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트르대제와 러시아 제국의 탄생
[아시아엔=김중겸 치안발전포럼 이사장, 전 경찰청 수사국장] 열 살, 이복형과 공동 통지차로 등극했다. 나이 어리다고 이복누나가 수렴청정. 동생들 죽이고 집권하려는 욕심 부렸다.
목숨 위태로웠다. 시골로 피신했다. 러시아로 돈벌이 온 서유럽 기술자와 상인들의 정착촌이었다. 이들에게서 생활과 군대에 필요한 기술 배웠다.
또래의 동네아이들과 전쟁놀이병사(toy soldier) 만들었다. 재미삼아 하는 병정놀이가 아니었다. 실탄도 쏘면서 실제로 싸우는 소규모 부대였다.
표트르가 실권 잡자 이들을 토대로 1683년에 2개의 직속친위연대 만들었다. Preobrazhensky and Semyonovsky Life Guards Regiment다. 1917년 볼셰비키혁명으로 해체, 2013년 푸틴이 재건했다.
한이 맺히고 맺혔다
왜? 유라시아에 걸친 넓은 영토 가졌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인정해 주지 않았다. 아시아에서는 그런 나라가 있나 할 정도였다.
바다로 나가는 곳이 없기 때문이었다. 북쪽과 동쪽의 바닷길은 1년 대부분 얼어붙었다. 남쪽의 흑해? 안성맞춤이다. 사시사철 배 왕래한다. 그런데, 오스만제국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
1697년 표트르 25세는 오스만제국을 패퇴시킬 전쟁을 계획했다. 내편 들어줄 나라 찾으러 사절단 이끌고 서유럽여행에 나섰다.
하지만 다들 No! 러시아의 지중해, 중동, 아프리카 진출을 원치 않았다. 대신 기술이라면 얼마든지 배워 가시라 했다. 손수 목수일 하면서 군함도 만들어 봤다.
정치풍향 따라 바뀐 도시이름
그는 마음 돌렸다. 저 위 발트해로 가자. 그곳에 유럽으로 향하는 러시아의 창문 만들기로 했다.
1703년 첫 삽 떴다. 1712년 완성.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바로 그곳이다. 715㎞ 떨어진 모스크바에서 여기로 수도 옮겼다.
자유로운 항구? 천만의 말씀. 1904년 러일전쟁 발발, 10월 15일 발틱함대 출항, 영국의 방해는 여전했다. 겨우겨우 뚫고 9개월 항해 끝에 도착. 지친 배와 배고픈 수병으로 일본 해군에게 대패했다.
1914년 1차 세계대전 일어났다. 독일냄새 난다며 페트로그라드Petrograd로 명칭 변경.
1918년, 볼셰비키혁명 성공한 이듬해다. 인민의 적의 도시라 해서 수도지위 박탈하고 모스크바로 천도했다.
1924년 레닌 죽자 레닌그라드Leningrad로 개명했다. 1991년 공산주의 망하자 애초 이름인 Saint Petersburg 황제 표트르=베드로=피터의 도시로 되찾았다.
외유 중에 뒤통수 쳐!
1698년 표트르 내쫓고 이복누나 소피아를 즉위시키려는 반란 일어났다. 주역은 1550년 이반 4세가 만든 Streltsy다. “역시 내 부대 아니었어!”
다행히도 두 근위연대가 굳건하게 버티고 있었다. 이들이 검거에 나서 1차로 57명을 처형하고 많은 부대원을 유형 보냈다.
1698년 8월 25일 서유럽 여행 중 급거 귀국, 재조사했다. 추가로 잡은 자들을 고문했다. 뻘겋게 달군 인두로 지지기, 쇠갈고리로 살 베어내기, 손가락 자르기, 발 으깨기로 연루자 추려냈다.
어떻게 처리했을까? 1182명은 군복 벗긴 다음 일렬로 세워 목 쳤다. 601명은 낙인찍어 시베리아로 보냈다. 일부는 수레바퀴에 매달아 사지를 찢었다. 여성 2명은 산 채로 묻었다. 1720년 부대 자체를 없애 버렸다.
근위부대(Life Guards)는 다용도 조직이었다. 공안사찰과(prikaz=department) 두어서 첩보활동에도 종사케 했다.
아울러 별도로 감찰 500명을 운영했다. 전국 돌아다니는 밀정이었다. 임무는 모반과 반란, 귀족과 공무원의 불법행위, 민심동향에 대한 정보수집이었다. 성과급제를 시행해 실적 올리게 만들었다.
개혁은 수염 깎기로부터
반란을 진압하자 귀족들이 눈도장 찍으려고 몰려들었다. 표트르는 가위 들고 나타났다. 그들의 수염 잡고 싹둑싹둑 잘랐다. 문화인 되는 방법이라고 역설했다. 경찰은 순찰 중 수염 깎아주기 서비스 하라는 명령 받았다.
1721년 러시아식 황제 차르(Tsar)에서 로마식 황제인 임페라토르(Imperator)로 군주호칭을 바꿨다. 1917년까지 196년간의 러시아제국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