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백원우의 꿈, 장자의 ‘나비의 꿈’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장자는 BC 4세기에 활동한 중국 도가(道家) 초기의 가장 중요한 사상가다. 본명은 장주(莊周), 그가 쓴 <장자>(莊子)는 도가의 시조 노자(老子)가 쓴 것으로 알려진 <도덕경>(道德經)보다 이해하기 쉽다. 장자의 사상은 중국불교 발전에도 영향을 주었으며, 중국의 산수화와 시가(詩歌)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장자의 생애를 기록으로 보면 이렇다. 후대의 학자들이 가장 뛰어난 장자 연구가로 평가한 서진(西晉)의 곽상(郭象, ?~312)은 장자의 저작에 처음으로 주석을 단 인물이다. 그리고 장자의 위치를 도가사상의 원류로 끌어올린 사람이다. 후대 불교, 특히 선(禪) 불교의 학자들도 장자의 책을 많이 인용했다.
장자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생애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한대(漢代)의 위대한 역사가 사마천(司馬遷, ?~BC 85)은 그의 <사기>(史記) ‘열전’(列傳)에서 장자의 생애에 대해 아주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다. 열전에 의하면 장자는 전국시대 송(宋)나라의 몽(蒙, 지금의 허난 성河南省 상추현商邱縣)에서 태어났고, 이름은 주(周)이며, 고향에서 칠원(漆園)의 하급관리를 지냈다.
장자의 저서는 <남화진경>(南華眞經)이라고도 부르는 자신의 이름을 딴 <장자>가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이 <장자>는 총 33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4세기에 읽히던 <장자>는 53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 이후 수많은 판본이 나왔으며 <장자>에 대한 다양한 해석 때문에 본래의 내용이 불분명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장자> 내편(內篇 1~7권)의 7편은 대부분 장자 자신이 지은 것이 분명하지만, 외편(外篇 8~22편)과 잡편(雜篇 23~33편)은 그 자신이 쓴 것도 일부 있는 듯하나 대부분 위작(僞作)으로 보인다고 한다.
장자의 인품에 대해서는 <장자>의 내편과 외편에 나오는 일화들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장자는 이 일화 속에서 개인의 안락함이나 대중의 존경 따위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예측불허의 괴팍한 성인으로 나타나 있다. 그의 의복은 거칠고 남루했으며 신발은 떨어져나가지 않게 끈으로 발에 묶어놓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비천하거나 가난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친한 친구인 혜시(惠施)가 부인의 상을 당한 장자를 조문하러 와서 보니, 장자는 돗자리에 앉아 대야를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혜시가 장자에게 평생을 같이 살고 아이까지 낳은 아내의 죽음을 당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따졌다.
그러자 장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내가 죽었을 때 내가 왜 슬프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아내에게는 애당초 생명도 형체도 기(氣)도 없었다. 유(有)와 무(無)의 사이에서 기가 생겨났고, 기가 변형되어 형체가 되었으며, 형체가 다시 생명으로 모양을 바꾸었다. 이제 삶이 변하여 죽음이 되었으니 이는 춘하추동의 4계절이 순환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아내는 지금 우주 안에 잠들어 있다. 내가 슬퍼하고 운다는 것은 자연의 이치를 모른다는 것과 같다. 그래서 나는 슬퍼하기를 멈췄다.”
장자의 임종에 즈음하여 제자들이 그의 장례식을 성대히 치르려고 의논하고 있었다. 이것을 들은 장자가 말했다. “나는 천지로 관(棺)을 삼고 일월(日月)로 연벽(連璧)을, 성신(星辰)으로 구슬을 삼으며 만물이 조상객(弔喪客)이니 모든 것이 다 구비되었다. 무엇이 더 필요한가?”
이에 제자들은 깜짝 놀라 매장을 소홀히 하면 까마귀와 솔개의 밥이 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장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땅 위에 있으면 까마귀와 솔개의 밥이 되고, 땅속에 있으면 땅속의 벌레와 개미의 밥이 된다. 까마귀와 솔개의 밥을 빼앗아 땅속의 벌레와 개미에게 준다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
그럼 장자의 도관(道觀)은 어떤 것일까? 장자는 말로 설명하거나 배울 수 있는 도는 진정한 도가 아니라고 가르쳤다.
“도는 시작도 끝도 없고 한계나 경계도 없다. 인생은 도의 영원한 변형에 따라 흘러가는 것이며, 도 안에서는 좋은 것, 나쁜 것, 선한 것, 악한 것이 없다. 사물은 저절로 흘러가도록 내버려두어야 하며 사람들은 이 상태가 저 상태보다 낫다는 가치판단을 해서는 안 된다. 참으로 덕이 있는 사람은 환경, 개인적인 애착, 인습, 세상을 낫게 만들려는 욕망 등의 집착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져야 한다.”
장자는 관리생활의 번잡함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초나라의 재상직을 거절했다. 그의 인식에 대한 철저한 상대성은 <장자>에 나오는 유명한 ‘나비의 꿈’(胡蝶之夢)에 잘 나타나 있다.
“언젠가 나 장주는 나비가 되어 즐거웠던 꿈을 꾸었다. 나 자신이 매우 즐거웠음을 알았지만, 내가 장주였던 것을 몰랐다. 갑자기 깨고 나니 나는 분명히 장주였다. 그가 나비였던 꿈을 꾼 장주였는지 그것이 장주였던 꿈을 꾼 나비였는지 나는 모른다. 장주와 나비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음은 틀림없다. 이것을 일컬어 사물의 변환이라 한다.”
못난 나무가 산을 지킨다. 길가에 놓여 있는 보잘 것 없는 돌멩이 하나가 물에 놓이면 작은 물고기들의 소중한 안식처가 된다. 산비탈에 웅크리고 있는 보잘 것 없는 한 그루 나무가 장마 때에는 산사태를 막아 고귀한 존재가 되어 준다. 못난 큰 나무는 더 가지가 무성하여 더운 여름 뜨거운 햇볕에 지친 사람들에게 그늘이란 쉼터를 제공해 주고, 추운 겨울에는 오갈 데 없는 새들의 아늑한 보금자리 역할을 해주는 빛과 같은 존재가 된다.
오늘 당장 좋은 곳에 쓰임 받지 못한다고 해서 낙심할 필요는 없다. 묵묵히 실력을 키우며 정상에 설 그 날을 위해 준비를 하는 것이다. 적당한 시기가 되면 가장 멋진 모습으로 능력을 발휘하게 될 때가 있다. 장자야말로 무애자재(無碍自在)의 도를 깨친 위대한 사상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