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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이우근 칼럼] 1월…두 얼굴의 시간, 기억과 결단 사이에서
야누스 새해는 두 얼굴의 신비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1월을 뜻하는 영어 단어 January의 밑말은 로마신화에서 문(門)의 수호신인 야누스(Janus)다. ‘한 해가 시작되는 문’이라는 뜻일 게다. 야누스는 두 얼굴을 지니고 있다. 문 뒤를 응시하는 얼굴은 지난해에 걸어온 옛길을 돌아보고, 문 앞을 내다보는 얼굴은 돌아서서 앞으로 나아갈 새길을 바라본다. 돌아봄의 응시, 돌아섬의 전망이다. 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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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우근 칼럼] 자유·민주·공화…’근본’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근본으로 돌아가자.’(Ad fontes) 문예부흥과 종교개혁의 이상이었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르네상스의 열정이, 성서 번역에서 종교개혁의 신념이 꽃을 피웠다. (중략) 지금 우리는 왜곡된 인문화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인문학자들은 인문학의 위기를 걱정하지만, 대중사회에는 인문학의 물결이 넘실거린다. 문학·역사·철학 등 고전인문학은 빛을 잃어 가는데, 시중에는 ‘취업 인문학’ ‘재테크 인문학’이라는 야릇한 강좌까지 등장했다. 인문정신의 본질을 벗어난 그릇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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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이우근 칼럼] ‘병오년’ 붉은 말의 해…질주 아닌 절제와 인내의 시간으로
한 해의 끝과 새로운 또 한 해의 시작, 그 경계에 서면 우리는 기묘한 상념에 잠긴다. 괴로웠던 날도, 아늑했던 시간도 모두 슬며시 사라지면서, 새 달력의 첫 장이 사르르 펼쳐진다. 그 때,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난 한 해는 나에게 무엇이었던가? 새로운 이 한 해에는 또 어떤 삶이 열릴 것인가?” 이 물음은 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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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우근 칼럼] 회칠한 무덤의 바벨탑 정치, 보수와 진보는 어디서 길을 잃었나
바벨탑, 피터르 브뤼헬 1세 작 한쪽은 ‘전통과 안정’의 구호를 외치고, 다른 쪽은 ‘개혁과 정의’의 깃발을 흔들며 서로 격렬히 부딪친다. 그렇지만 저들의 현실은 그 구호나 깃발과는 전혀 딴판이다. 보수파의 전통과 안정은 폐쇄적 오만으로, 진보파의 개혁과 정의는 자기 합리화의 위선으로 전락하기 일쑤다. 보수는 사회발전에 꼭 필요한 변화마저도 혼란이라고 깎아내리고,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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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이우근 칼럼] 성탄절 예수…가난하고 억눌린 이들과 함께한 메시아
십자가의 길(아돌포 페레스 에스키벨) / Via Crucis(Adolfo Pérez Esquivel)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크리스마스 시즌이다. 예수는 탄생할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2천여 년 동안 각 시대의 정치적·사회적·문화적 염원을 담아내는 상징처럼 인식되어왔다. ‘하나님의 독생자, 사람의 아들, 천지창조의 로고스(λόγος), 죄인들의 친구, 선한 목자, 세상의 빛. 신(神)의 어린 양, 생명의 떡, 길과 진리와 생명…’ 이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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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이우근 칼럼] 두 개의 나무토막에서 멀어진 크리스마스 트리
크리스마스 트리 성탄절인 크리스마스(Christmas)는 ‘그리스도의 미사(Missa)’라는 뜻이다. 미사가 ‘보냄, 파견’이라는 라틴어 missio에서 파생된 단어이니,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구세주)를 세상에 보낸다’는 의미가 될 터이다. 가공할 무기 미사일(missile)이 missio에서 나온 단어라는 것은 섬뜩한 아이러니다. 그리스도를 품은 크리스마스에서 그리스도가 사라져간다. 베들레헴의 초라한 시골 마구간이 울긋불긋한 쇼윈도의 예쁜 장식들로 치장되고, 성탄의 소식을 맨 처음 만난 광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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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이우근 칼럼] 예수의 이름, 일상 기도를 넘어 거듭남으로 이끄는 초대
‘기도하는 손’ <뒤러 작> 기도는 가장 대표적인 종교행위다. 모든 종교에 기도가 있다. “기도에는 목소리가 아니라 진실이 필요하다.” 힌두교 신자이면서 스스로를 크리스천이라고 밝힌 간디의 말이다. 크리스천은 기도의 진실성을 자기 이름이 아니라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끝맺음으로 나타낸다. “내 이름으로 구하라”는 예수의 말씀에 따른 것이다(요한복음 14:13). 유대인들에게 ‘이름’(שֵׁם)은 단순한 고유명사가 아니다. 이름은 그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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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이우근 칼럼] ‘공포와 환상’의 날개 위에 선 독재자, 그리고 잠든 주권자
