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티 커피, 정신은 간데 없고 장삿거리만 남아”

커피테이스팅(Coffee Tasting)에서 투명한 잔으로 커피의 외관을 평가하는 모습. 색상과 투명도는 커피 품질 평가에 유익한 정보이다. <출처 커피비평가협회(CCA)>

[아시아엔=박영순 <아시아엔> 칼럼니스트] “스페셜티 커피(Specialty coffee)가 스페셜 하지 않으면 본질이 없으므로 존재할 수 없다. 스페셜하다고 해도 ‘스페셜함’을 정의할 수 없으므로 존재할 수 없다. 자유의지에 따라 선택해 체험할 뿐 스페셜티 커피란 있지도 않을 뿐더러 증명할 수도 없다. (하략)”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엉터리니까 당연하다. 포스트모더니즘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란에 일침을 가했던 앨런 소칼의 ‘지적사기’(Fashionable Nonsense)를 흉내내 봤다. 어쭙잖게 소칼의 지적유희를 따라한 것은, 스페셜티 커피를 이대로 두었다 가는 극단적 허무주의(Nihilism)에 빠질 것 같은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스페셜티 커피를 불신하는 사례를 찾기가 너무나 쉽다. 이런 형편을 알면서도 내가 가진 커피가 좋다는 사실을 전하기 위해서는 딱히 다른 용어가 없다.

커피에 점수를 매기기 위해 준비된 커핑(Cupping)테이블. <출처 커피비평가협회(CCA)>

“커머셜 커피라도 썩은 것을 정성 들여 골라낸다면 스페셜티 커피라 할 수 있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돈다. 그야말로 스페셜티 커피가 아닌 게 없는 세상이다. 이 지경이 된 것을 두고 누구를 탓해야 할까?

비난은 마땅히 장사꾼들을 향해야 하지만, 상황은 엉뚱하게 돌아간다. 맛을 모르고 맹목적으로 스페셜티 커피를 찾는 소비자 수준이 문제라는 쪽으로 여론이 형성돼 있다. 왜 우리가 스페셜티 커피 오남용과 맹목적 추종 현상의 원인으로 몰려 회개를 강요받아야 하는가?

베트남 달랏 커피농장에서 싱그럽게 익은 커피 열매와 꽃. 커피는 자란 땅과 품종을 명확하게 기록해 유통돼야 한다.

양심 없는 사람들을 변호할 마음은 손톱만큼도 없지만 냉정하게 짚어볼 게 있다. 우리가 글로벌 세력이 쳐놓은 덫에 걸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때는 1982년 미국스페셜티커피협회(Specialty Coffee Association of America, SCAA)가 설립한 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페셜티 커피’는 단지 미국의 민간단체 명칭에서 시작됐다. 더욱이 이 단체는 맛을 평가해 80점 이상을 준 커피에 스페셜티 커피라는 면류관을 씌워 주는 사업을 한다. 이 시스템을 거쳐 스페셜티란 호칭을 벼슬처럼 얻은 커피들이 수천, 수만개가 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80점을 넘어 스페셜티 반열에 오른 커피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들 사이에서 80점 이상을 받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100개를 평가했더니 90개 이상이 80점을 넘겼다”는 말이 마치 무용담처럼 퍼지기도 한다. 게다가 이렇게 후한 평가를 주는데 별다른 거부감이 없다. “워낙 좋은 원두들이 출품되다 보니 그렇다”는 말로 되레 감동을 주려고 한다.

지난 38년 동안 이 방식은 스페셜티 커피를 만들어내는 공장의 역할을 착실하게 수행해왔다. 이에 반기를 든 것이 1999년 브라질 커피재배자들에게서 시작된 ‘컵 오브 엑셀런스’(Cup of Excellence, COE)다. 그러나 이들도 스페셜티 커피를 만들어 내는 또다른 공장이다. 공장이 도심에서 산지로 옮겨갔을 뿐이다. 여기서는 85점 이상을 받아야 스페셜티 커피 대우를 해준다.

SCAA나 COE가 스페셜티 커피를 만들어 내는 시스템은 커피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양질의 커피를 걸러주는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 역할에 박수를 보내는 사이에 시나브로 이들 단체가 권력화 했고, 우리는 그들이 만든 ‘스페셜티 커피의 프레임’에 갇혔다. 부당함을 자각하면서 프레임에서 빠져나오려는 거센 움직임이 작금 ‘스페셜티 커피의 무용론’에 불을 붙이고 있는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스페셜티 커피에 입힌 과도한 옷을 벗겨 버리고, 단순히 ‘산지와 품종을 명확히 표기한 커피’로 재정의하는 게 옳다.

스페셜티 커피의 본질은 특정 단체가 부여하는 점수나 명칭이 아니다. 그것은 ‘온전히 자연을 담아내는 것’이다. 에르나 크누젠(Erna Knutsen, 1922~2018)이 1978년 국제커피회의에서 “산지의 지정학적인 미세한 기후 조건이 커피에 특별한 향미를 부여한다”(Special geographic microclimates produce beans with unique flavor profiles)고 일갈할 때, 커피의 패러다임이 음료에서 문화로 바뀌었다.

그러나 반세기만에 스페셜 한 정신은 없고 스페셜티 커피라는 장삿거리만 판을 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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