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겸 칼럼] 잘못된 사랑도 출산은 용인돼야

                                     

 영아살해, 처벌만으로 없어지지 않는다 

스물셋 강수영. 이혼 후 친정으로 돌아왔다. 외로움 견디지 못했다. 이웃 사내와 정을 통했다. 마침내 임신, 이 일을 어이 할꼬.

상책上策은 양가 부모에게 이실직고하여 재혼하기. 도와주기는커녕 이 몹쓸 년, 집안 망신이라며 두들겨 맞는다. 내쳐진다. 남정네가 총각이니 그 집안 반대는 더 자심하다. 일가친척이 무섭다.

중책中策은 대처에 나아가 아기 받아줄 곳 수소문한다. 요즘말로 하면 입양기관이다. 1921년 조선 땅에 있을 리 있나. 아이 가지지 못해 속 썩히는 아녀자 물색, 그 집 앞에 놓고 도망치자. 사람 눈 두렵다.

하책下策; 무대책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불러오는 배 원망스럽다. 들키지 않으려고 온 힘 다해 졸라맨다. 하루라도 편한 날 있나. 불안의 연속. 그럭저럭 열 달. 공포에 휩싸인다. 姦夫간부의 누이동생 열여덟 살 황삼선과 함께 핏덩이 파묻었다. 그런데, 발각됐다. 

내 갓난아기 죽이기는 사라진지 얼마 안 되는 풍습이다. 그리스신화 테바이 왕의 아들이 아버지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다는 예언 속에 태어났다. 곧바로 죽이려고 나무에 거꾸로 매달았다. 용케 “발만 부은”=오이디푸스가 되어 살아남았다. 숙명의 길 걸었다.

동양 유교문화권에선 아비어미가 어린 자식의 살로 부모나 시부모의 몹쓸 병 고쳤다. 왕으로부터 상 받았다. 푸짐한 부상도 곁들였다. 권장됐던 효도였다.

중세까지만 해도 곡식 씨 열 알을 파종하면 낱알 스물을 수확했다. 두 배였다. 여기서 종자 남겼다. 세금 냈다. 소작료도 지불했다. 식량 절대부족. 굶으며 먹으며 근근이 살았다.(요즘 우리는 쌀의 경우 119.3배 수확한다.)

이 상태에서 새 아이가 태어난다? 먹는 입, 식구食口가 늘어난다. 입은 늘고 양식은 그대로다. 이러다간 다 굶어죽는다. 해결방법은 단 하나. 태어나자마자 죽이고 만다. 솎아내기다. 요즘에는 없어졌나.

잘못된 사랑도 출산은 용인되어야 한다. 뜻대로 되나? 엇길로 곧잘 빠지는 인생이다. 이때 무엇이 필요한가. 영아살해filicide는 처벌만으로는 없어지지 않는다.

국가가 무엇인가. 살기 좋은 아름다운 세상 만드는 도구다. 살 길 터주는 사회정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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