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BTS)과 모성본능의 여성성 리더십

방탄소년단 태형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모성(母性)이란 “여성이 어머니로서 가지는 정신적, 육체적 성질”이라고 국어사전에 나와 있다. 이제는 남녀평등시대에서 여성상위시대로 인류의 위상이 바뀐 지 오래인 것 같다.

2019년 12월 3일자 <조선일보> ‘윤희영의 News English’에 ‘식물인간 엄마를 되살린 모성 본능’이라는 기사가 나와 있다.

모성본능은 자연의 법칙을 이길 때가 있다. 그런 기적 같은 일이 아르헨티나에서 일어났다. 세 자녀의 엄마 마리아 페레이라(42)씨는 ‘묻지마 폭행’을 당해 뇌사(腦死) 위험에 처했다. 며칠 후엔 식물인간이 됐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아이들에겐 그때서야 처음 병상의 엄마 모습을 보여줬다. 생명 유지 장치를 달고 있는 모습에 충격을 받을까봐 망설였다. 첫째와 둘째는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두 살 배기는 영문도 모른 채 따라 울었다. 배고프다고 칭얼대면서 엄마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때였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못하던 엄마가 한달간의 혼수상태에서 깨어났다. 눈도 뜨지 못한 상태에서 환자복을 잡아 내리더니 칭얼대는 막내딸에게 젖을 먹이기 시작했다. 마법과 같은 순간이었다. 온 가족이 끌어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의식을 온전히 되찾은 건 아니다. 아직은 막내딸을 느끼고 예전처럼 쓰다듬고 보듬어주는 정도지만, 회복세가 완연해지고 있다. 모성 본능이 엄마를 깨어나게 했다는 것 외엔 달리 설명이 안 된다.

흔히 여자는 약하다고 한다. 그러나 모성은 강하다고 한다. 특히 반도국가의 여성들이 강한 이유가 있다고 한다. 한반도에는 930번의 외침이 있었다. 그런데 남자들이 막은 것은 오직 30번, 나머지 900번은 여자들이 애들을 업고 피난해서 막았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자녀를 지키기 위해서 엄마는 강해져야 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한국 골프 낭자군이 미국의 LPGA를 휩쓰는 이유라고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국여자 양궁이 10여년간 세계를 제패한 전적을 쌓은 이유도 이 모성성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한다.

혹자는 한국의 방탄소년단(BTS)의 성공도 한국 특유의 여성성 리더십에서 찾는다. 과거가 근육질의 카스리스마나 리더십의 시대였다면, 현대는 모성본능의 여성성 리더십 시대로 들어선 지 오래다. 그 여성성 리더십의 실체를 방탄소년단을 통해서 세계가 공감하고 있다.

종교도 마찬 가지다. 지금까지 세계 대부분 종교는 혜(慧)와 복(福)을 주관하는 카리스마적 남성성 리더십을 추구하여 왔다. 그리고 보조수단으로 모성성(母性性)을 가미하여 온 것이다.

천주교는 서기 800년부터 마리아를 성모로 모시고 기도하였지만, ‘은총의 중재자’로 정한 것은 1917년이며, 1931년에 와서야 마리아를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어머니라 하고, 동상을 만들어 놓고 그 앞에서 기도를 하면서, 실상 예수님보다 더 높은 위치에 두고 있다. 그리고 ‘어머니 하나님’에 대한 예우를 다하고 있다.

불교에도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 있지만 부처가 아닌 보살의 단계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비구니(比丘尼)는 비구(比丘)에게 공경을 표해야 한다. 그런데 유독 원불교만이 최고 의결기관인 수위단원을 남녀동수로 하고 있다. 더욱이 여성인 용타원(龍陀圓) 서대인(徐大仁) 종사(宗師)를 대각여래위(大覺如來位)에 추존(追尊)한 것은 종교역사상 최초다.

이와 같이 원불교는 종교의 모성성을 요구하는 시대적 흐름에 선제적으로 대처해 왔다. 원불교의 2대 종법 정산여래(鼎山如來)께서 ‘한 울안 한 이치’에서 이런 말씀을 했다.

“선천(先天)은 아버지와 같고 후천(後天)은 어머니와 같다. 아버지는 명령을 잘 하고 어머니는 달래기를 잘 하며, 아버지는 위에서 내려오고 어머니는 아래에서 올라온다. 그래서 지금은 여자가 힘을 내는 시대다.”

지금 원불교는 비교우위인 모성성을 살려 세계 교화를 선도하고 있다. 어쩌면 오늘날 원불교가 4대 종교의 반열에 올라선 것은 정녀(貞女) 교무(敎務)의 힘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제는 비가 올 때 우산을 받쳐주는 카리스마적 리더십이 아니라, 같이 비를 맞는 공감의 리더십이 필요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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