스탈린과 히틀러 독재자는 공포와 환상의 두 날개로 권력의 세계를 펄펄 날아다닌다. 독재정권이 경찰‧사법‧군대를 기어이 움켜쥐려고 노심초사하는 이유는 공포심으로 국민의 저항의식을 짓누르기 위해서다. 또 하나의 날개인 환상은 막스 베버의 지적처럼 ‘권력에 카리스마적 정당성을 덧씌우는’ 선전․선동이다. 나치여성동맹‧독일소녀동맹 등 여성단체들이나 히틀러청소년단만이 나치의 추종세력이 아니었다. <존재와 시간>을 쓴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 결단주의 법이론으로 히틀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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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이우근 칼럼] 종교개혁 두 지도자 루터와 츠빙글리
츠빙글리 초상 마르틴 루터는 1517년 10월 31일 독일 비텐베르크에서 <95개조 반박문>으로 종교개혁의 태풍을 일으켰고, 울리히 츠빙글리는 1523년 1월 29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67개조 논제>로 종교개혁의 깃발을 높이 치켜들었다. 루터가 ‘오직 믿음’(sola fide)을 외칠 때 츠빙글리는 ‘오직 성서’(sola scriptura)를 부르짖으며, 신학의 영역을 넘어 삶의 영역 전체를 성서의 빛 아래 새로이 조명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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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이우근 칼럼] 히틀러‧스탈린‧유신헌법‧시진핑‧푸틴‧그리고‧‧‧
추미애 법사위원장(맨 오른쪽)을 비롯한 법사위 소속 여당 국회의원들이 2025년 10월 15일 대법원 현장 검증 과정에서 대법원 대법정 법대를 살펴보고 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사법부를 짓밟았다”고 비판했다. 이성과 과학의 시대라던 20세기는 놀랍게도 전체주의의 유령(幽靈)이 세계를 어둠 속으로 몰아넣은 시기였다. 청일‧노일전쟁에서 연달아 승리한 일본은 군국주의로 치달리며 독일‧이탈리아와 함께 제2차 세계대전의 추축국(樞軸國)으로 등장했다.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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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세종대왕 덕택에…” 한글, 한자·영어·에스페란토 제키고 디지털시대 최강자로
영화 말모이 포스터 이념을 외치는가. 한글에서 배워라. 한글은 지구상에서 이념을 품고 있는 단 하나의 문자다. 무슨 이념인가. 인간의 정신활동을 최상의 가치로 여기는 격조 높은 문화이념이다. 풀뿌리와 나무껍질로 보릿고개를 넘던 절대빈곤의 농업국가에서 세종대왕은 세제 개혁과 영농의 과학화로 경제구조 개선에 온 힘을 쏟았지만, 그 경제정책의 무게도 한글 창제의 열정에는 미치지 못한다. 한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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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이우근 칼럼] 윤동주와 탁오의 진실 앞에 선 용기…그런데 나는?
죄의 고백은 두려운 일이다. 뒤틀리고 일그러진 제 본 모습을 숨김없이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그 고백을 글로 남기는 참회록을 쓰는 일이다. 참회의 마음을 스스로 다잡는 것도 어렵고 고통스러운데, 그 고통을 글로 나타낸다는 것은 제 벌거벗은 몸뚱어리를 세상에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처럼 괴로운 결단일 터이다. 애매하게 쓰면 위선으로, 진솔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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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이우근 칼럼] 디케의 시련, 걸림돌 아닌 디딤돌로
디케의 저울 자유혼(自由魂)과 민주정신을 물길로 삼아 연면히 이어온 인류역사의 흐름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 기본적 인권의 보장, 권력분립, 그리고 국민복지의 향상을 ‘자유민주주의 헌법정신’으로 분명히 제시해준다. 헌법정신은 자유민주주의의 뿌리다. 그 헌법정신을 탄생시킨 것은 헌법제정권력(Verfassunggebende Gewalt)인 국민이다. 국민에게서 태어난 헌법정신이 국민 스스로를 구속한다. 헌법제정권력의 자기구속이다. 대법원 중앙홀의 디케(Dike)가 슬픔에 잠겨 있다. 디케는 사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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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이우근 칼럼] 대한민국, 손에 손잡고 사랑과 평화의 공동체로
손에 손잡고 톨스토이는 이렇게 탄식했다.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무슨 짓이라도 저지를 수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소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서 무신론자 이반의 입을 빌려 퉁명스럽게 말했다.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 이는 신이 없으면 보편적 진리도 없고 선악의 기준도 사라지기 때문에, 인간이 전적으로 자유롭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것은 참된 자유가 아니라 방종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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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이우근 칼럼] ‘전체주의’ 유령 앞에서 되새기는 자유의 책임
내가 다닌 고등학교의 교훈(校訓)이 ‘자유인‧문화인‧평화인’이었다. 지금도 그대로일 게다. 교실 정면 칠판 위에 걸린 교훈을 그저 무심히 지나치며 3년이 흘렀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 교훈에 담긴 뜻이 속 깊은 깨달음으로 다가온다. 인문적 가치관의 교육목표를 그처럼 명료하게 짚어낸 교훈이 달리 또 있을까 싶다. 개인의 자유 없이는 창조적 문화정신이 숨 쉴 수 없고, 문화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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