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신문’ 올해 사자성어 ‘공명지조’는 이들을 겨냥했다?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교수신문>이 2019년 사자성어로 ‘공명지조(共命之鳥)’를 선정·발표했다. 공명지조는 “어느 한쪽이 없어지면 자기만 살 것 같이 생각하지만, 그러다간 모두 죽고 만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는 “서로를 이기려고 하고 자기만 살려고 하지만, 어느 한쪽이 사라지면 자기도 죽게 되는 것을 모르는 현재 한국사회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다”고 밝혔다.
공명지조는 불교경전 <불본행집경>, <잡보장경>에 나오는 새다. 이 새는 머리가 두 개인데, 항상 몸에 좋은 열매를 챙겨 먹는 한 머리를 질투한 나머지 한 머리가 독이든 열매를 몰래 먹어버린다. ‘운명공동체’인 두 머리는 결국 모두 죽게 된다는 슬픈 운명의 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꼭 슬픈 운명을 지닌 ‘공명지조’와 같은 형국이다. 어떻게 한 번도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하고 사사건건 극과 극을 향해 치닫는 것일까? ‘공명지조’를 선택한 교수들은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좌우 대립이며, 진정한 보수와 진보를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정치가 좌우로 나뉜 것은 그렇다고 치고, 왜 국민들까지 이들과 함께 나뉘어서 편싸움에 동조하고 있는지 안타깝다”는 의견을 내놨다. 우리 덕화만발 카페 ‘우리들의 운문방’에 청니(靑泥) 김병래 시인의 ‘공명지조’라는 제목의 시가 올려져 있다.
공명지조(共命之鳥)
예로부터 우리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고
이웃집 호박이 잘되면
말뚝을 박는다 했다
어떤 심사에서 그랬을까?
진정 남이 망하기를 바라고
좋아하는 민족이련가?
네가 죽고 내가 산다고
내가 죽고 네가 산다고
이 세상 모든 게 네 것이 되고
내 것이 되겠는가?
아니다 아니다 절대 아니다
눈만 뜨면 네편 내편 갈라
죽자 살자 물어뜯는 풍토
언제쯤 사라지려는가
머리가 둘 달린 새가
서로 다투고 미워하다
함께 죽었다는 의미를
깊이깊이 생각해 보자
그렇다. 보수 진보를 넘어 사회정의를 실현하지 않으면 우리는 죽는다. 건강한 보수, 건전한 진보, 그 둘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두 축(軸)이다. 보수는 진보의 급진적인 무리한 변혁을 저지·방어하고, 진보는 보수의 기득권 횡포와 전횡을 억지·견제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진보 보수의 존립 의미이자 또한 담당해야 할 역사적 책무이기도 하다.
서로가 자기의 주의·주장만 옳고, 상대방은 그르다고 고집하며 양보와 승복을 않는 한 그 해결책은 있을 수가 없다. 더욱이 그들의 주의·주장이 독선과 맹신에 바탕한다면 그야말로 파멸밖에는 있을 수 없다. 나라의 장래를 생각한다면, 보수나 진보가 치열한 자기 성찰과 일대 혁신이 있어야 한다.
그 방법이 정산(鼎山, 1900∼1962) 종사의 ‘삼동윤리’(三同倫理)다.
첫째, 동원도리(同源道理). 모든 종교와 교회가 그 근본은 다 같은 한 근원의 도리인 것을 알아서, 서로 대동 화합하자는 것이다. 정산 종사는 동원도리의 근본인 일원대도(一圓大道)의 정신을 체득하여 세계의 모든 종교가 하나로 융통할 수 있도록 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둘째, 동기연계(同氣連契). 모든 인종과 생령이 근본은 다 같은 한 기운으로 연계된 동포인 것을 알아서, 서로 대동 화합하자는 것이다. 정산 종사는 인간 스스로 서로 다른 종족에 대한 차별제도를 극복하고, 인류 중심적 사고방식을 전환하여 모든 생명체가 하나의 기운으로 연계되어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셋째, 동척사업(同拓事業). 모든 사업과 주장이 다 같이 세상을 개척하는 데에 힘이 되는 것을 알아서, 서로 대동 화합하자는 것이다. 정산 종사는 동척사업의 윤리에서 인류가 같은 목적을 가지고 인류를 위한 사업을 하는 일임을 깨우쳐, 서로 다른 신앙과 사상과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상호간에 화합하는 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삼동윤리에서 중요한 실천 덕목은 ‘중정(中正)의 도’를 실천하는 것이다. 어느 것에도 편중되지 않으면서 중도를 실천하는 것이 바른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