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있는 커피테이스팅②] 커피 향미와 사변적 사유
커피애호가들이 집에서 커피를 내려 마실 때 어떻게 하면 더 맛과 향을 즐길 수 있을까요? 커피비평가협회 회장을 맡아 커피 대중화와 고급화에 앞장서고 있는 박영순 <아시아엔> 칼럼니스트가 일반 커피애호가들의 눈높이에서 ‘이유 있는 커피테이스팅’을 두차례에 나눠 연재합니다. <편집자>
[아시아엔=박영순 <아시아엔> 칼럼니스트, 커피비평가협회 회장, 경민대 겸임교수] 커피의 향미를 알아본다는 것은 경험적(empirical)인 것일까, 사변적(Speculative)인 것일까?
커피테이스터가 ‘에티오피아 하루(Haru) 내추럴 커피’를 맛보고 “패션후르츠와 다크초콜릿의 맛이 난다”고 말하는 것은, 그가 패션후르츠와 다크초콜릿을 먹어 봤기 때문이다. 커피가 지닌 맛의 면모를 다른 사람에게 알기 쉽게 설명하려는 심정으로 커피애호가들이 향미 단어들을 활용한다.
커피를 맛본 관능적 느낌을 전달하기가 쉽지 않다 보니 다른 맛들을 끌어다 쓰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다. 하지만 여기엔 태생적 한계(?)가 있다. 패션후르츠를 먹어 본 사람만이 그 표현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콜롬비아 커피에서 재스민꽃향이 난다는 말에는 재스민향을 맡아본 사람만이 미소로 호응할 수 있다. 이런 논리라면, 다양한 향미를 경험한 사람일수록 커피 맛을 더 잘 알아본다는 등식이 성립한다.
그러나 “커피테이스팅 소질을 갖추는 것은 경험적이다”는 명제에 반론이 있다. 지난해 7월 파나마에서 게이샤 내추럴 커피 생두 1kg이 270여만원에 낙찰돼 이목을 끌었다. 도대체 어떤 맛을 내는 커피이기에 이토록 비싼 것이냐는 수군거림으로 세계가 술렁였다.
여기 저기 자료를 모아보니 이 커피의 향미적 특징은 장미, 재스민, 자몽, 베리, 복숭아, 샴페인, 파인애플, 꿀로 압축됐다. 각각의 맛은 경험적으로 알 수 있겠지만, 이 맛들이 한 입에 들어온 커피에서 동시에 감지될 때에는 도대체 무슨 맛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인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
향미 단어들을 따지고 들어가 보면 관능이라는 게 더욱 복잡해진다. “게이샤 커피에서 장미향이 난다”고 할 때, 커피에 진짜 장미가 들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생두 가공과 로스팅을 거치면서 우연히 커피에도 장미를 구성하는 베타 다마세논(β-Damascenone) 성분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거꾸로 장미향을 맡고 게이샤 커피를 꼭 떠올릴 수 있는 게 아니다.
향이라는 것은 미각을 유발하는 성분보다 작용 메커니즘이 복잡하다. 베타 다마세논은 후각세포의 한 수용체에만 결합하지 않는다. 후각수용체 하나가 여러 향기 성분과 결합하고, 베타 다마세논 역시 여러 수용체와 상호작용한다. 후각수용체들의 조합이 장미향이라는 특성을 감지해낸다. 커피에서 느껴지는 장미향과 장미에서 발산되는 향은 비슷하지만 각각 감지하는 후각수용체의 조합은 다르다. 이런 전략으로 우리는 400가지의 후각수용체를 가지고 1조가 넘는 냄새들을 구분할 수 있다. 이른바 ‘최소주의(Minimalism) 전략’은 인류의 위대한 경쟁력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경험한 것만을 커피에서 찾아내는 게 아니다. 수많은 향미 단어를 구사하는 숙련된 커피테이스터도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커피 맛을 종종 만난다. 멜론 같기도 하지만 단지 그렇게 단정지을 수 없도록 사탕수수, 잼, 시가의 원숙한 면모들이 순차적으로 이어지는 커피를 만나면 생각이 깊어진다. 이 맛을 무슨 단어로 상징화할 수 있을까? 거듭되는 사유는 커피테이스터를 궁지로 몰아간다. 이럴 때 커피테이스터들은 “나를 들뜨게 한다.” “‘어느 한 구석 모나지 않고 몸을 감싸주는 듯하다” “이슬 내린 숲 속의 옹달샘처럼 시원하고 투명하다”는 식으로 묘사를 동원한다.
결코 생각이 맛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커피의 다양한 향미적 면모들이 사유를 통해 경험하지 못했던 맛이라도 그에 대응하는 묘사와 감성을 떠오르게 한다. 달리는 말과 활짝 펴진 백조의 흰 날개를 본 인상(impression)이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페가수스(Pegasus)를 관념(idea)적으로 그려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커피 향미의 세계는 사변적이어서 끝닿을 데가 없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