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나 칼라’와 에티오피아 커피 세레모니

에티오피아인들이 중요한 행사 때 커피 열매를 동물기름과 섞어 졸여내는 방식으로 커피를 음식처럼 즐기는 부나 칼라 <출처 커피인문학>

에티오피아에서 가장 오래된 커피의식(Ethiopian Coffee Ceremony)은 ‘분나 마프라트(Bunna Maffrate)’ 또는 ‘카리오몬(Kariomon)’으로 알려져 있다. 커피 열매에서 씨앗만을 골라내 볶아 가루로 만든 뒤 물에 끓이면서 카르다몬이나 정향 등 향신료를 넣어 마시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보다 앞서 커피 열매를 통째로 동물기름과 섞어 졸여 내듯 끓여 마시는 방법이 있다. 에티오피아에서 가장 많은 종족인 오로모(Oromo)족은 지금도 ‘부나 칼라(Buna Qalaa)’라고 부르는 커피의식을 치른다. ‘커피를 살육한다(Slaughtering Coffee)’는 뜻이다. 이들에게 커피를 마시는 것은 사육제(Carnival)인 셈이다. 오로모족은 부나 칼라를 하면서 “커피의 향기를 신에게 드리니 부족 모두에게 건강과 행복을 내려 달라”고 읊조린다. 그들은 커피나무는 하느님의 눈물에서 생겨났다고 믿는다.

스튜어트 리 앨런은 ‘악마의 잔: 커피로 짚어 본 세계의 역사’에서 오로모족의 신혼부부가 치르는 첫날 밤의 의식 ‘분칼레(Bunqalle)’에 대해 상세하게 적었다. 분(Bun)은 커피를, 칼레(Qalle)는 제물의식을 뜻한다. 부부가 입으로 커피 열매를 벗기고 나눠 씹는 의식인데, 커피는 이 순간 신에게 올리는 희생제물이 된다.

에티오피아의 여타 부족들은 대부분 고기를 제물로 바치는 데, 오로모족은 커피로 이를 대신했다. 오로모족은 지금도 주술사의 무덤에 커피나무를 심는 풍습이 남아 있다. 에너지를 넘치게 하는 열매를 맺는 커피나무의 신통함이 신과 인간을 연결해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제사장은 여러 차례 입으로 커피열매의 껍질을 벗기며 중얼거린다. 이는 짐승을 도살하고 머리를 베어내는 행위를 대신하는 것이다. 의식이 끝나면 커피의 생두를 나누어 씹음으로써 각성을 체험하는데, 카페인 덕분에 깨어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을 신이 영적인 권능을 부여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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