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연대기③] 20세기, 커피 마침내 ‘인류의 음료’ 되다
1, 2차세계대전 복구작업에 카페인 효과 입증
‘병충해 극복’ ‘향미 고급화’…두마리 토끼 잡아라
[아시아엔=박영순 <아시아엔> 편집위원, <커피인문학> 저자, 커피비평가협회장] 1차, 2차 세계대전 속에서 커피의 가치는 더욱 빛났다. 잠을 몰아내는 효과 덕분에 커피는 군인에게 주는 필수 보급품이 됐다. 전쟁 후 세계적으로 진행된 복구작업에서 커피는 밤샘작업을 하는 근로자에게 요긴했다. 인력을 쉴 새 없이 가동해야 하는 기업인들은 ‘커피브레이크’라는 제도까지 도입해 노동자들에게 카페인을 주입해 일을 시키는데 주력했다는 견해도 있다.
커피가 20세기를 규정하는 인류의 음료로 등장하면서 산지는 생산량 증가에 박차를 가했다. 1990년대부터 삶이 풍족해지자, 세계적으로 와인처럼 커피의 향미를 즐기는 스페셜티 커피 바람이 불었다. 이로 인해 커피의 진화는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됐다.
하나는 지구온난화로 인해 병충해를 극복하는 강인한 품종을 길러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향미를 고급화한 품종의 개발이다. 후자를 대표하는 사례가 게이샤 품종이다. 게이샤 품종이 처음으로 발견된 곳은 에티오피아 남서부 카파(Kaffa) 지역이다. 이곳은 아라비카종 커피가 처음 발견된 곳으로 지목된 곳이다.
1931년 영국의 학자들이 에티오피아에서 커피종자를 수집하면서 게샤(Gesha)로 불리는 카파지역의 한 숲에서 커피씨앗을 받아내 케냐농업연구소로 옮겼다. 이때는 명칭이 게이샤가 아니라 에티오피아의 옛 이름인 아비시니아(Abyssinia)였다. 이듬해 또 게샤숲에서 커피씨앗이 수집돼 케냐농업연구소로 옮겨졌는데, 이 때는 게이샤(Geisha)라는 표기가 붙었다. 게샤숲의 명칭을 영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표기가 잘못된 것인데, 이후 오늘날까지 이 품종은 게이샤로 불리고 있다.
케냐에서 자란 게이샤 품종은 1936년 탄자니아커피연구소로 전해져 여러 농장에 심겨졌다. 이어 우간다에도 전해져 성공적으로 자라났다. 탄자니아는 게이샤 커피의 자손을 하이브리드 기법으로 개량해 커피녹병에 강한 VC-496 품종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이 품종이 아메리카 대륙에서도 일기 시작한 커피녹병, ‘로야’(Roya)를 이겨낼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1953년 코스타리카로 전해졌던 것이다. 이것을 파나마 농림부 직원이던 돈 파치가 1963년 파나마로 가져가 심어, 에스메랄다 농장에서 명품으로 거듭났다.
왜 에티오피아와 케냐, 탄자니아, 우간다, 코스타리카 등 게이샤 품종이 거쳐온 나라에서는 명품의 맛이 나지 않았던 것일까? 식물육종학자인 장 피에르 라부시는 “에스메랄다 농장을 비롯해 파나마에서 자라고 있는 게이샤 커피는 에티오피아 게샤숲에서 자라는 커피나무들과 공통된 유전자가 있지만, 그렇다고 서로 동일한 품종은 아니다”고 밝혔다. 게이샤 품종이 파나마의 풍토에 맞게 적응하면서 향미가 풍성해지는 신의 축복을 받았다는 견해인 것이다.
커피 산지에서는 병충해를 이기면서도 맛이 좋은 커피를 만들기 위해 교배를 통한 육종사업을 펼치고 있다. 일일이 이름을 댈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품종들이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 이들 커피 가운데 어떤 커피가 세상을 지배할 지는 오직 신만이 안다. 자연환경에 따라 커피가 변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