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순의 커피인문학] 한잔의 커피가 묻는다 “좋은 사람이란 누구인가?”
[아시아엔=박영순 <아시아엔> ‘향미’ 전문기자] 커피는 사람과 같다. 씨앗에서 한 잔에 담기기까지(Seed to Cup) 정성을 다한 커피는 고매한 인격을 마주한 것만큼이나 우리의 가슴을 훈훈하게 해준다. 어느 한 구석 모난 곳 없이 은은하게 다가오는 향기와 매만지는 듯 부드럽게 혀에 감기는 촉감, 사라졌다가 다시 아른거리기를 반복하며 여운이 길게 이어지는 좋은 커피(Good Coffee)의 면모는 돌아서면 이내 그리워지는 향기 있는 사람을 닮았다.
같은 품종의 커피라도 해발고도가 높은데서 자랄수록 단맛이 진하고 향미가 풍부하다. 대관령 고랭지배추가 육질이 단단하고 단맛이 좋아 최고의 김장용 배추로 꼽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고도가 100m 높아질수록 기온은 섭씨 1도씩 떨어진다. 높은 지역은 평균기온이 낮아 나무가 서서히 자란다. 지대가 높을수록 수확철이 되면 밤낮의 기온차이가 커짐으로써 나무는 밤마다 극한 상황을 맞게 된다.
봄에 꽃이 피는 것은 겨울이 있기 때문이다. 나무는 추위를 만나면 성장모드가 번식모드로 바뀐다. “이러다가는 죽을 수도 있겠다”는 위협을 느끼게 되면서 생리작용이 종자보존 쪽으로 급선회하는 것이다. 나무는 이제 햇빛을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 높이 자라려는 욕심을 접어두고 모든 영양분을 씨앗으로 보내 종자를 우수하게 키워내려 애쓴다. 씨앗에 영양분이 많이 모일수록 풍성한 향미를 발휘한다. 커피는 열매의 씨앗을 볶아먹는 것이므로, 영양분이 많이 모인 씨앗으로 만든 커피의 향미는 좋을 수밖에 없다.
“역경이 사람한테 부여하는 것이야말로 아름답구나!”
셰익스피어가 ‘뜻대로 하세요’(As You Like It)에서 노래했던 것처럼 시련을 겪은 사람일수록 연민과 배려심, 삶에 관한 깊은 사랑으로 따스함을 전해준다. 향미가 화려한 커피가 먼저 눈길을 끌게 하지만, 최종 경합에서는 깨끗하면서도 입에 오래 맴도는 잔잔한 커피를 이기지 못한다. 자신을 과도하게 드러내는 것은 주변과 어울리기 힘든 탓이다.
커피이건 와인이건 위스키이건 ‘우아하다’(Elegance)는 표현은 관능평가에서 최고의 찬사다. 커피 맛이 우아하기 위해선, 이리저리 찌르는 듯 돌출하는 자극들을 둥글게 만들어주는 단맛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단맛만 있어서는 지루하다. 생기를 불어넣는 산미가 있어야 하는데, 이것 또한 너무 지나쳐 단맛을 눌러버리면 초산처럼 날카로움을 드러낼 뿐이다. 쓴맛도 단맛이 있어야 묵직함을 주는 긍정적인 존재감으로 승화한다. 결국 우아함의 생명은 균형미(Equilibrium beauty)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우리네 속담은 ‘우아한 인성’을 갖추도록 노력하라는 가르침을 담고 있다.
“나 홀로 먹고 살려 하지 말고 주변과 어우러지며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미덕은 ‘그늘 재배 커피’(Shade Grown Coffee)에서 발견된다. 직사광선을 받고 자라는 커피는 활발한 광합성과 이화작용 덕분에 부쩍부쩍 자랄 수 있지만, 그 영광이 후대에 길게 이어지지 못한다. 자칫 ‘당대의 허영심’으로 인해 대가 끊길 수 있다. 저 혼자 열매를 많이 맺으려는 욕심 때문에 주변 토양의 영양소가 급격하게 소진된다. 그늘이 적절히 드리워져야 나무 주변 땅속에 사는 미생물들이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
커피나무로서도 성장속도는 느릴지언정 건강하게 커 나갈 수 있다. 양지에서 자라는 나무는 급속한 성장 때문에 면역력이 떨어져 병충해 공격을 쉽게 받게 된다. 이로 인해 농약과 같은 화학물질을 뿌리게 되고 토양의 생명력은 단축된다.
재배자가 수확량에 욕심을 내 커피나무에 그늘을 주지 않고 키우는 것은 후손의 먹을거리를 빼앗는 것과 다름없다. 나무도 사람도 대를 이어 살아갈 수 있는 ‘지속가능 커피’(Sustainable Coffee)의 생산은 인간과 자연의 상생을 상징하는 소중한 가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