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2026년 2월 28일 강원도 원주 오크밸리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베이직교회 전 교인 수련회 특강을 바탕으로, 오늘의 교회와 크리스천이 정치와 권력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독자 여러분께서 보다 깊이 이해하실 수 있도록 핵심 내용을 정리해 소개한 것입니다. 원문은 ‘정치투쟁’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생명을 지키는 ‘생명전쟁’이라는 문제의식을 중심에 두고, 성서와 교회사, 그리고 현실 정치 속에서 크리스천의 책임과 자세를 성찰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정치를 바꾼 크리스천
로마제국이 동서로마로 나뉘어진 4세기 말, 서로마 황제 호노리우스가 콜로세움에서 검투 경기(munera)를 개최했다. 무시무시한 무기에 검투사들이 하나둘 쓰러져 죽어갈 때마다 관중은 발을 구르며 환호했다.
그때 허름한 옷차림의 수도사 한 사람이 경기장 안으로 뛰어들며 큰소리로 외쳤다. “예수의 이름으로 명한다. 살인을 멈춰라.” 흥미진진한 경기가 뜻밖의 사태로 중단되자 화가 난 관중들이 수도사를 죽이라고 소리쳤다. 검투사 한 명이 칼로 수도사의 가슴을 찌르자 그의 수도복 위로 시뻘건 피가 솟구쳤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고함으로 시끄럽던 경기장이 갑자기 조용해진 것이다. 잠시 뒤 황제 호노리우스가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고 귀족과 관중들도 하나둘 경기장을 떠났다. 콜로세움 안에는 저 멀리 터키 지역에서 온 수도사 텔레마쿠스의 시신만 덩그러니 남았다.
다음 날 로마 시내 곳곳에 황제의 칙령이 나붙는다. ‘로마에서 무네라를 금지한다.’ 콜로세움의 검투 경기가 폐지된 것이다. 무능한 황제 호노리우스의 유일한 업적이었다. 텔레마쿠스는 제 목숨을 던져 살인극을 끝장내고 숱한 검투사들의 목숨을 살렸다. 아니, 크리스천들의 양심을 살려냈다.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도,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삼은 테오도시우스 황제도, 노예 해방의 영웅 스파르타쿠스도 멈추지 못했던 살인 광란극을 아무 힘이 없는 수도사 한 사람이 죽음으로 끝장냈다.
가톨릭의 수많은 교황과 사제들이 검투장의 피비린내에 양심의 코를 틀어막고 있을 때 변방에서 온 수도사 한 사람의 희생이 피에 굶주린 인간의 본성을 깨우치며 생명과 평화의 길을 연 것이다. 텔레마쿠스는 ‘정치투쟁’을 벌이지 않았다. ‘생명전쟁’에 목숨을 바쳤다. 그 희생이 정치를 바꾸는 신앙의 힘, 진정한 크리스천의 정치참여다.
정치는 성서의 중요한 테마
인간의 삶을 현실적으로 지배하는 두 힘이 있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강력한 그 두 힘은 정치와 종교다. 국가와 정치는 공동체가 함께 살아가는 공적(公的) 질서 체계다. 사람은 누구나 어느 국가 안에서 태어나고 어떤 정치체제 안에서 살아간다.
정치는 인간의 실존적 상황이다. 무정부주의자라 해도 세금을 내야 하고 전쟁이 나면 군대에 징집된다. 산속에서 홀로 살아가는 자연인도 정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나무를 베면 산림법 위반죄, 숲속에 오두막을 지으면 건축법 위반죄, 산나물을 캐면 임산물단속법 위반죄의 처벌이 기다린다.
성서는 놀라울 만큼 정치적이다. 출애굽은 야훼 신앙과 바알 신앙이 충돌한 종교적 대결이자 모세가 파라오와 대결한 정치적 투쟁이었다. 예언자들은 왕과 정치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자였고 예수는 로마의 정치범으로 십자가에 못 박혔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포로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이사야 61:1, 누가복음 4:18). 이 말씀은 종교와 정치를 두루 아우른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과 함께 정치적 메시지가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 나라
주기도문에는 ‘나’가 없다. 모두 ‘우리’, 1인칭 복수다.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누가복음 17:21). ‘너희’는 한 사람이 아니다. ‘너’의 2인칭 복수다. 두세 사람이 예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예수도 함께 있다(마태복음 18:20). 하나님 나라는 개인이 아닌 공동체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헌법 제2장이 <정치>편이다. 가톨릭은 교회법, 성공회는 관구 법규로 공동체를 규율한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인 신앙 공동체도 질서와 규율이 필요한 정치적 성격의 조직체이기 때문이다.
“너희 중에 큰 자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마태복음 23:11) 이 말씀은 오늘날 민주정치의 핵심이지만 왕이 백성의 섬김을 받던 당시에는 체제 전복의 정치적 선동으로 들릴 수 있는 위험한 발언이었다. 그러나 예수는 로마의 식민지이던 유대의 비참한 현실을 뒤엎는 정치투쟁에 나아가지 않았다. 크리스천은 국가 안에 있지만 국가 권력이 우상이 될 때는 권력이 아니라 권력의 원천인 하나님을 따라야 한다.
종교개혁자들은 ‘근본으로 돌아가자(Ad Fontes)’고 외쳤다. 신앙의 기본(Base)에 충실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이 베이직교회(Basic Church)의 목표일 것이다. “하나님이 교회를 세우시면 사탄도 그 옆에 제 소굴을 판다.” 종교개혁자 루터의 탄식이다. 세상은 어차피 사탄 앞에 무릎 꿇고 있다. 악령은 광명한 천사의 얼굴로 교회와 신자들의 영혼을 노린다(고린도후서 11:14). 이단과 적그리스도는 거의 모두 교회 밖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나왔다. 베이직 신앙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