입대, 전방생활. 매일 밤 개머리판 세례 받았다. 엉덩이 부어서가 아니었다. 자존심 상해 아팠다. 겨울에는 숙소 앞 개울물에 나체로 들어갔다. “사시나무 떨리듯하다”가 이런 건가 알게 됐다.
아버지는 일본군 오장의 말똥 묻은 군화도 핥았다. 참으라 하셨다. 동기 일수가 도저히 못 견디겠다고 앙앙불락. 괴롭히는 권투선수 출신 왕고참을 때려잡기로 했다. M1소총으로 사정없이 후려쳤다. 얼마나 사무쳤나 팔다리 부러져 나갔다.
“일등병이 병장을 쳐?” 하극상이다. 부대에서는 쉬쉬. 졸병 상습구타 알려지면 지휘관 파면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두드려 패는 악습을 적어도 우리가 복무하던 동안에는 존재시키지 않았다.
직장의 경우 <조선왕조실록>에 보이는 신참관원 괴롭히기, 얼굴에 똥물 칠하는 免新禮면신례는 없었다. 그러나 상사가 자기사람 승진시키기 위해 자행하는 물 먹이기는 몇번 당했다.
학교-군대-직장에서의 폭력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인간사와 더불어 공존한 악습이다. 이상하게도 먹고 살만해지면 폭증한다. 배불러지니 주먹 휘두를 생각나는가. 세도와 돈 있는 집안출신이 더 심하다.
가해자는 야비하다. 약한 상대 괴롭힌다. 정작 사회에 나가서 밥벌이 할 때는 패배자가 많다. 권세와 부 거머쥔 부모덕에 산다. 떵떵거린다. 그 버릇 개 주랴. 여전히 폭력에 절어 산다.
피해자. 자살하지 않고 견뎌내더라도 순탄한 삶 이어가기 힘들다. 평생 상처 안고 산다. 그야말로 겨우 살아나가는 생존자survivor다.
누가 응징하는가? 당국이? 천만에! 시민언론 SNS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