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연대기②] 예멘·브라질 등 고지대는 커피나무의 본능적·운명적 터전
[아시아엔=박영순 <아시아엔> 편집위원, <커피인문학> 저자, 커피비평가협회장] 기원후 10세기 아바스왕조가 지배하던 지금의 이란 땅에서 처음으로 커피에 대한 기록이 발견됐다. 이를 토대로 예멘에서 커피가 재배됐으며, 홍해 건너 에티오피아의 북부 하라에서도 자연 채집됐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이 시기 커피는 모두 아라비카종으로 불린다.
하지만 17세기 커피가 유럽에 전해지고 폭발적으로 수요가 증가하자, 서구 열강 사이에서는 소위 ‘커피 전쟁’이 벌어졌다. 한때 커피값이 금값을 추월할 정도로 부를 약속하는 농작물이 되자 18세기에는 인도, 동남아시아, 중남미 등 식민지 전역에서 커피 재배가 활발해졌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300여년 사이에 커피가 종의 분화를 이룰 수 있는 기간이 못 되지만, 다양한 형질을 습득한 새로운 맛의 커피들이 왕성하게 등장한 시기이다.
1690년대 인도의 수피교도인 바바 부단이 메카에서 슬쩍 빼낸 티피카종 씨앗이 마이소르에서 자라나 인도 커피의 기원이 됐다. 네덜란드는 커피의 확산에 일등공신이다. 그들이 예멘에서 인도네시아 자바섬에 심은 커피가 자바종이 됐고, 이것이 카메룬으로 돌아가 커피산업을 일으켰다. 프랑스 역할도 컸다. 1714년 암스테르담 시장이 루이 14세에게 선물로 바친 커피가 온실재배에 성공했다. 이 커피나무들이 가브리엘 드 클리외라는 프랑스 장교에 의해 카리브 해의 작은 화산섬인 마르티니크로 옮겨졌다. 드 클리외는 프랑스령 마르티니크에 주둔하면서 섬의 환경이 네덜란드가 지배하던 동인도와 유사한 점에 착안해 커피를 재배하기로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
드 클리외가 파리 왕립식물원에 있던 커피묘목 세 그루를 3개월여 항해 동안 폭풍우와 해적의 위협을 극복하고 마르티니크섬에 성공적으로 옮겨 심은 이야기는 프랑스인들에게 커다란 자긍심을 안겨준다. 그가 목이 타 들어가는 고통 속에서도 자신이 먹을 물을 커피 묘목에 주며 생명력을 유지한 열정에 세계의 커피애호가들은 경의를 표한다. 노르망디에 있는 그의 생가에는 근사한 기념관이 섰고 세계 각지에서 추모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그가 이토록 세계적인 인물이 된 것은, 드 클리외가 마르티니크섬으로 옮긴 커피가 브라질을 비롯해 콜롬비아, 페루, 파나마, 과테말라, 코스타리카 등 라틴아메리카 대륙에서 생산되는 모든 커피의 원조가 됐기 때문이다.
드 클리외가 마르티니크섬에 커피를 심은 지 10년쯤 지나 나무는 수만 그루에 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프랑스는 커피나무를 브라질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기아나(Guiana)에 옮겨 심었다. 1727년 브라질은 기아나에서 커피나무를 빼내 인접한 파라(Para) 지역에 심었다. 파라지역은 아마존 강 하구의 삼각주에 형성돼 있으며 열대우림 기후로 그늘에서 잘 자라는 커피가 생육하기에 적절했다. 일단 브라질에 안착한 커피나무는 최적의 재배지를 찾아가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에티오피아 고산지대에서 발견돼 예멘, 네덜란드, 프랑스를 거쳐 브라질에 오기까지 커피나무는 해발이 적어도 1000m가 넘는 고지대에서 재배됐다. 그러던 커피가 브라질에 와서는 이보다 낮은 지역에서부터 자라기 시작했으니, 높은 지역을 찾아 가는 것은 커피나무로서는 본능적인 것이며 운명적인 행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