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음이 낀 명칭 ‘더치커피’의 진실
[아시아엔=박영순 <아시아엔> 편집위원, <커피인문학> 저자, 커피비평가협회장] 커피가 몸에 좋다는 정보가 쏟아지고 있다. 암과 치매 등 각종 질환을 예방하고 매일 커피를 마시면 오래 산다는 연구 결과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가히 ‘커피 만능주의’라 할 만하다. 하지만 커피애호가들조차 2가지는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하나는 커피를 진하게 볶아 기름성분을 많이 추출해 섭취함으로써 고지혈증을 초래하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박테리아와 곰팡이 오염 위험이 있는 콜드브루(Cold brew) 커피다. 더치커피(Dutch coffee)라고도 불리는데 잘못된 일본식 표현이다. 여름철에 콜드브루 커피는 당국이 단속에 나설 정도로 골칫거리가 되기도 한다.
커피를 차갑게 즐기는 분들은 여름이 반갑다. 아이스커피가 제 맛이 나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찬물로 성분을 추출하는 콜드브루 커피도 6~8월이 성수기다. 하지만 콜드브루 커피는 아이스커피와 달리 관리에 보다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일반적으로 커피는 마시기 직전에 볶은 원두를 갈아 추출하므로 변질 위험이 거의 없다. 그러나 콜드브루 커피는 12~24시간 공기에 노출된 상태에서 성분을 추출한 뒤, 대부분 물로 희석해 유통하기 때문에 오염될 위험성이 있다.
콜드브루 커피는 시중에서 더치커피라는 이름으로도 팔리고 있다. 더치는 ‘네덜란드의’라는 형용사로서, 더치커피를 직역하면 ‘네덜란드 사람들의 커피’가 된다. 일본이 붙인 명칭인데, 정작 네덜란드 사람들은 자기 나라 이름이 들어 간 연유에 대해 의아해한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이태리 타월’에 대해 보이는 황당함에 견줄 만하다. “비용을 각자 부담한다”는 뜻으로 통용되는 ‘더치페이’(Dutch pay)만큼이나 ‘더치커피’는 유래가 온당하지 않은 엉터리 표현이다
일본이 네덜란드를 통해 커피를 처음 받아들였기 때문에 ‘더치’를 명칭에 넣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에도 막부시대인 1700년경 나가사키(長崎)에 진을 치고 독점적으로 무역을 하던 네덜란드를 통해 커피를 만나게 됐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그리스도교 포교를 금지한 탓에 영국, 프랑스와 달리 종교색채가 없던 네덜란드가 혜택을 누렸다
네덜란드는 당시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 자바의 커피 밭에서 생두를 배에 실어 암스테르담으로 나르고 있었다. 네덜란드 선원들이 항해를 하면서 흔들리는 범선에서 안전하게 커피를 마실 묘안을 찾다가 개발한 것이 더치커피라는 게 일부 일본인들 주장이다. 이들은 네덜란드 선원들이 큰 통에 커피가루를 담고 찬물을 부어 하루 동안 우려낸 뒤 마신 게 더치커피의 기원이라고 말한다. 더치커피는 찬물을 방울방울 떨어뜨리는 방식 때문에 ‘일본식 워터 드립’(Japanese cool water drip)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여기에 1979년 교토에 있던 커피체인점 ‘홀리스 카페’(Holly’s Cafe)가 이 방식을 유행시켰다는 점에서 ‘교토커피’(Kyoto coffee)라는 별칭도 붙었다. 교토의 홀리스카페가 문을 연 시점은 1979년으로 불과 42년 전이다.
이런 스토리텔링 때문에 더치커피가 일본에서 발명돼 세계로 퍼져 ‘콜드브루’라는 영역을 구축했다고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찬물로 커피를 추출하는 것은 미국이 일본보다 앞서고,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과테말라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미국 코넬대에서 화학을 전공한 토드 심슨(Todd Simpson)이 1962년 과테말라에 여행 갔다가 힌트를 얻어 콜드브루를 상품화했다. 그는 과테말라의 한 마을에서 농축된 커피추출액에 뜨거운 물을 부어 즉석에서 간편하게 커피를 대접하는 것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찬물에 커피가루를 3~4시간 담가 두는 침적(浸積)식으로 커피농축액을 만들어 필요할 때마다 물을 부어 마셨다.
커피 추출에 쓰는 물이 차가우면 뜨거울 때보다 향미를 더 많이 액체에 담아둘 수 있다. 동시에 위장을 괴롭히는 오일(Oils)과 지방산(Fatty acids)이 우러나는 양이 줄어든다. 이 덕분에 토디의 커피는 향미가 부드럽고 속을 편안하게 해주는 커피로 환영을 받으며 널리 퍼졌고 ‘토디 콜드브루’라는 명성을 얻게 됐다.
