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12월, 마지막 남은 ‘마중물’마저 정녕 마시겠습니까?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원불교에서는 ‘자리이타’(自利利他)>라는 말을 많이 쓴다. 불도(佛道)를 닦는 일은 자신을 위할 뿐 아니라 남을 위하여 닦는다는 말이다. 자리(自利)란 스스로를 이롭게 한다는 뜻으로 노력하고 정진하여 수도의 공덕을 쌓는 것을 말하다.
이에 대하여 이타(利他)란 다른 이의 이익을 위하여 행동하는 것을 뜻한다. 자신의 이익뿐 아니라 모든 중생의 구제를 위해 닦는 공덕을 말한다. 이렇게 자리와 이타가 조화를 이루면서 동시에 완전하게 실현된 상태, 곧 자리이타의 세계가 바로 일원대도(一圓大道)의 세계다.
드넓은 사막 한 가운데, 이제는 폐허나 다름없는 주유소가 있고, 거기에 그 일대에서 유일하게 물 펌프가 하나 남아있다. 한 지친 나그네가 목마름으로 거의 실신할 지경에 이르렀을 때, 주유소의 물 펌프를 발견하고 한달음에 달려간다. 그리고는 한 바가지의 물과 함께 다음과 같은 내용의 팻말을 발견한다.
“이 물 펌프 밑에는 엄청난 양의 시원한 지하수가 흐르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른 사람은 이 펌프 물로 목을 축이고 가셔도 좋습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명심해야 할 사실은 펌프 앞에 놓은 바가지의 물만은 절대로 마시면 안 됩니다. 이 물을 펌프 안에 넣어서 열심히 펌프질을 해야만 지하의 물을 끌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펌프 안의 물을 퍼올려 목을 축이셨으면 떠나시기 전에 잊지 말고 이 바가지에 다시 한가득 물을 퍼놓고 가시기 바랍니다. 나중에 올지도 모르는 또 다른 나그네를 위해서 입니다.”
짧은 내용의 이야기이지만, 우리는 여기에 내포된 큰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나그네가 펌프 물을 마실 수 있게 된 것은 그보다 앞서서 펌프를 다녀갔던 수많은 사람들이 팻말의 충고대로 바가지의 물만은 마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나그네가 잠깐 동안 목마름을 참고 한 바가지의 물을 지킬 수 있다면 이 펌프 물은 앞으로도 목마름에 지친 수많은 나그네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죽을 지경에 이르는 목마름을 참고 얼굴도 모르는 뒷날의 나그네를 위하여 다시 한 바가지의 물을 남겨 놓는 마음, 바로 이것이 자리이타행이다.
자리이타가 원만하게 완성되려면 다섯 가지 덕(德)을 갖춰야 한다.
첫째, 큰 원을 발한다. 사(私)를 경영하고 저만 이롭게 함은 이슬 같고 연기와 같은 것이다. 불보살이 되어 중생 건지려 함이 모든 원의 으뜸이다.
둘째, 큰 믿음을 세운다. 묘함이 다른 묘함이 없고 보배가 다른 보배가 없다. 철주(鐵柱)의 중심이요 석벽(石壁)의 외면 같은 큰 믿음을 세우는 일이다.
셋째, 큰 분심(忿心)을 일으킨다. 이익을 한 근원에 끊으면 그 공이 백배요, 세번 주야를 반복하면 그 공이 만배라 하였다.
넷째, 큰 의심을 품는다. 큰 믿음 아래 큰 의심이 있다. 일심 이르는 곳에 금석도 뚫린다.
다섯째, 큰 정성으로 행한다. 진실 되어 거짓 없으면 안과 밖이 둘이 아니게 된다. 처음과 끝이 한결 같으면 천지와 공(功)이 같게 된다.
서원(誓願)과 욕심은 비슷하다. 그러나 천양의 차가 있다. 서원은 나를 떠나 공(公)을 위하여 구하는 마음이요, 욕심은 나를 중심으로 사(私)를 위하여 구하는 마음이다. 우리 큰 서원을 세우고 신분의성(信忿疑誠)으로 달려가면 마침내 불보살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
자리이타의 길을 달려가는 사람이 바로 불보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