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첫 생산지가 아프리카라고요?
[아시아엔=박영순 <아시아엔> ‘커피’ 전문기자, <커피인문학> 저자] 아시아가 세계적인 커피의 허브로 부상하고 있다. 베트남·인도네시아·인도·라오스·파푸아뉴기니 등 커피 생산국들이 2010년대부터 추진한 커피 생두 고급화 성과가 하나둘 가시화하면서 아시아 커피에 대한 대우가 달라지고 있다. 향미가 떨어져 인스턴트 커피에 사용하는 로부스타(Robusta) 품종을 주력 재배하던 아시아 생산국들이 아라비카(Arabica) 고급 커피의 생산 비율을 늘리고 있다.
우리에게는 마지막 임시정부로 친숙한 중국의 충칭(重慶)에는 국제커피거래소가 들어서 세계 각 대륙의 커피들이 모여들고 있다. 특히 에티오피아·케냐·우간다 등 아프리카 대륙 깊숙한 곳까지 연결되는 철도망이 구축되고 있다. 아프리카 커피 생두들이 일단 충칭에 집합해 전 세계로 퍼져 나갈 프로젝트가 착착 수행되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를 보면, 세계의 모든 커피가 볼 수 있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커피의 기원지는 아프리카인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과연 그럴까? 커피에 관한 최초 기록이 발견된 곳은 지금의 이란, 다시 말해 아시아다. 인류를 커피를 채집하지 않고 재배하기 시작한 곳은 예멘, 그러니까 서남아시아다. 아프리카를 커피의 시원지라고 하는 것은 기록에 의한 것이 아니라 구전에 따른 것이다. 구전이라고 한다면 아시아도 커피의 시원지라는 주장은 차고 넘친다.
인류가 커피를 언제부터 먹었는지에 대한 가장 오래된 이야기는 ‘에덴동산의 기원설’이다. <구약성서>의 창세기를 기반으로 하는 내용이다. 성경이 아니라 기록과 유물·유적이 뒷받침되는 역사 속에서도 커피의 기원을 추적할 수 있다.
커피의 기원과 관련해 자주 등장하는 나라가 에티오피아·예멘·사우디아라비아 등이다. 범위를 확장해 커피를 볶아 먹기 시작하고 인류 최초의 카페가 등장하는 지역까지 고려하면 커피의 무대는 북동부 아프리카와 아라비아 반도, 서남아시아를 아우르게 된다. 다름 아닌 중동(Middle East)이다. 따라서 “커피는 중동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중동’은 유럽인들이 자신들의 입장에서 동쪽을 가리켰던 용어로, 서아시아와 아라비아반도뿐 아니라 아프리카 북동부 지역까지 일컫는다. 고대문명의 발상지이자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 3대 유일신교가 탄생한 지역도 중동이다. 사실 이들 나라 사람들의 핏줄은 하나다. 노아의 아들 ‘셈’을 공동 조상으로 하고 있다. 홍해를 두고 대륙이 나뉜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와 서남아시아의 예멘은 3000년 전에는 한 왕국이었다.
중동은 또한 에덴동산이 있던 곳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커피의 기원설은 에덴동산과 어떻게든 연결돼 있다. 성경의 기록을 토대로 에덴동산을 찾는 노력이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다. ‘에덴’은 수메르어로 ‘초원’ 또는 ‘평원’을 뜻하는 ‘에딘’에서 나왔다. 에덴동산을 구름이 걸린 고산지대로 생각하는 것은 ‘진실’과 거리가 멀다. 강이 흘렀다는 대목에서 힌트를 얻어야 한다.
창세기에 따르면 에덴동산엔 4개의 강이 흘렀다. 창세기 2장 10~14절은 이렇게 기록돼 있다. “에덴에서 강 하나가 흘러나와 그 동산을 적신 다음 네 줄기로 갈라졌다. 첫째 강줄기의 이름은 ‘비손’이라 하는데, 은과 금이 나는 ‘하윌라’ 땅을 돌아 흐르고 있었다. 둘째 강줄기의 이름은 ‘기혼’이라 하는데, ‘구스온’ 땅을 돌아 흐르고 있었다. 셋째 강줄기의 이름은 ‘티그리스’라 하는데, 아시리아 동쪽으로 흐르고 있었고, 넷째 강줄기의 이름은 ‘유프라테스’라고 하였다.”
에덴의 강물은 일단 땅속으로 들어간 다음 다시 지상에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상류의 위치를 알아내기 힘들다. 에덴동산의 가장 강력한 후보지는 페르시아만 깊숙한 곳에 위치한 쿠웨이트나 이라크 남부지역이다. 팔레스타인에서 볼 때 동쪽에 있는 바빌로니아 평원도 유력 후보지다. 에덴동산의 범위를 넓게 보는 학자들은 비손강을 갠지스강으로 해석해 인도까지 포함시킨다. 서쪽으로는 기혼강을 나일강으로 보고 에티오피아를 에덴동산에 집어 넣기도 한다.
