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절대권력 브레즈네프도 딸은 어쩌지 못했다?

브레즈네프와 호네커 동독 수상, 후임자 유리 안드로포프(오른쪽부터)

스탈린에게 노예처럼 충성했던 흐루쇼프는 스탈린 사후 제1인자가 됐다. 흐루쇼프는 당과 정부와 기업과 집단농장의 고위간부단 노멘클라투라nomenklatura의 철밥통 체질 고치려다가 역공 당했다. 쫓겨났다.

흐루쇼프가 아끼고 이끌어줬던 공산당 제자 브레즈네프에게. 브레즈네프는 스승이 물려준 그 파워 이용하여 스승 밀어내고 서기장 자리에 올라섰다.

브레즈네프는 공약했다. “간부 여러분! 나의 모토는 안정과 안심입니다. 변화를 추구하여 신변을 불안케 하는 일은 절대 없습니다. 자리 걱정 마세요. 귀족 같은 생활 즐기세요.”

행운이 받쳐줬다. 마침 기름값이 고공행진, 석유와 가스 팔아서 생활필수품 수입했다. 최상의 품질을 자랑하는 최고급 상품 일색이다. 그들 소수 특권계층에게만 특별히 공급됐다.

브레즈네프 서기장은 선물받기 좋아했다. 휴가 때 자동차 신나게 몰고 다니는 스피드광이라는 소문도 났다. 좋은 차 많이 들어왔다. 324대나 받았다고 한다. 많은가?

1975년부터 병이 잦았다. 그런데도 말보로 담배만 피웠다. 노동자농민은 보드카도 감지덕지인데 스카치위스키만 고집했다. 밤에는 잠 못 이루었다. 진통제(painkiller)에 의존했다.

1920년대 후반의 브레즈네프 부부. 부인 빅토리야 브레즈네바(Виктория Петровна Брежнева)사이에서 아들 유리(Юрий)와 딸 갈리나(Галина)를 두었다.

원인은? 다 딸 때문이었다. 도통 말을 안 들었다. 서기장 체통 손상시키는 짓만 하고 다녔다.Remove featured image

1951년 22세 때 열아홉 살 연상의 서커스 단원과 첫 결혼. 1961년 32세 때 열네 살 연하의 마술사와 두 번째 결혼.

1971년 42세 때 브레즈네프 심복인 내무장관 주선으로 일곱 살 위 경찰중령과 결혼했다.

브레즈네프의 사위

유리 추르바노프. 그가 만일 브레즈네프의 딸과 결혼하지 않았더라도 8년 만에 중령에서 제1차관으로 승진했을까?

모스크바대 법학과 출신으로 성격 좋고 용모 준수했다. 출세하리라고 주위에서 내다봤다. 그런 그가 부인과 두 아이 버리고 브레즈네프 딸 갈리나와 결혼했다. 왜 그랬을까.

선배들의 좌절에 절망하고 있었던 탓이다. 그를 비롯한 후배들은 이번 경찰서장급 승진에 주파르스키가 적임자라고 믿었다. 승진자 명단에는 엉뚱하게도 서영이반스키가 올라가 있었다.

문제는 그날 오후에 터졌다. 술이 잔뜩 취한 서영이반스키가 부장실 문을 발길질하고 있었다. 발령이 주 경비과장으로 났으니 500달러를 도로 내놓으라고 소리쳤다.

계급승진에 4000달러, 서장보직에 500달러, 도합 4500달러를 줬다 한다. 서장으로 나가지 못하니까 500달러는되돌려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러고서도 둘 다 멀쩡하게 얼굴 들고 다녔다. 줄이 튼튼하다는 소문이었다. 서영스키의 친척이 서기장의 부인의 동생의 동서라던가. 그래도 돈은 돈대로 들었다. 정가제다.

추르바노프는 부장이 주파르스키 계장에게 골프채를 요구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에게는 돈이 없었다. 빚을 내서라도 사서 받쳤다면 승진? 골프채 3000달러 대 현찰 4500달러는 밀린다.

이런 때 내무장관이 추르바노프를 불렀다. 브레즈네프 지시로 갈리나의 신랑감 물색하다가 그를 골랐다고 했다. “장가 한 번 더 가고 팔자 고치면 어떤가?” “좋습니다!” 그렇게 성사됐다.

내무부 제1차관까지 고속승진–>브레즈네프 사망–>내무장관 부정부패로 입건, 자살–>제1차관 뇌물로 12년 형–>부인은 이혼해 달라고 면회 왔다. 도장 찍어줬다. 11년만이었다.

5년 복역 후 57세에 풀려났다. 새 아내 맞이하여 77세까지 살았다.

속상했다

소비에트연방이 모습을 막 갖추어나가던 시절, 레닌 죽고 스탈린이 집권한 때다. 반대파 죽여 내 직위 지키기가 국정목표였다.

목표달성 도구는? 사람들에게 쓰레기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조직 민경(民警 Militsiya)의 역량과 충성은 불신했다. 공안사찰기관에 의존했다.

그러나 현장의 궂은일-정적색출, 범행날조는 전국에 깔린 경찰이 보조케 했다. 하수인이다. 주민들은 앞잡이인 경찰이 더 나쁜 놈들이라며 얼굴 돌렸다.

그래도 실세들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예산과 인력과 장비는 공안에게 우선 배정했다. 일손과 물자 부족 속에서 일했다. 처우도 공안에 훨씬 못 미쳤다. 자연히 손 벌렸다. 공안에게는 1000루블 쥐어준다. 이쪽에게는 돈 없다며 손사래 친다.

윗자리와 물 좋은 요직은 공안이 날라 와 차지했다. 고향사람과 동창만 데려다 앉혔다. 거기에 끼지 못했다. 한직과 변두리로 빙빙 돌림 당했다.

거기다가 웬 입발림은 그리 능숙한지. 말마다 번지르르 침 튀긴다. 거짓말은 또 어찌나 잘하는지. 방금 이렇다 하고는 뒤돌아서면 언제 그랬냐고 시치미 뗀다.

부정부패 시대 러시아 경찰의 자화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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