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란 이름에 담긴 진실

커피의 검은색 때문에 아랍이 지어준 이름에서 검은색을 의미하는 어근 ‘qhh’가 들어 있다. <출처 커피비평가협회(CCA)>

신이 주신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이름을 지어주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름이란, 존재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커피가 예외일 순 없다. 불리는 이름마다 사연이 담겨 있다. 반대로 속에 담긴 이야기가 마침내 이름을 만들어 냈다고 보는 게 더 옳겠다. 커피애호가의 길은 커피와 관련한 명칭마다 그 의미를 헤아려 마음에 새기는 지점에서 서서히 열리기 시작한다. <편집자>

커피는 왜 ‘Coffee’라 적고 발음하게 된 것일까? 속뜻을 알기 위해 Coffee 자체의 어원을 따져보는 것은 소용이 없다. 터키 또는 네덜란드의 말을 소리나는 대로 가져가 알파벳으로 표기한 것이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의 어원을 밝히기 위해선 국어사전이 아니라 음을 따온 영어 ‘Television’의 어원을 밝혀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옥스포드 사전은 커피의 어원을 “16세기 후반 터키의 카흐베(Kahveh) 또는 아랍의 카와(qahwa)에서 유래했으며, 아마도 네덜란드의 코피(koffie)를 거쳐 coffee가 됐을 것”이라고 간략하게 적어 놨다. ‘coffee’라고 적힌 최초의 인쇄물은 윌리엄 페리(William Parry)가 1601년 출간한 <페르시아 여행기>이다. 그는 1599년 시리아의 알레포에 들렀을 때 투르크인들이 방석을 깔고 앉아 ‘커피’라고 부르는 음료를 나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묘사했다. 페리는 이 음료가 겨자씨처럼 생긴 씨앗으로 만들어지는데, 벌꿀술처럼 뇌에 영향을 끼쳐 사람들을 취하게 만드는 것 같다고 적었다.

17세에 들어서면서 아라비아반도와 레반트 지역, 이라크, 이란 등 커피를 마시는 이슬람권역을 여행하는 유럽인들이 부쩍 늘어났다. 그들은 생소한 검은색 음료를 마시는 현지인들을 보고 제각각 그들이 발음하는 소리를 제 나라말로 옮겼는데, 이 때문에 표기가 다양할 수밖에 없었다. 영국인 사이에선 대체로 카오우아(Chaoua), 카오나(Chaona), 코아우아(Coaua), 코파(Coffa) 등으로 표기된다. 모두 음차한 것이기 때문에 이름만 봐서 어떤 의미가 담겼는지 알 수 없다.

따라서 커피라는 명칭에 담긴 의미를 알기 위해선 투르크인 또는 아랍인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유럽인에게 ‘커피’라고 들린 그 말의 실체는 무엇일까?

앨런 케이(Alan S. Kaye)는 1986년 학술지 에 게재한 논문 ‘커피의 어원: 검은 음료(The Etymology of Coffee: The Dark Brew)’에서 아랍어를 추적했다. 그는 ‘카와(Qahwah)’라는 베두인들의 용어가 16세기 오스만 투르크에 의해 카흐베(Kahve)로 불렸으며, 이를 네덜란드 상인들이 ‘코피(koffie)’라고 표기하고 부르는 과정을 거쳐 영어권에 유입됐다고 주장했다.

미국 워싱턴 스미스소니언박물관에 전시된 배두인의 천막(Bedouin Tent). 아라비아반도에서 유목생활을 하던 베두인의 15~16세기 주거문화를 엿볼 수 있다. 왼쪽 손잡이가 긴 냄비는 커피를 볶는 도구이고, 그 앞에 커피콩을 분쇄하는 청동절구가 있다. 뒤쪽 2개의 주전자는 각각 불에 올려 커피를 준비하는 것과 손님에게 따라줄 때 사용된 것이다. <출처 커피비평가협회(CCA)>

아랍어 카와는 음료를 빚은 열매나 나무와 같은 원재료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이름은 커피가 지닌 효능에서 비롯됐다. 카와는 ‘식욕이 없다(to have no appetite)’ 또는 ‘배고픔을 없앤다(to lack hunger)’는 아랍어 카히야(Qahiya)에서 비롯됐다. 무슬림은 신과 직접 소통하기를 소망한다. 신과 자신 사이에 중재자가 필요 없다는 신념에서 이슬람에는 성직자가 없다. 적어도 이슬람이 기원한 7세기부터 16세기까지 무슬림은 성직자 없이 스스로 구도의 길에 나서는 수도자임을 자처했다.

