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연대기①] “어떤 커피 품종이 세상을 지배할까?”

유게니오이데스 커피 생두의 모양은 에티오피아 재래종과 유사하다. 사진=커피비평가협회(CCA)
 생명체가 자연을 살아가는 원리는 같다. 진화론에 따르면 모든 생명체의 근원은 물이며, 탄생은 환경과 경계를 짓는 데에서 시작했다. 따라서 ‘생명의 본성’(the nature of life)이란 용어가 모든 생명체에게 성립한다. 인류는 자연에 순응하거나 때론 극복하는 전략으로 생명을 이어가며 종을 보존했다. 이런 작동원리는 커피나무에게도 마찬가지다. 커피 연대기에도 인류사와 같은 직립보행, 불의 발견, 언어사용, 농사혁명, 산업혁명 등에 견줄 만한 터닝포인트가 있다. 커피의 탄생부터 지금 이 순간 한 잔에 담기기까지 여정을 되짚었다. <편집자>

[아시아엔=박영순 <아시아엔> 편집위원, <커피인문학> 저자, 커피비평가협회장] 커피나무가 탄생한 시기를 학계에서는 약 2700만년 전 신생대로 본다. 자연사에서 이 시대 말기에 인류가 출현했는데, 커피나무는 같은 꼭두서니과인 치자나무의 형태로 카메룬에서 자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맨틀이 상승하기 시작하면서 지각을 양쪽으로 밀어내는 판구조운동에 따라 수백만년에 걸쳐 동아프리카 열곡대(裂谷帶, East African Rift Valley)가 형성됐다. 아시아의 서쪽 끝 시리아에서 시작해 홍해를 지나 에티오피아, 케냐, 탄자니아를 거쳐 모잠비크에 이르는 길이 약 6000km, 평균 폭 10km 규모에 달하는 규모다.

험준한 아프리카에 지구 둘레 7분의 1에 해당하는 거대한 평지가 생기면서 생태계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계곡을 이루는 양쪽 거대한 산에 구름이 걸렸다 넘어오자 계곡 내부의 평지에는 초원이 생겼다. 진화론에 따르면 인류의 조상인 유인원은 이제 나무와 나무로 이동하지 못하고 초원을 가로 질러야 했다. 네 발로 초원을 이동하길 수백만년, 인류 조상 중 하나로 간주되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Australopithecus Afarensis)가 일정 지점을 이동하는데 두 발로 걷는 것이 에너지 소모가 적다는 것을 몸으로 깨우치고 마침내 두 발로 초원을 걷는다. 이때가 300만년 전쯤이다.

직립보행의 흔적을 골반과 무릎, 척추뼈로 보여주는 루시(Lucy)의 유골이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 있는 국립박물관에 누워 있다. 직립보행 유골이 발견된 에티오피아에서 비슷한 시기에 오늘날 고급 커피의 대명사가 된 아라비카종이 탄생한다. 학명은 린네가 1753년 나무의 형태를 보고 분류해 붙인 코페아 아라비카(Coffea arabica)이다.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된 종에 홍해 건너 아라비아반도의 이름을 따온 것에는 사연이 있다. 유럽 학자들은 당시 커피 원산지를 예멘인 줄 알았다. 네덜란드 유대상인들을 통해 모카항을 떠난 커피가 유럽으로 전해졌기 때문에 그들에게 커피의 고향은 예멘이었다. 이런 상태로 200여년이 흘러 1960년대 DNA 분석기술이 개발되면서 커피의 기원을 밝히는 작업은 새로운 국면을 맡게 된다.

에티오피아 종의 계보를 추적해 올라가다 놀라운 사실이 확인됐다. 인류사에서 직립보행에 비유할 만한 사건이다. 일반적으로 아라비카종은 고급스러운 향미를 지니고, 카네포라(로부스타)종은 맛이 좋지 않아 인스턴트커피 제조용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유전자 분석 결과, 아라비카의 아버지가 로부스타인 것으로 드러났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훌륭한 어머니인 유게니오이데스(C.eugenioides)를 둔 덕분이다. 지질 현상으로 커피나무의 조상인 치자나무는 카메룬을 떠나 수백만년 방랑의 길에 올랐다. 콩고와 우간다에 도착해 바뀐 환경에 적응하면서 카네포라로 분화했고, 에티오피아 북동부와 소말리아 환경에 적응한 것은 유게니오이데스 종이 됐다. 그리고 인류가 두 발로 섰을 즈음, 두 개체가 만나 아라비카종이 탄생했다.

아라비카종은 염색체가 2배체인 부모와 달리 4배체로서 전혀 다른 형질의 커피였다. 카페인 함량도 부모의 절반쯤으로 적절했으며, 낮은 기온에서도 서서히 자랄 수 있어 풍성한 향미를 몸에 지닐 수 있게 됐다. 그야말로 새로운 종의 등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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