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귀만의 포토월드] 신명이 나는 행복한 춤, 김희경

무용가 김희경 <사진=신귀만 작가>

어렸을 때 텔레비전에서 춤추는 모습을 보고서 의자 두 개를 이어붙여 무대를 만들고 재롱잔치를 하곤 했다. “그런 모습을 보신 어머니께서 무용학원에 보내셨어요. 초등학교 1학년 때 경주로 이사를 하게 되었지만, 그 후에도 계속 춤을 배웠습니다. 경주에 ‘신라문화제’라는 행사가 있어서 계속 춤을 추게 되었죠.”

지적해주며 조언해 줄 선생님

그렇게 무용과로 대학교에 진학해 정재를 접하게 되었다. 이전까지는 궁중무용을 모르다 새롭게 배우게 된 것이다. 졸업 후에는 대구시립국악단에 들어가 무용단 생활을 했다. 경북도립국악단이 창단된 후에는 그곳에서 꾸준히 무용단 활동을 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무용단에 있다 보면 개인 능력을 계발하는 면에선 한계가 있어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공부했습니다. 대학원에도 다녔고 주말엔 여러 선생님을 찾아다니며 춤을 배웠어요.” 평일엔 무용단 활동을 하고 주말엔 서울로 올라갔다. 선생님들에게 춤을 배우고 공연도 보면서 그렇게 부단히 노력했다. 자신의 춤을 평가받지 않으면 춤의 본질을 놓칠 수 있기 때문에 부족한 부분을 지적해주며 조언해 줄 선생님이 필요한 것이다.

“무용단에 막내 단원이 선생님은 아직도 공부하러 다니느냐고 말한 적이 있어요. 하지만 춤은 그 자리에 있는 게 아니므로 계속 노력하지 않으면 뒤로 처지게 됩니다. 요즘은 안무자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을 채찍질해 줄 선생님과 함께 더 공부해야 할 필요성을 느껴요.”

그렇게 자신의 나이에 걸맞은 춤을 췄으면 한다. 자신의 나이보다 못한 춤은 부끄럽다. 물론 더 좋은 춤을 추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자신의 나이만큼의 춤을 췄으면 한다.


“이전에는 무대에 섰을 때 객석에서 오는 시선에 움츠러들 때가 많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많이 극복되었어요. 다만 매번 다른 공연장에서 새로운 관객들과 만나면 함께 느끼고 호흡하려 노력합니다. 너무 요란하지 않고 덤덤하게 춤을 추고 싶어요. 그런 무게가 차곡차곡 쌓여 세월이 보이는 춤을 췄으면 하는 바입니다.”

한 눈 팔지 않는 인생

한동안 계절의 변화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열심히 해왔다.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앞으로도 한눈 팔지 않고 춤꾼으로, 안무자로 활약할 수 있으면 좋겠다.

“작품을 무대에 올릴 때마다 ‘또 한 번 일을 저지르게 되는구나’ 라고 생각해요. 객석에서 공연을 바라보며 부족함과 벅차오름을 동시에 느끼죠.” 세대는 계속 바뀌고 있다. 선생님들의 세대와 내가 살아온 시대가 달랐고, 요즘 자라나는 친구들과의 세대도 다르다. 그래서 꼭 춤에 한을 담기보다 슬픔 속에서도 신명과 멋이 함께하는 행복한 춤을 췄으면 한다.


“이전에 다니던 절의 스님으로부터 현담(玄潭)이라는 법명을 받게 되었어요. 현(玄)이라는 한자는 ‘검다’는 뜻 외에 우주의 지혜라는 뜻도 담겨있다고 해요. 항상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연못 같았으면 합니다.” 그렇게 모든 것을 다 담고 있는 연못처럼 지혜로울 수 있었으면 한다.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춤을 추면서 사람들에게 여운을 주고 싶다. <글=최경국 명지대 교수, 김다혜 작가>

*춘앵전
춘앵전은 조선왕조 순조(1800~1834) 때 효명세자가 순조 숙황후 보령 40세를 경축하기 위해 지은 향악정재이다. 이 춤은 독무로서 꾀꼬리를 상징하는 노란색의 앵삼을 입고 화문석 위에서 추는 것이 특이하다. 춘앵전은 본시 중국 당대의 무악으로 당 고종의 명으로 악사 백명달이 꾀꼬리 소리를 듣고 지은 묘사음악인데, 한국에서는 그 이름만 빌어 춘앵전이라는 독특한 작품을 만들었고 이것이 일본으로 건너가 천장보수악 혹은 ‘매화 춘앵전’이라는 이름으로 추어진 것을 알 수 있다. 반주 음악은 평조회상 전곡을 쓴다.

* 김희경
영남대학교 한국학과 박사 수료
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 진주검무 이수자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이매방류) 이수자
중요무형문화재 제40호 학연화대합설무 이수자
영남대학교 국악과 겸임교수 역임


(사)한국전통춤연구회 이사
대구광역시 문화재 전문위원
경북도립국악단 안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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