특히 신비주의자로 분류되는 수피교도들은 금욕주의를 실천하며 신과 접촉하는 순간을 갈망했다. 쓴맛과 텁텁함으로 식욕을 떨어뜨리는 검은 음료를 이들은 카와라 부르며 소중하게 여겼다. 허기가 극단에 달해 정신이 혼미해져야 신을 만날 수 있는 황홀경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교도들이 조상으로 여기는 아브라함이 ‘신의 친구’라는 반열에 오를 수 있던 것이 잠을 자지 않고 계속 기도했기 때문이라고 여긴 신념도 커피 전파에 한 몫을 했다. 아브라함을 본받아 밤새 기도하려는 수피들에게 각성효과로 졸음을 쫓아주는 커피는 ‘신이 내린 음료’와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커피를 마시면 지옥 불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소문도 늘 커피를 곁에 두고 금욕과 고행을 거듭하는 수피 수도승들에게서 비롯됐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신을 직접 만나기를 소망했던 이슬람의 수피교도들은 커피를 마시고 빙글빙글 도는 수피댄스를 추며 황홀경에 빠지고자 했다. <출처 커피인문학>

커피 음료가 검은 빛깔을 띠는 점도 이름에 담겼다. 아랍어의 어근 ‘Qhh’는 ‘검은색(dark color)’을 뜻하는데, 카와에는 이 뜻도 담겨 ‘색이 검은 와인’을 뜻한다는 견해가 있다. 아프리카에서 아라비아반도로 커피가 전해질 때, 무슬림들이 에티오피아인들이 와인처럼 검은색 음료를 마시는 것을 보고 ‘카와’라고 불렀을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다. 에티오피아에서 아라비카 커피의 기원지로 꼽히는 카파(Kaffa)가 카와와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에, 카파의 지명을 따 커피로 불렀다는 견해가 있지만, 앨런 케이는 연관성이 매우 희박하다고 선을 그었다.

이렇듯 아랍인에게 커피의 본질은 ‘금욕주의 실천을 돕는 도구’이자 ‘와인처럼 검은색을 띠는 음료’이다. 그렇다면, 아라비카 커피의 기원지인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커피를 어떻게 불렀으며, 무슨 의미를 담았던 것일까? 에티오피아인들이 커피를 지칭하는 용어는 아랍인과 사뭇 다르다. 지역과 부족에 따라 분나(Bunna), 분(Bunn), 부나(Buna), 분남마(Bunnamma) 등 명칭이 다르지만 모두 알파벳 ‘B’로 시작한다. 모두 분(Bunn)에서 갈라진 이름들인 것으로 보이는데, ‘분’은 갈색(Brown)을 의미한다.

씨앗이나 콩을 볶으면 성분 가운데 환원당과 아미노산이 반응을 일으켜 멜라노이딘 색소를 만들기 때문에 노란색, 갈색을 거쳐 심하면 검게 바뀐다. 에티오피아인들에게 볶으면 갈색으로 변하는 커피는 음식이었다. 식욕을 억제해 잠을 쫓거나 금욕주의를 실천하기 위한 고행의 도구가 아니었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마시는 아침의 냉수요, 식후에 소화를 돕거나 입안을 부드럽게 헹구어 주는 숭늉과 같은 음료, 곧 일상이었다. 그러나 부족의 명운이 걸린 전쟁을 앞두거나 축하할 일이 있을 땐 분나를 섭취하는 방법이 다르다. 말린 커피 열매를 동물기름과 섞어 졸임으로써 지방의 높은 에너지와 카페인의 각성효과를 함께 누렸다. 그 모습은 과숙한 열매가 담긴 검은 와인처럼 보였을 법하다.

아랍인들이 에티오피아의 bunn을 처음 봤을 때, 잉크처럼 진한 검은색이 먼저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조금이나마 입에 담아 본 사람들은 특유의 쓴맛이 식욕을 떨어뜨리게 하는 인상을 받았을 것이며, 발효취와 언뜻 감지되는 날카로운 신맛이 포도주를 연상케 했을 수도 있다. 커피란, 처음엔 거부감을 주지만 점차 다시 찾도록 우리를 길들여간다. 더욱이 이슬람의 수도승들이 커피를 마시고 지병을 고치고 원기를 회복했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찾는 사람들이 급속히 늘어났다.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의 카바(Kaaba) 신전에서 3.2km 떨어진 히라(Hira) 산에 있는 작은 동굴. 예언자 마호메트가 명상을 하던 곳으로, 무슬림들은 마호메트가 이 곳에서 대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믿는다. <출처 커피인문학>

커피는 에티오피아에서 나일강 루트를 통해 이집트로, 다른 하나는 홍해를 건너 예멘으로 전해졌다. 이라크 바그다드병원장이던 라제스(865~923)는 ‘의학보고’에 “커피가 사지를 튼튼하게 하고 피부를 맑게 한다. 커피를 마시면 좋은 체취가 난다”고 썼다. 이는 커피에 대한, 현존하는 가장 오랜 기록이다. 여기에 커피는 분춤(bunchum)으로 적혀 있다. 이 무렵부터 아랍인은 ‘bunn’을 커피 또는 커피씨앗을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했지만, 점차 효능에 주목하면서 카와로 부르게 됐다.

이름엔 존재하는 그것의 본질이 담겨 있다. 덜어내면 존재의 의미가 사라지는 정체성을 본질이라고 할 때, Coffee에서 무엇을 빼면 커피가 될 수 없는 것일까? 신에게 바짝 다가가고자 하는 아랍의 수도승에겐 황홀경에 빠질 수 있게 하는 도구였고, 에티오피아인에게는 중요한 순간 각성을 촉진하는 음료였다. 황홀경와 각성. “커피는 악마의 키스다”라는 터키 속담처럼 모순적이다.

그러나 뇌에 작용해 명상과 사유를 이끈다는 점에서는 같다. 커피라는 이름에 담긴 의미는 ‘뇌에 작용하는 신비로운 힘’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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