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양심’ 부전자전···‘도덕철학’ 칸트와 그의 아버지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양심(良心)은 어떤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 선과 악을 구별하는 도덕적 의식이나 마음씨를 말한다. 그리고 선악을 판단하고 선을 명령하며 악을 물리치는 도덕의식이다. 또 자기가 행하거나 행하게 되는 일, 특히 나쁜 행위를 비판하고 반성하는 의식을 말하기도 한다.
이와 비슷한 말로 도덕(道德)이 있다. 도덕은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나 바람직한 행동 규범을 말한다. 소태산(少太山) 부처님께서는 <대종경>(大宗經) ‘인과품’(因果品)에 도덕을 아주 쉽게 말씀했다.
무릇 도(道)라 하는 것은 쉽게 말하자면 곧 길을 이름이요, 길이라 함은 무엇이든지 떳떳이 행하는 것을 이름이다. 그러므로 하늘이 행하는 것을 천도(天道)라 하고, 땅이 행하는 것을 지도(地道)라 하며, 사람이 행하는 것을 인도(人道)라 한다.
그런데 인도 가운데에도 또한 육신이 행하는 길과 정신이 행하는 길 두 가지가 있다. 그런데 이 도의 이치가 근본은 비록 하나이나 그 조목은 심히 많아서 가히 수로써 헤아리지 못할 정도다. 그러니까 어느 곳을 막론하고 오직 이 당연한 길을 아는 사람은 곧 도를 아는 사람이요, 당연한 길을 모르는 사람은 곧 도를 모르는 사람이다.
그 중에 제일 큰 도로 말하면, 곧 우리의 본래 성품(性品)인 ‘생멸(生滅) 없는 도’와 ‘인과 보응되는 도’다. 이는 만법을 통일하며 하늘과 땅과 사람이 모두 여기에 근본하였으므로 이 도를 아는 사람은 가장 큰 도를 알았다 하는 것이다.
그럼 덕(德)이란 무엇일까? 덕은 쉽게 말하자면 어느 곳 어느 일을 막론하고 오직 은혜가 나타나는 것을 이름이다. 하늘이 도를 행하면 하늘의 은혜(恩惠)가 나타난다. 그리고 땅이 도를 행하면 땅의 은혜가 나타나고, 사람이 도를 행하면 사람의 은혜가 나타나서, 천만가지 도를 따라 천만 가지 덕이 화하는 것이다. 그 중에 제일 큰 덕으로 말하면 곧 대도(大道)를 깨달은 사람으로서 능히 유무(有無)를 초월하고, 생사를 해탈하며, 인과에 통달하여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한 가지 극락에 안주하게 하는 것이 덕인이다.
그러나 만일 도덕의 원리를 알지 못하고 사사(私邪)하고 기괴한 것을 찾으며 역리(逆理)와 패륜(悖倫)의 일을 행하면서 입으로만 도덕을 일컫는다면 이것은 사도와 악도를 행하는 것이다. 아주 조심할 바다.
임마누엘 칸트(1724~1804)는 도덕철학을 높이 세운 위대한 철학자였다. 그의 묘비에는 이런 글이 있다. “생각을 거듭할수록 감탄과 경외로 나의 마음을 가득 채우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나의 머리 위에 별이 총총히 빛나는 하늘이며, 다른 하나는 내 안의 도덕법칙이다.”
칸트는 하늘의 별처럼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양심이 자기 마음속에 또렷이 빛나고 있다고 했다. 칸트가 도덕법칙을 강조한 데에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어느 날 그의 아버지는 말을 타고 산길을 지나다 강도를 만나 가진 것을 모두 빼앗겼다.
강도가 물었다. “숨긴 것이 더 없느냐?” “없습니다.” “그럼 이제 가거라.” 그런데 길을 가던 칸트의 아버지는 바지춤에 몰래 숨겨둔 금 덩어리가 있음을 뒤늦게 발견했다. 그는 강도들에게로 다시 달려갔다. “조금 전에는 경황이 없어 숨긴 게 없다고 했지만 지금 보니 이 금덩이가 남아 있었습니다. 받으십시오.” 그 말에 강도들은 놀라 자빠지고 말았다.
강도들은 빼앗은 물건들을 돌려주면서 그 앞에 엎드려 용서를 빌었다. 정직한 아버지에게서 양심의 횃불을 밝힌 위대한 철학자가 태어난 것이다.
우리 사회에선 지도층 인사들이나 정치인, 심지어 일부 성직자들이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증거가 드러나도 갖은 변명으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다반사다.
그들의 마음속에 칸트처럼 빛나는 양심이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