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겸 칼럼] “‘탐정의 효시’ 프랑스와 비도크는 범죄자 출신이었다”

세계 최초의 현대식 수사관 프랑수아 외젠 비도크

열세 살에 업계 입문. 도둑-강도-사기-위조-탈영-탈옥으로 지샜다. 천하의 악당에 난봉꾼이다. 하지만 장점 있었다. 누구 말이든 귀 기울여 들었다. 감옥 안팎에 소문났다. 제 발로 찾아와 인생, 범죄계획, 탈옥방법에 대하여 조언 구했다. 범죄세계 정보통 됐다.

서른네 살 생일을 며칠 앞둔 날, 감옥에 있었다. 쫒기는 범죄자생활이 문득 지긋지긋해졌다. 쫒는 쪽으로 말을 갈아탈 방법 찾았다. 뭐 좋은 수 없나? 범죄정보 활용하는 밀고자가 적격이었다. 파리경찰청에 청을 넣었다. “오케이! 한번 해 보시게.”

칼침 맞을 각오로 움직였다. 실적 좋았다. “어이, 아예 경찰되지 그래?” 그렇게 시작한 형사생활이었다. 형사과Sûreté를 창설, 과장으로 15년 재직 후 퇴직했다. 1833년 서양역사상 최초의 사설탐정사무소 차렸다. 주인공은 프랑스와 외젠 비도크. 탐정의 효시다. 사기와 횡령으로 얼룩졌었다.

미국의 핑커톤은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노동운동으로 체포될 위기에 처하자 미국행을 결심한다. 1860년께 서른한 살에 사설 북서경찰회사를 창업했다. 이내 핑커톤전국형사회사로 명칭 변경. 잘 나갔다. 사설탐정회사의 대명사로 거론될 정도였다.

노사갈등이 격심해졌다. 경영자 편에 섰다. 노조에 첩자 심었다. 파업은 몽둥이로 격파했다. 악명이 자자했다. 정부용역 봉쇄됐다. 회사이름에서 형사detective를 빼라고 지시받았다. 겨우 명맥유지. 스웨덴에 팔렸다.

근세까지도 탐정이라는 이름은 없었다. 그래도 탐정 일은 있었다. 도둑 당하고 내가 직접 잡으러 다니지는 못했다. 돈 주고 대행시켰다. 업자도 출현했다. thief taker도둑잡이다. 재미 쏠쏠. 그러자 thief maker도둑만들기 등장했다. 애먼 사람 범죄자로 몰아 보상금 챙겼다.

경찰만으로 모든 사건사고에 대처하기는 불가능하다. 영국은 현재 국민들이 도둑 잡아달라고 아우성이다. 경찰이 일손 없다며 손 놓고 있기 때문이다. 테러와 성범죄만으로도 벅차다는 발표만 되풀이한다.

경찰지원군(parapolice) 즉 경비업, 경호업, 탐정업, 감식업이 긴요하다. 폐업위기에 몰렸던 탐정이었다. 영국의 1857년 이혼법은 불륜증거 있으면 이혼 허용했다. 누가 증거수집하나. 탐정이다. 굶지 않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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