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피를 찾아서”···러시아의 영토확장 소사

슬라브족은 어떻게 뻗어나갔나?

[아시아엔=김중겸 치안발전포럼 이사장, 전 경찰청 수사국장] 유럽 북서쪽 스칸디나비아반도, 현재의 스웨덴 지역에서 살던 사람들이 벌이에 나섰다. 건너편 유럽동부에 상륙, 볼가강 타고 남쪽으로 내려갔다.

지중해로 이어지는 흑해에 다다랐다. 도중에 슬라브족 원주민 루스와 모피, 벌꿀, 밀랍을 주고받았다. 잘 안되면 약탈도 했다.

북에서 온 이들 노 젓는 자는 결국 슬라브족 됐다. 어디서 오는 사람들이건 다 동화됐다.

러시아 영역


살기 좋은 곳 모스크바

어디나 마찬가지다. 산 등지고 앞에 강이 흐르는 곳. 사람들 몰려들었다. 농사 잘되고 이동이 편리해 장사도 잘되기 때문이다. 촌 형성된다. 인구증가로 읍이 되고 시로 발전한다.

도시치안은 시장이 총책임자. 벽을 두른 성곽도시(wall city)를 건설하고 성문으로 드나들었다. 그 바깥 읍이나 촌은 원로들이 안전을 관리했다.

여러 루스 왕조가 명멸했다. 1147년 볼가강을 통해서 북과 남으로 이어지는 교통요지 모스크바 강가. 그곳에 조그만 교역거점이 생겼다.

1283년 러시아의 모체 모스크바 대공국의 중심지가 수도로 발전했다. 1712년 새로 건설한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천도했다. 1918년 볼셰비키혁명 이듬해였다. 옛 지위 되찾았다.

모스크바는 예나 지금이나 정감 넘치는 커다란 시골이다. 러시아의 어머니이고 심장이다.

주민자율방범

외적 침입이 큰 문제였다. 말하자면 안전보장이다. 성 외곽에 나무울타리 둘러 말 타고 오는 적을 저지했다.

성안은 규모가 크건 작건 범죄예방과 범인검거의 실무는 주민 몫이었다. 몇 개의 구역으로 나누어 또 출입문 세웠다. 방범초소다.

야간엔 통행금지. 무보수로 남정네들이 야경 돌았다. 수상한 자 보면 소리쳐 함께 잡았다. 놓치면? 벌금 물었다. 공동책임제다. 포상도 공동?

강도를 관리?

1539년 모스크바 강도행정처(Robber Administration) 만들었다. 강절도 전담 경찰기관이다. 일제소탕 후 폐지하려던 한시적 임시기구였다.

1571년 지방에도 설치했다. 먹고 살기 힘드니 도둑은 늘어나기만 했다. 아예 상설기구로 만들어 18세기까지 운영했다.

1649년 남서부 요지인 bel(white)+gorod(city)=백색도시 Belgorod의 위상을 고려해 경찰주재소 신설, 치안과 소방 업무 맡았다. 도끼 들고 다녔다.

1687년 8월 14일 Robber Administration을->Zemsky administration(지방행정처)으로 명칭을 변경해 행정-경찰-사법을 담당케 했다.

근무자는 잼스크 야르그(Ze]msky Yaryg, 지방경찰관)라고 불렀다. police officer였다. 제복색깔은 도시마다 달랐다. 모스크바는 빨간색과 초록색. 가슴에 3=[Ze]와 Я=[Ya]를 새겼다.

러시아가 시베리아로 영토 확장을 끝낸 17세기 당시 공동 황제였던 이반 5세(앞줄 왼쪽에서 셋째 황금색 모피 입은 이)와 표트르 대제(앞줄 왼쪽에서 넷째)가 함께 있는 모습을 그린 그림. 이반 5세뿐 아니라 주변에 있는 사람(앞줄 오른쪽에서 둘째)도 발끝까지 내려오는 두꺼운 모피를 입고 있다. <위키피디아>


러시아의 영토

더 많은 땅 가지려는 욕심으로 확장? 아니다. 모피를 얻으려고 다니다 보니까 넓어졌다. 서쪽에 많은 나라들이 빽빽이 들어찼다. 신참이 발 디디기 어려웠다. 동쪽은? 추웠다. 습지가 많았다.

그렇지만 장애물 없었다. 우랄산맥만 넘으면 탁 트였다. 막는 사람들도 드물었다. 탐험가와 모함가가 앞장서서 나아갔다.

1645년 태평양 연안 도착. 1741년 베링해 건너 거대한 땅 알레스카에 당도했다. 내친 김에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근처까지 갔다.

요새 지었다. 그런데 이거 원 참. 쓸 만한 모피가 없었다. 철수! 하와이에서도 빈손으로 돌아왔다.

그랬어도 총면적은 17,125,407㎢. 세계 1위. 남한의 170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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