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근

변호사
  • 정치

    [이우근 칼럼] 히틀러‧스탈린‧유신헌법‧시진핑‧푸틴‧그리고‧‧‧

    추미애 법사위원장(맨 오른쪽)을 비롯한 법사위 소속 여당 국회의원들이 2025년 10월 15일 대법원 현장 검증 과정에서 대법원 대법정 법대를 살펴보고 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사법부를 짓밟았다”고 비판했다. 이성과 과학의 시대라던 20세기는 놀랍게도 전체주의의 유령(幽靈)이 세계를 어둠 속으로 몰아넣은 시기였다. 청일‧노일전쟁에서 연달아 승리한 일본은 군국주의로 치달리며 독일‧이탈리아와 함께 제2차 세계대전의 추축국(樞軸國)으로 등장했다.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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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시아

    “세종대왕 덕택에…” 한글, 한자·영어·에스페란토 제키고 디지털시대 최강자로

    영화 말모이 포스터 이념을 외치는가. 한글에서 배워라. 한글은 지구상에서 이념을 품고 있는 단 하나의 문자다. 무슨 이념인가. 인간의 정신활동을 최상의 가치로 여기는 격조 높은 문화이념이다. 풀뿌리와 나무껍질로 보릿고개를 넘던 절대빈곤의 농업국가에서 세종대왕은 세제 개혁과 영농의 과학화로 경제구조 개선에 온 힘을 쏟았지만, 그 경제정책의 무게도 한글 창제의 열정에는 미치지 못한다. 한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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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

    [이우근 칼럼] 윤동주와 탁오의 진실 앞에 선 용기…그런데 나는?

    죄의 고백은 두려운 일이다. 뒤틀리고 일그러진 제 본 모습을 숨김없이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그 고백을 글로 남기는 참회록을 쓰는 일이다. 참회의 마음을 스스로 다잡는 것도 어렵고 고통스러운데, 그 고통을 글로 나타낸다는 것은 제 벌거벗은 몸뚱어리를 세상에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처럼 괴로운 결단일 터이다. 애매하게 쓰면 위선으로, 진솔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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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

    [이우근 칼럼] 디케의 시련, 걸림돌 아닌 디딤돌로

    디케의 저울 자유혼(自由魂)과 민주정신을 물길로 삼아 연면히 이어온 인류역사의 흐름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 기본적 인권의 보장, 권력분립, 그리고 국민복지의 향상을 ‘자유민주주의 헌법정신’으로 분명히 제시해준다. 헌법정신은 자유민주주의의 뿌리다. 그 헌법정신을 탄생시킨 것은 헌법제정권력(Verfassunggebende Gewalt)인 국민이다. 국민에게서 태어난 헌법정신이 국민 스스로를 구속한다. 헌법제정권력의 자기구속이다. ​대법원 중앙홀의 디케(Dike)가 슬픔에 잠겨 있다. 디케는 사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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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

    [이우근 칼럼] 대한민국, 손에 손잡고 사랑과 평화의 공동체로

    손에 손잡고 톨스토이는 이렇게 탄식했다.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무슨 짓이라도 저지를 수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소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서 무신론자 이반의 입을 빌려 퉁명스럽게 말했다.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 이는 신이 없으면 보편적 진리도 없고 선악의 기준도 사라지기 때문에, 인간이 전적으로 자유롭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것은 참된 자유가 아니라 방종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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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

    [이우근 칼럼] ‘전체주의’ 유령 앞에서 되새기는 자유의 책임

    내가 다닌 고등학교의 교훈(校訓)이 ‘자유인‧문화인‧평화인’이었다. 지금도 그대로일 게다. 교실 정면 칠판 위에 걸린 교훈을 그저 무심히 지나치며 3년이 흘렀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 교훈에 담긴 뜻이 속 깊은 깨달음으로 다가온다. 인문적 가치관의 교육목표를 그처럼 명료하게 짚어낸 교훈이 달리 또 있을까 싶다. 개인의 자유 없이는 창조적 문화정신이 숨 쉴 수 없고, 문화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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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이우근 칼럼] “진리와 자유는 하나다”

    ‘항상 있을 것들’의 목록에 정의의 자리는 없다. 도덕이나 신념이나 이데올로기의 자리도 보이지 않는다. 정의, 도덕, 신념, 이데올로기 저 너머에 사랑이 있을 따름이다. 광복 80주년을 지내면서, 진실과 자유를 품은 그리스도의 사랑 앞에 고요히 머리 숙인다. 사랑이 으뜸이다. 사진은 연세대 교정에 세워진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머릿돌. 올해 광복 80주년을 맞은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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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

