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귀만의 포토월드] 거침없이 추는 춤, 정신혜
나를 깨고,?나를 찾는 작업 ‘정신혜’
“특별한 계기로 무용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습니다. 6살부터 여러 학원에 다녔고 미술, 음악, 무용 등 다양하게?접할 수 있었어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던 초등학교 시절에는 친구들을 집에 모아 음악을 틀어놓은 채 춤을 가르치기도 했죠. 춤에 대해 알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움직이는 것이 좋았습니다.”
무용을 꾸준히 해온 건 아니었지만 관심이 많았고 적극적이었다. 그리 활달한 성격이 아님에도 무용을 하는 것에 있어선 항상 앞으로 나섰던 것이다. 중학교 때 무용 선생님의 추천으로 무용반 활동을 하게 되면서 더 흥미를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주변의 권유나 만류가 아니라 스스로 진로를 결정하게 되었다. 무용하는 것은 하나의 놀이 같았고 스트레스로 다가오지 않았다. 춤을 추는 것이 좋았기 때문에 그렇게 선택했다. 부모님의 반대도 있었지만 무용이 제일 재미있는 일이었기에?계속 춤을 추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난 후엔 무용단도?만들었다. “지금도 지방에서 독립무용가가 활동하기는 어렵지만 예전에는 더 드물었고 더 힘들었어요. 나이도 많지 않았기 때문인지 주변에서는 1, 2년 하다 그만둘 거로?생각했지만 지금까지 오게 됐고 벌써 13년이 흘렀습니다.”
춤은 전통을 기본으로 많이 배웠지만 창작 활동도?많이 했다. 일상생활에서는 그렇게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은데 춤에서만큼은 남의 간섭을 받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자신만의 색을 내고 싶고, 뜻대로 하고 싶은 바람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활동하면서 무용단을 알리기?위해 부단한 노력을 많이 했어요. 그러던 중 미국에 잠시 가게 되었습니다. 환기가 필요했던 것 같아요.”
미국에서 2년 정도 생활하면서 발레나 현대무용, 즉흥무용을 새롭게 더 배웠고 레지던스 프로그램도 참여했다. 그 시간은 희미해져 가던 목적의식을 다시 뚜렷하게 해주었다.?춤의 재미도 새롭게 느끼게 되었다.
전통과 창작을 다하려 애쓰면서 전통을 현대화해야 한다는 생각도 한다. 물론 원형이 훼손되어선 안 되지만 그 형식을 지키는 안에서 발전이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단순한 나열형식이 아닌 스토리를 넣는 식으로 전통을 레퍼토리화 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춤을 출 때 거침없이 추게 되면 만족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때론 춤을 출 때 몰입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죠. 그래서 제가?완전히 그 속에 빠져 ‘내가 나왔다’라고 생각되면 만족할 수 있어요.”?자신을 깨고 속에 있는 게 전부 나올 수?있도록 역할에 젖어드는 게 좋다. 학생들을 가르칠 때에도 후회 없이 추라고 한다. 뼈가 으스러지게 춰도 시간이 지나면 더 할 걸 이라는 후회가 남을 수 있으니 열심히 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앞으로도 열심히 춤을 출 수 있는 여건이 되어 계속할?수 있으면 좋겠다.
“저는 자연을 좋아해요. 그중에서도 나무를 가장 좋아합니다. 예전에 단전호흡을 잠시 했는데 나무와 호흡하는 법을 배우기도 했어요. 기가 느껴진다고 할까요. 저보다 훨씬 오래 산 나무의 긴 호흡을 느낄 수 있어요.” 그래서 힘들 때면 나무를 보며 위로를 받을 때도 있다. 그렇게 너그러운 나무처럼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글=최경국 명지대 교수, 김다혜 작가>
눈 두는 곳이 절벽이다.
생각이 미치는 곳이 절벽이다.
그?절벽 앞에서 무릎 꿇어?보았는가…
절벽의 발길을 되돌려 보았는가…
건너오면 캄캄하도록 되짚어 건너야 할
강이 굽이굽이 놓인 절대적
이 불온한 윤회
제발…
길이 보이지 않는다.
*정신혜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이매방류) 이수자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이매방류) 전수자
제7회 부산예술상 젊은예술가상
제27회 전국전통예술경연대회 문화관광부장관상
제10회 부산무용제 대상
제2회 전국차세대 안무가전 최우수상
제50회 개천한국무용제 특장부 최우수상
현 신라대학교?예술대학 무용학과 교수
한국무용기록학회 상임이사
정신혜무용단 예술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