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있는 커피테이스팅①] ‘개코 인간’ 가려내는 부질없는 짓에 대하여

박영순 커피비평가협회
커피애호가들이 집에서 커피를 내려 마실 때 어떻게 하면 더 맛과 향을 즐길 수 있을까요? 커피비평가협회 회장을 맡아 커피 대중화와 고급화에 앞장서고 있는 박영순 <아시아엔> 칼럼니스트가 일반 커피애호가들의 눈높이에서 ‘이유 있는 커피테이스팅’을 두차례에 나눠 연재합니다. <편집자>

[아시아엔=박영순 <아시아엔> 칼럼니스트, 커피비평가협회장, 경민대 호텔관광경영과 겸임교수] 한잔에 담긴 커피의 품질을 평가하는 커피테이스터(coffee taster)의 자질을 갖춘다는 것은 무엇일까?

일단, 커피에서 미세한 맛들을 감지해낼 수 있어야 하겠다. 아울러 그 맛들을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어휘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다양한 맛들이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그 가능성이 있는 부분을 조목조목 집어내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커피의 맛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은 대충 꼽아도 스무 가지를 훌쩍 넘는다. 품종, 고도, 토양, 일조량, 강수량, 미세기후 등 나무가 자라는데 끼치는 영향들이 결국 향미에도 영향을 준다. 기계수확이냐 손수확이냐에 따라 덜 익은 체리의 비율과 열매의 손상 정도가 달라지면서 컵 향미의 뉘앙스도 변화한다.

가공법에 따른 맛의 차이는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사실 같은 가공법이라도 작업 여건에 따라 맛이 다르게 표현된다. 과육을 벗긴 체리를 수조에서 발효하는 수세식 가공법은 맛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을 양손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펄핑(pulping)에 사용한 기계의 정밀성, 수조의 온도, 수조의 물갈이 타이밍, 밤낮 기온차, 건조방식 등도 변수가 된다.

이런 차이까지 구분하며 커피를 마셔야 하느냐고 따진다면, 물론 꼭 그렇지는 않다고 위로하고 싶다. 이토록 까다롭게 구는 것은 디펙트(defect) 때문이다. 한 잔의 커피를 만드는데 사용된 원두 60알 중에 한 알이라도 결점두(缺點豆)가 있다면 결코 쉽게 넘길 일이 아니다. 결점두 커피를 단지 향미가 좀 떨어지느냐 아니냐의 문제로 봐선 부족하다. 그것은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심각한 사안이다. 결점두에 대해 관대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오랫동안 상술에 마비된 탓이다. 결점두의 이취(off-flavor)를 로스팅이나 브루잉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과장하는 일부 사이비 커피기술자들이 퍼트린 잡음 때문이기도 하다.

한 잔의 커피에서 결점두의 기미를 감지했다면, 문제가 그 한 잔에 그치는 게 아니다. 결점두가 나온 포대에 들어 있는 생두 전체의 품질이 떨어진다는 것이고, 나아가 생두를 출하한 농장의 품질이 좋지 않다는 것을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로스팅과 브루잉에 따라 커피의 맛이 달라진다는 것은 별도로 언급할 필요가 없겠다. 하나 집고 넘어갈 것은 로스팅과 브루잉을 통해 생두에 들어 있지 않은 향미적 잠재력을 표현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커피테이스터는 커피를 맛볼 때 본질을 꿰뚫어 보도록 노력해야 한다. 없는 맛을 낼 수 없는 것처럼 결점두의 부정적인 면모 역시 감출 수 없다. 반드시 드러난다. 이런 믿음과 확신 없이는 커피를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커피의 맛을 구별하는 능력을 두고 대회까지 열어 ‘커피테이스팅의 지존’을 가리는데, 아무리 봐도 디자인이 잘못됐다. 세 잔을 주고 다른 하나를 골라내라는 방식은 ‘3점 검사(Triangle test)’라고 해서 자주 쓰인다. 커피 생두의 품질을 가려내는 커피감별사(Q-grader) 자격증 과정에서 훈련에 사용하는 대표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테스트를 받는 입장에서 커피 세 잔 중에 정답을 맞출 확률이 33%이다. 사실 이 방식으로 응시자가 맛을 알고 구별한 것인지 운으로 맞춘 것인지 확신하기 힘들다. 한 잔을 먼저 맛보게 한 뒤 2잔을 주고 어느 것이 같은 맛을 내는 것인지 고르게 하는 ‘일-이점 검사법(Duo-trio test)’은 운이 더 따른다. 두 잔 중 하나를 가려내는 것이기 때문에 맞거나 틀릴 확률이 반반이 된다.

커피 맛의 질을 따지지 않고 , 단지 다른 맛이 나는지를 골라내는 능력만으로 커피테이스터의 자질을 가늠하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각종 커피테이스팅 대회가 같고 다름만을 구분하는 ‘개코 인간’을 가려내는 부질없는 일은 않은지 되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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