    [이우근 칼럼] 역사가 남긴 냉엄한 교훈…동맹을 버린 나라들의 몰락

    유비의 부름을 받은 제갈공명은 위·오·촉(魏吳蜀) 세 나라의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를 역설한다. 촉한(蜀漢)과 동오(東吳)의 동맹으로 위나라에 대항해야 한다는 공명의 구상은 적벽대전에서 큰 위력을 나타냈다. . 그러나 형주의 영유권을 둘러싼 촉·오의 전쟁, 관우의 죽음, 유비의 패전 등으로 촉·오동맹이 허물어지자, 결국 공명은 촉나라 단독으로 위 정벌에 나섰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오장원에서 죽는다. 촉·오동맹이 깨진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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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

    [이우근 칼럼] 나를 위한 기도 vs 공동체를 위한 기도

    예수가 가르친 주기도문에는 ‘내 기도’가 없다. 모두 ‘우리 기도’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남을 용서한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고…” 예수의 기도는 개인의 기도가 아니다. 공동체의 기도다. 성서는 “하나님께서 야베스의 기도를 이루어 주셨다.”고 증언한다. 자신과 이스라엘 공동체를 동일시한 야베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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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

    [이우근 칼럼] 정치화된 사법, 누구를 위해 문을 여는가

    카프카 <소송>의 ‘성당에서’ 장에 삽입된 ‘법 앞에서(Vor dem Gesetz)’를 형상화한 삽화 한 시골 사내가 법(法)의 문 앞에 도착한다. 그는 법의 문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지만, 덩치 큰 문지기는 ‘지금은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한다. 사내는 법의 문이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문지기의 단호한 태도에 겁을 먹고 문 안으로 들어가기를 포기한다. 사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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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

    [이우근 칼럼] 참회에서 부활로: 아우구스티누스‧루소‧톨스토이 그리고 다윗‧욥‧사도바울

    성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Augustinus_Confessiones 아우구스티누스‧루소‧톨스토이의 <고백록>을 ‘3대 참회록’이라고 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에서 그의 삶에 어두운 그늘을 드리웠던 죄의 행실을 낱낱이 밝히고 있다. 그리고 <고백록> 제11편에서 시간에 대해 깊은 철학적‧신학적 성찰을 펼친다. 그 이전에는 시간이 인간 외부에 존재한다는 ‘객관적 시간론’이 지배적이었지만, 아우구스티누스는 시간이 ‘과거의 기억‧현재의 직관‧미래의 기대’라는 인간 내부의 정신작용으로 존재한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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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

    [이우근 칼럼] “민주주의 생명은 권력의 분립, 사법의 철저한 독립에 있다”

    바이런 ​”법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법 때문에 망한다.” 국민을 ‘순수한 대중’과 ‘부패한 엘리트’의 두 계급으로 나누는 정치집단은 엘리트 계층에 대한 대중의 원초적 분노, 경제적 사회적 강자에 대한 약자의 본능적 증오를 정치의 밑거름으로 삼는 반면에, 국민을 ‘미개한 대중’과 ‘현명한 엘리트’의 두 계층으로 나누는 정치세력은 미개한 대중을 지도 계몽하는 엘리트의 자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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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

    [이우근 칼럼] 하늘의 계명, 땅의 사랑: 플라톤의 ‘손가락’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손바닥’

    라파엘로 작 ‘아테네학당’ [아시아엔=이우근 변호사, 숙명여대 석좌교수, PEN KOREA 인권위원장] 라파엘로가 그린 ‘아테네학당’은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는 서양철학자, 과학자, 예술가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은 상상화다. 그림의 왼쪽에는 플라톤을 비롯한 관념적 이상주의 철학자들이, 오른쪽에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중심으로 한 현실적 경험주의 사상가들이 자리하고 있으며, 전면에는 수학자, 과학자, 예술가들이 배치되어 있다. 그림 중심에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나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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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이우근 칼럼]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 현실 속에 과연 존재할까?

    ​대한민국의 주권자는 국민이다. 민(民)이라는 한자는 원래 ‘뾰족한 꼬챙이로 한쪽 눈을 찔린 사람’을 뜻하는 갑골문의 상형문자로, 고대에는 전쟁포로나 노예 또는 죄수 등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포로나 죄수, 노예의 한쪽 눈을 찔러 저항력을 빼앗고 노동력은 남겨둬 강제노역의 수단으로 삼았던것인데, 후대로 내려오면서 평민(平民)이라는 뜻으로 변했다고 한다. 그 포로, 노예, 죄수를 다스리는 사람이 인(人)이다. 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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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이우근 칼럼] 나는 사랑한다. 고로 존재한다(Amo ergo sum)

    ‘누가 내 이웃인가?’를 묻는 율법사에게 예수는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를 들어 “이웃을 찾지 말고, 스스로 이웃이 되라“고 가르쳤다. 거룩한 제사장도, 종교적인 레위인도 아니고 왜 하필 천대받는 이방의 사마리아인일까? 사랑은 신성한 종교의식이 아니라, 어둡고 고통스럽고 이질적인 인간관계에서 이뤄가는 일상의 삶이라는 뜻 아닐까?빈센트 반 고흐 ‘선한 사마리아인’ Vincent van Gogh ‘The Good Samarit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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