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이 압구정동 땅을 많이 사들인 이유

현대건설 종로구 계동 사옥.<사진=다음 지도>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임계점(臨界點)이라는 말이 있다. 사전에서는 저온(低溫)에서 고온(高溫)으로 모양이 변화를 할 때, 저온 상으로 존재할 수 있는 한계온도와 압력이라고 쓰여 있다.

예전에 박정희 대통령이 소양강댐을 건설하려고 국내대표 건설사 4곳을 불렀다.

각 건설사는 어떻게 하면 수주(受注)를 받을 건지 고민할 때, 한 건설사는 서울지도를 펼쳐놓고 상습침수 구역 중 소양강댐이 건설되면 침수되지 않을 지역을 찾아 그곳의 땅을 싸게 샀다. 어차피 상습 침수구역이라 남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땅이었다.

이 건설사를 땅 투기라 욕할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 땅이 지금의 압구정이다. 지금도 압구정엔 현대건설사의 땅이 많고 백화점도 있다. 남들이 댐 공사로 돈을 벌려고 치열하게 경쟁할 때 한 단계 더 멀리 보는 것이다.

초등학생들에게 얼음이 녹으면 뭐가 되는지 물었더니 대부분이 물이 된다고 했다. 그런데 한 학생이 대답하길 “봄이 온다”고 했다. 멋지지 않은가?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남들보다 한 단계, 한걸음 더 앞서서 생각한 것이다.

임계점(臨界點)은 이와 같이 물이 끓는 온도가 100도인데 99도까지는 끓질 않는다. 마지막 1도 이것이 있어야 물이 끓고 수증기로 성질이 변해 임계점에 도달하는 것이다. 고수(高手)와 하수(下手)의 차이는 바로 마지막 남은 1도의 차이다.

도(道)를 통하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다. 마지막 남은 고지를 눈앞에 두고 포기하느냐 정복하느냐인 것이다. 이렇게 임계점(臨界點)을 극복한 고수 중의 한 분이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 1879~1944)이다. 그 만해의 ‘오도송’(悟道頌)을 한번 보자.

남아도처시고향(男兒到處是故鄕) 사나이 가는 곳이 바로 고향인 걸

기인장재객수중(幾人長在客愁中) 나그네 시름 잠긴 사람 얼마나 될까

일성갈파삼천계(一聲喝破三千界) 한 소리 크게 질러 온 우주를 뒤흔드니

설리도화편편홍(雪裏桃花片片紅) 눈보라 속 복사꽃이 조각조각 붉어라.(제1행 사나이 가는 곳)

만해는 ‘사나이 가는 곳이 바로 고향’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고향’이란 낯설고 고생스러운 ‘타향’이 아니라 편안하고 익숙한 곳이라 할 수 있다. 타향살이에 허덕이다가 고향에 가면 몸과 마음을 편히 쉬면서 정겨운 고향 사람들과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낼 수 있다.

제2행 나그네의 시름이다.

깨달음을 얻고 보니 가는 곳마다 고향. 수많은 사람들은 업장(業障)에 묶이고, 번뇌(煩惱)에 시달리며, 고통스런 타향살이를 하고 있다. 깨달음의 자리에 도달하지 못한 수많은 중생들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는 것이 보살의 마음이다.

제3행 사자후(獅子吼)를 터뜨린다.

한 소리 크게 질러 온 우주를 뒤흔든다. 만해는 좌선 중 홀연히 바람 불어 물건 떨구는 소리를 듣고 의심하던 마음이 단번에 풀려 도를 얻었다. 바로 확철대오(廓徹大悟)요, 사자후가 아닌가! 우주의 진리를 깨친 사람은 아무 걸림 없는 대긍정(大肯定)의 마음으로, 자신의 인연을 따라 삶의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 중도(中道)의 삶이다.

제4행 번뇌(煩惱)가 보리(菩提)임을 아는 것이다.

세상은 시련과 행복이 서로 뒤섞여 춤을 추고 있다. 그렇다. 시련을 참고 견디면 언젠가는 행복이 찾아온다. 아니, 시련 속에 바로 행복이 있다. 깨달은 눈으로 볼 때는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다 부처다.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진리,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진리가 확연히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니 주인(主)과 나그네(客)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주와 객이 모두 사라지니 ‘나그네 시름’(客愁)도 있을 수 없고, 시비분별이 모두 끊어지니 온 우주가 절대 평등의 세계가 된다. 주위 환경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마음은 늘 청정(淸淨)하여 언제나 자유롭고 평화를 이룬다.

이것이 곧 고향 소식이고 임계점에 도달한 것이다. 처처불상(處處佛像) 사사불공(事事佛供) 곳곳이 부처요, 일일마다 불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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