콜드브루 커피와 더치커피는 기원과 추출방식이 엄연하게 다르면서도, ‘찬물추출 커피’ 또는 ‘냉침(冷浸) 커피’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 역사는 인스턴트커피의 개발(1901년)보다 반세기가 늦지만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콜드브루 커피에 질소를 넣어 흑맥주처럼 마시는 ‘나이트로 커피’(Nitro coffee)가 사랑받고 있고, 기업들은 병이나 캔에 담아 팔고 있다.
‘니트로 커피’라고도 불리는 명칭이 화학물질로 무장한 신기술 커피메뉴인 듯한 인상을 준다. 니트로(Nitro)는 ‘질소 원자 1개에 2개의 산소 원자가 결합된 원자단’을 일컫는 용어로, 간단히 말하면 공기 중의 질소(Nitrogen)라고 생각하면 된다. 여기에 커피가 결합해 우리말로는 ‘질소 커피’라고 부른다. 사실 질소는 귀하다거나 값비싼 가스가 아니다. 지구 대기의 78% 정도를 차지하는 가스로 공기 중에 산소보다 더 흔하다. 화합물이 아니라 원소상태로 존재하는 것으로 따지면 지구상에서 가장 많이 존재하는 원소이고, 우주에서도 7번째로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업적인 생산도 어렵지 않다. 공기를 액화하여 산소를 분리하여 사용할 때 부산물로 얻어진다. 그러나 소비자가 느끼는 질소가스의 가격은 만만치 않다. 휘핑기에 장착하는 질소가스는 8g짜리 하나가 480~610원이다. 8g짜리 하나로 커피추출액 450ml 니트로커피로 제조할 수 있는데, 겨우 두 사람에게 제공할 수 있는 분량이다. 따라서 니트로커피를 대접함으로써 “당신을 소중하게 여긴다”는 마음을 전하기에 충분하다.
묵직하고 다소 거친 맛을 내는 더치커피가 질소를 만나 차분해지고, 때론 더 발랄해지는 새로운 매력을 발산한다. 풍성한 미세 거품 덕분에 입술과 혀에 닿는 질감이 부드럽고, 향기가 막 피어나는 듯한 데다 단맛이 더 좋아진다는 평가들이 이어진다.
여름이면 콜드브루 커피가 주목받아 덩달아 더치커피가 회자되는데, 커피애호가들 사이에서 일본식 용어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해진다. 이런 현상이 반복되면서 커피에서 일본식 이름이 퇴출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걱정스런 마음으로 커피문화에 스며든 일본식 용어를 뒤졌다. 더치커피, 사이폰(Syphon), 핸드드립(Hand drip), 칼리타(Kalita), 고노(Kono) 등 애써 찾을 필요 없이 툭툭 튀어나온다. 일본식 용어를 따라 부르는 가운데 이것들을 그들이 처음 만들어냈다는 오해가 생겼다. 이로 인해 일본식으로 커피를 추출해야 문화적으로 고급스럽고 전문가답다는 인식까지 깊게 새겨졌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더치커피는 세계 커피계에서는 콜드브루 커피로 소통된다. 찬물로 성분을 추출한 커피를 더치커피라고 부르는 나라는 일본과 한국밖에 없다. 사이폰의 사연은 더 황당하다. 스코틀랜드의 해양학자인 로버트 네이피어가 개발하고 프랑스가 시판한 진공포트(Vacuum pot)를 1924년 일본이 가져가 사이폰이라는 이름으로 대량 생산했다. 이 명칭을 따라 부르는 사람들이 사이폰 원리가 작동되는 커피 추출법이라고 소개하지만, 사이폰의 원리가 전혀 적용되지 않는 잘못된 명칭이다.
커피 성분을 종이필터에 거르는 여과법(filtration)도 1908년 독일의 멜리타 벤츠가 생각해낸 것이다. 이것을 50년이 지난 뒤 일본이 특허를 피하기 위해 구조를 조금 다르게 해서 ‘칼리타’라고 내다팔았다. 그 명칭이 ‘멜리타를 흉내 낸’이라는 의미를 지닌 ‘가라 멜리타’(가짜 멜리타)에서 유래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우리는 조선 말기에 프랑스, 독일, 러시아, 미국, 영국을 통해 커피문화를 받아들였다. 일제 강점기 일본에게서 배운 게 아니다. 1883년(고종 20년) 제물포를 통해 커피 생두를 수입한 기록이 있으며, 앞서 1840년대 헌종 때 김대건 신부가 신학공부를 하면서 커피를 마셨다는 정황도 있다. 일본보다 앞선 조선의 커피문화가 일제 강점기를 통해 왜곡됐다. 일본식 용어에 문화적 우월주의를 퍼트리려는 일제의 속셈이 깔려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더치커피를 콜드브루로 고쳐 부르는 것은 이런 면에서 의미가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