이를 토대로 하나의 가설을 세울 수 있다. “에덴동산에는 모든 생명체가 살고 있었다. 커피나무도 생명체이므로 에덴동산에 자라고 있었다. 에덴동산은 에티오피아·예멘·사우디아라비아를 아우르는 중동지역이다. 그러므로 커피는 에티오피아 또는 예멘 또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유래했다.”
예멘의 기원설을 추적하면 아랍(Arab)이 등장한다. 아랍은 페르시아만·인도양·아덴만·홍해에 둘러싸여 있는 아시아 서남부를 일컫는다. 아라비아반도가 곧 아랍을 의미한다. 고대 페르시아어에 ‘아라비아’(Arabya)라는 말이 있는데, 메소포타미아의 서쪽과 남쪽 땅을 가리키는 지명이다. 4대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유프라테스강 너머 서쪽에 거주하는 민족’을 아랍인이라고 불렀다.
메소포타미아는 기원전 5000년경에 문자를 사용하고 기록을 남겨 ‘역사시대’를 열었는데, 기원전 3500년경 수메르인들이 도시를 형성했다. 수메르인들은 기원전 1000년경부터 아라비아반도의 남부, 지금의 예멘에 거대한 무리가 살고 있음을 기록으로 남겼다. 예멘지역에 살던 이들은 셈족 언어를 구사했는데, 아라비아 중북부 사막지대의 유목민들과 달리 정착생활을 하며 도시국가 성격의 왕국을 형성했다. 이 왕국이 바로 기원전 955년부터 840여 년간 부유함을 자랑하며 번영한 ‘시바’(Sheba) 왕국이다. ‘사바’(Saba)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 왕국은 여왕이 군림하고 있었다.
이 여왕의 구체적인 이름은 잘 알려지지 않고 ‘시바의 여왕’(Queen of Sheba)이라 불렸다. 여왕의 존재는 구약성서에 일부 언급되긴 하지만, 구전을 통해 전설처럼 전해져 왔다. 그러다가 2000년도에 영국-캐나다-미국의 발굴팀이 예멘 북부 루브 알 칼리 사막의 마리브(Marib)에서 시바 여왕의 신전 등 당시 왕국의 유적들을 발굴함으로써 실존한 역사임이 입증되었다.
마리브는 현재 예멘의 수도인 사나(Sanaa)에서 동쪽으로 100km 떨어져 있으며 해발고도 1200m 고지대에 조성된 고대도시로 시바왕국의 수도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마리브의 규모는 인근에 있는 ‘그레이트 마리브댐’(Great Dam of Marib)을 통해 추정해 볼 수 있다. 기원전 7~8세기에 건설된 이 댐은 길이 580m에 높이는 4m에 달했다. 기원전 2세기경에는 높이가 14m로 증축되어 사방 100km² 면적에 사는 수만명에게 물을 공급했다.
시바의 여왕이 이끈 아랍인들은 어디서 온 것일까? 이들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언어인 셈어족(Semitic languages)이다. 셈은 구약성서의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세 아들 중 1명이다. 이들 중 누가 장남인지는 논란이 있지만, 셈은 일반적으로 장남으로 알려져 있다. 아랍인은 셈의 후손으로서 셈어를 구사하는 민족들 중의 하나였다. 아라비아반도에 살던 셈족의 일부가 기원전 3500년경 북상해 나일강 인근에 살던 함족(함은 노아의 아들로 아프리카인의 조상)과 어우러지면서 이집트인이 되었다. 기원전 3000년경 아라비아사막을 횡단해 메소포타미아로 진출한 셈족의 한 분파가 바빌로니아인의 조상이 되었다.
또 기원전 2500년경 팔레스타인에서 북부 메소포타미아를 거쳐 이란고원에 이르는 ‘비옥한 초승달 지대’(Fertile Crescent)에 정착한 셈족 가운데 아무르인, 레바논과 시리아 등 지중해 동부 연안으로 이동한 무리들은 페니키아인이 되었다. 셈족의 이동은 계속되었다. 기원전 1400년경에는 시리아 남부 지역에 거처를 정해 아람인(Aram)이 되었으며, 시리아 남부와 팔레스타인 지역에 정착한 분파는 유대인(Jewish)의 조상이 되었다.
시바의 여왕이 등장하는 시점은 기원전 1000년경이다. 그녀가 없었으면 커피의 고향인 에티오피아라는 나라도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