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을 읽는 변호사’ 저자 니시나카 쓰도무 “악행으로 얻은 성공 오래 못 가”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흔히 운을 ‘끊어진 것을 이어주는 것’ ‘망가진 것을 고쳐주는 것’이라고 한다. 그럼 정말 운(運)이라는 것이 있는 걸까? 결론은 “운은 있다”이다.
그럼 운이란 무엇이고 어떤 작용을 하는 것인가를 알아보자.
운이란 고정되어 정체되어 있지 않고 흐르고 움직이고 순환함을 나타낸다. 그러니까 운이란 다른 표현으로 ‘때’를 의미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흘러가는 시간과 세월 중에 언제 시작하고 언제 거둬들일 것인지 아니면 그대로 현상을 유지하고 계속 끌고 갈 것인지 그 시기, 즉 때를 판단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잘 나가는 사람이 더 잘나가는 것은 운이 아니라는 것이다. 열심히 노력해야 운이 오는 것이다. 그래서 더 잘나가는 사람은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이다.
니시나카 쓰도무의 <운을 읽는 변호사>라는 책이 있다. 저자는 50여년 변호사 생활 동안 1만명이 넘는 사람들의 삶을 곁에서 지켜봤다고 한다. 그래서 나온 책이 바로 ‘운’에 대한 이야기다. 세상에는 확실히 운이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있다고 했다.
첫째, 악행으로 얻은 성공은 오래가지 못한다.
잔머리를 굴려 돈을 잔뜩 벌었거나 출세를 했어도, 그 성공은 오래가지 못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실패하여 궁지에 몰리는 경우가 많다.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에 “하늘의 법망은 크고 넓어서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지만 악인은 빠짐없이 걸러낸다”(天網恢恢 疎而不漏)는 말이 있다. 악행은 반드시 진리가 벌을 내린다. 악행으로 얻은 성공은 한 순간이다.
둘째, 다퉈서 좋은 일은 아무것도 없다.
‘운’을 불러오기 위해서는 사람들과 다툼을 피하고 선행을 쌓아가야 한다. 다툼은 결과적으로 상대방의 원한을 사 운을 나쁘게 만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소송에서 이겨서 큰돈을 손에 넣었다고 하더라도 그 돈을 잃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다툼을 막는 것이 운을 지키는 비결’이다.
셋째, 원망생활을 감사생활로 돌리는 것이다.
모든 일에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도덕과학에서는 이것을 ‘도덕적 부채’라고 부른다. 이 도덕적 부채에 대한 인식 없이 살거나 감사한 마음을 가지지 않으면 운이 달아난다. 감사생활을 하면 없던 운도 달려오기 마련이다.
넷째, 좋은 운은 겸손하고 은혜를 잊지 않는 마음에서 온다.
살아있음이 행운임을 실감하고 경이와 감사의 마음을 가지는 것이 지금의 행운을 지키고 더 좋은 운을 부르는 비결이다. 반대로 살아있음에 대한 감사함을 잊고 세상과 다투려고만 하면 행운은 달아나고 불운이 찾아온다. 은혜를 잊지 않는 것, 이것이 사람의 운을 바꾸는 근간이다.
다섯째, 남을 위한 일일수록 더 기쁜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운이 좋은 사람은 ‘남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다. 일을 할 때는 남에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해야 한다. 그러면 힘든 일도 주위 사람들이 기뻐하니 나도 기쁘고, 점점 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선순환을 경험하고 나면 일이 잘 풀릴 뿐 아니라 주변의 협력도 얻을 수 있다.
여섯째, 그 외 운을 부르기 위한 경계의 말들이다.
①부부끼리 감사해하면 그 집은 잘되기 마련이다.
②다툼 중에서도 상속 분쟁은 큰 불운의 서막이다.
③나만 잘되길 바라면 운이 돌아선다.
④어머니의 은혜를 깨닫기만 해도 운을 좋게 바꿀 수 있다.
⑤부모님을 부양하면 좋은 운이 나를 부양한다.
⑥인간성 좋은 사람은 처음엔 손해 보지만 나중엔 성공한다.
⑦‘유능하다’는 말보다 ‘믿을 수 있다’는 말이 진짜 칭찬이다.
⑧100만큼 일하고 80만 바라면 120의 운이 들어온다.
니시나키 쓰토무의 <운을 부르는 변호사>의 내용이 대체로 수긍이 간다. 원불교 일산수행의 요법(要法) 중의 하나가 “원망생활을 감사생활로 돌리자”다.
그렇다. 원망생활만 하는 사람은 미물(微物)에서도 해독(害毒)을 입고, 감사생활을 하는 사람은 인천대중(人天大衆)과 하늘의 보호를 받아 하는 일마다 운을 부르고 행복을 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