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커피에 ‘시나몬 조미료’···파렴치범들의 무산소 발효커피 어찌할꼬”

무산소 발효 과정을 거쳐 건조된 커피 체리들

[아시아엔=박영순 <아시아엔> 칼럼니스트] 한 잔의 커피를 앞에 두고 만지작거리고 있다. 세번 네번 마셔보지만 허탈하고 찜찜하다. 분노가 치솟다 가도 힘이 쭉 빠진다. 연민이 생기기도 하지만 농간을 부리며 옳지 않게 돈을 긁어 가는 그들을 그냥 둬선 안 된다고 앙다물고 다짐한다.

조미료처럼 시나몬을 집어넣어 인공적으로 맛을 내 커피애호가들을 기만하고는 커피 생두에서 자연스럽게 비롯되는 고급 커피인양 속여 판 ‘파렴치범들의 무산소 발효커피’(Anaerobic Fermentation Coffee)에 관한 이야기다. 그 세력은 반성은커녕 커피전문가를 위장한 사람들까지 내세워 시나몬을 풀어 맛을 입히는 짓을 참신한 아이디어인양 찬양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으니 그냥 둘 순 없는 노릇이다.

콜롬비아 안티오키아 커피품질평가대회에서 가공과정에 들어 가기전에 생두의 상태를 향으로 가늠하고 있는 박영순 커피테이스터.

무산소 발효커피는 커피열매에서 씨앗을 빼내 건조하는 일련의 가공과정에서 산소가 없는 환경을 수십 시간 거치게 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젖산균(lactic-acid bacteria), 사카로마이세스(Saccharomyces)와 같은 혐기성미생물(anaerobe)들이 점액질을 먹고 살아갈 기회를 얻게 된다. 이들에게 무산소 발효는 대를 이어갈 수 있는 축복인 것이다.

우리는 이들의 생명을 살린 대가로 요구르트를 연상케 하는 부드러우면서도 상큼한 단맛을 누릴 수 있고, 그 단맛이 날이 선 자극적인 신맛을 감싸주는 덕분에 원숙한 자몽이나 파인애플 같은 과일같은 맛(fruity, 프루티함)을 즐길 수 있다. 보다 중요한 것은 무산소 발효커피들에게서 모든 아라비카 품종의 어머니인 유게니오이데스(Coffea eugenioides) 본연의 면모를 감지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아라비카 품종들이 400여년전 고향인 에티오피아를 떠나 타향살이를 하면서 온갖 병충해를 이겨내고 오직 생산량을 늘리는 혹독한 시련 속에서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던 커피 본연의 품성이다.

2004년 파나마의 고지대 보케테에 있는 ‘아시엔다 라 에스메랄다(Hacienda La Esmeralda)’ 농장의 게이샤(Gesha, 또는 Geisha로도 씀) 커피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라틴아메리카의 수많은 커피재배자들은 “한잔의 커피에서 신의 얼굴(the face of God in that cup)을 보았다”며 경배했다. 그것은 한잔의 게이샤 커피 개별자(the individual)에 대한 찬사가 아니라, 영원히 변하지 않는 보편자(the universals)로서 아라비카 커피의 원형을 마주한 데 따른 탄성이었다.

세계 각지에서 모인 커피테이스터들은 당시 아메리카 땅에서도 에티오피아 커피 맛을 볼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며 놀라워했다.

4~5년부터 중남미에서 불고 있는 무산소 발효커피의 바람은 게이샤 커피가 선사한 감동의 연장선에 있다. 아라비카 커피 본연의 향미, 커피의 본성(nature)을 해후(邂逅)하고픈 간절함을 담고 있다. 커피재배자들로서는 무산소 환경을 만들어 줌으로써 변덕스러운 날씨 속에서도 일관된 맛을 지키기 위한 지혜로운 방편이기도 하다. 그러나 재배자들은 무산소 발효기법이 품종의 개별적 특성을 단순화시키는 것을 악용해 품질이 좋지 않은 생두를 고급스런 커피인 것양 꾸미는 속임수(trick)로 전락할 것을 경계하는 눈치다.

그 우려가 ‘시나몬게이트’(Cinnamongate)로 현실화하고 보니 더 큰 위험이 드러났다. 커피에 화장을 하듯 시나몬으로 덧칠한 커피를 새로운 장르로 기정사실화하려는 음흉한 시도가 자행되고 있다. 변명이 언뜻 그럴싸해서 순진한 커피애호가들은 좀 더 지켜볼 있겠다며 관용을 베풀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그들의 변명은 거짓이다. 장황한 설명이 필요없다. 향을 넣은 헤이즐넛 커피도 있는데 문제될 게 없다는 항변에 대해선 당장 ‘시나몬 가향커피’라고 명시해 판매하라고 당부한다. 어떻게 생산하는 지가 ‘영업비밀’이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듣는 사람도 민망하다.

“와인에도 이산화황을 넣는데 시나몬을 넣는 게 잘못이냐”는 변명은 뻔뻔함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이산화황은 향을 내느라 넣는 것이 아니고 살균하려는 것이다. 더욱이 와인병에 ‘이산화황 첨가’라고 표기한다. 설령 시나몬을 커피 살균을 위해 집어넣는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 커피에 ‘시나몬 첨가’라고 명확하게 적어 판매하라.

“커피가공 과정에 효모를 넣는 것은 문제삼지 않고 왜 시나몬만 꾸짖냐”고 대드는 것은 무지의 소산이다. 효모가 점액질을 소화시키며 시나몬의 뉘앙스를 내는 것은 인류를 공격하지 않는다. 시나몬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사람에게는 고통을 준다는 사실이 마음 아프지 않은가. 더욱이 실제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 때문에 시나몬을 생채로 집어넣은 사실이 들통나지 않았던가.

시나몬으로 화장한 커피를 만들고, 수입하고 비싸게 팔아서 돈을 챙기는 세력만이 ‘시나몬게이트가’ 문제될 게 없다고 떠들고 있다.

콜롬비아 라 루이사 농장에서 무산소 발효를 거쳐 햇볕건조를 하고 있는 생두의 향을 체크하고 있는 박영순 커피테이스터.

소비자들은 지켜보고 있다. 그 세력들이 속으로 안도하거나 혹 비웃기라도 한다면 재앙을 부를 뿐이다. 침묵이 흐르는 지금의 시간이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마지막 기회이다. 반성하고 회개하는 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영원히 악마가 된 사연을 우리는 성경이나 신화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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