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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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우근 칼럼] 진리가 자유케 하리라

    [아시아엔=이우근 변호사, 숙명여대 석좌교수] 성서의 역사는 연면한 해방의 기록이다. 천지창조는 혼돈의 카오스를 깨뜨리는 해방의 코스모스였고, 이스라엘의 이집트 탈출은 권력의 억압과 착취로부터의 해방이었다. 또 뭇 예언자들의 선포는 우상으로부터 영혼의 자유를 외친 해방의 목소리에 다름 아니었다. 사도 바울의 생애는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 그 거대한 두 산맥에서 정신의 자유를 찾아가는 해방의 긴 여정이었다. 요한계시록의 절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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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우근 칼럼] ‘욥’…의인의 고통, 선한 사람의 불행

    “강도의 장막은 형통하고, 하나님을 분노하게 하는 자는 평안하구나.”(욥기 12:6) 뜻밖의 재난으로 가족과 재산을 모두 잃고 몸에 병까지 얻은 욥의 탄식이다. 욥기의 주제는 ‘왜 악한 자가 형통하고, 선한 사람이 고통을 받는가?’ 라는 이른바 신정론(神正論, theodicy)의 문제다. 괴테의 <파우스트>(Faust)도 욥기처럼 하나님과 사탄의 천상에서의 대화로부터 시작된다. 하나님이 선한 사람의 현세적 운명을 사탄의 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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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우근 칼럼] 보수와 진보, 젊음과 늙음

    “남은 수명에 비례해 투표권을 주어야 한다.” 한여름의 무더위를 더욱 뜨겁게 달군 폭탄선언이었다. 이 말을 한 제1야당 혁신위원장이라는 사람은 “청년들의 정치참여를 호소하는 발언의 진의(眞意)가 잘못 전달되었다”고 변명했지만, “미래가 짧은 사람들…” 운운한 막말을 ‘노인 폄훼’ 말고 달리 어떻게 새길 수 있을까? 언필칭 진보를 외치는 사람들의 노인 비하(卑下)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노인분들은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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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우근 칼럼] 삶의 토대가 흔들릴 때

    [아시아엔=이우근 변호사, 숙명여대 석좌교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삶의 토대가 흔들리는 불안과 공포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지진과 해일이 세계 곳곳을 덮치고 한쪽에는 극심한 가뭄이, 다른 쪽에는 견디기 어려운 무더위가 오래도록 이어진다. 그렇지만 삶의 토대가 흔들리는 것은 비단 자연현상이나 기후변화 때문만이 아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이성과 진보의 시대가 될 것으로 기대했던 20세기는 전쟁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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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우근 칼럼] ‘젖먹이 신자’와 ‘밥 먹는 신앙인’

    [아시아엔=이우근 변호사, 숙명여대 석좌교수] 신약성경 히브리서는 저자가 누구인지를 밝히지 않고 있다. 히브리서를 바울이 썼다는 견해도 있고, 누가 또는 바나바가 썼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고린도교회에서 바울의 후임자로 활동한 아볼로가 썼다는 견해도 유력하지만, 그 저자를 확실히 알 수는 없다. 그래서 주후 3세기의 교부 오리게네스는 “오직 하나님만이 히브리서 저자를 아신다”고 말했다. ?히브리서는 신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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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우근 칼럼] ‘히말라야의 슈바이처’ 강원희 선교사의 천국

    산상수훈(?山上垂訓 마태복음 5~7장)의 여덟 가지 복된 삶을 마치 그대로 살아낸 듯한 분이 있다. 재물과 명예를 얻을 수 있는 의사이면서도 그것들을 좇지 않고 스스로 가난한 삶의 자리를 펴서, 병들고 소외된 이들을 찾아가 사랑의 나눔을 베푼 분, 질병과 빈곤으로 고통 받는 이들과 함께 애통하며 ‘인생의 가운데 토막’을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바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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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우근 칼럼] 국회의사당, 서글픈 아이러니

    영국의 11월 5일은 ‘가이 포크스의 날'(Guy Fawkes Day)이다. 1605년 어느 날, 가톨릭 신도인 가이 포크스와 그의 동료들은 가톨릭을 탄압하는 국왕 제임스 1세가 웨스트민스터 의사당에서 연설하기로 예정된 11월 5일에 의사당을 폭파해 왕과 의원들을 모두 암살하기로 모의했다. 그런데 가톨릭 신자인 의원을 미리 피신시키려던 동료 한 사람의 편지가 발각되어 의사당 폭파계획이 실패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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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우근 칼럼] 우월감과 열등감 그리고 ‘비교의식’

    자존심은 때때로 사람을 추하게 만든다. 자존심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아주 비인간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천박하고 비열한 자존심이다. 사실은 그 밑바닥에 열등감이 깊숙이 웅크리고 있다. 남보다 못하다는 잠재의식이 그 열등감을 보상할 방법을 찾게 되고, 그 보상의 방법은 대부분 가학(自虐)이나 질시(嫉視)가 아니면, 턱없는 자존심으로 나타나기 일쑤다. ?남의 우월감 때문에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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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우근 칼럼] 오늘 중복, 개에 대한 예의

    “개들은 먹을거리가 생기면 배가 터지도록 먹어댄다. 개들이 제가 토해낸 것도 꺼리지 않고 먹어치운다는 사실은 굳이 성서(잠언 26:11)를 읽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렇다. 개들은 우리보다 나은 존재가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개들은 우리와 똑같다.” 알베르 카뮈의 스승이었던 장 그르니에가 <어느 개의 죽음>에 쓴 글이다. 개와 인간을 탐욕의 동류(同類)로 본 것이다. 그르니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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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우근 칼럼] 75돌 제헌절에 ‘무능 보수’와 ‘가짜 진보’를 생각한다

    [아시아엔=이우근 변호사, 숙명여대 석좌교수] 조지 오웰이 소설 <1984>에 쓴 것처럼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 하기 때문일까? 진보를 외치면서 과거사에 매달려 있는 것이 한국 좌파정치의 현실이다. 1950년부터 지금껏 지속되고 있는 중국의 티베트 점령과 탄압에는 ‘70년 전 일’이라고 눈 감으면서, 1945년에 끝난 일본의 한반도 지배에는 아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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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우근 칼럼] 하나님은 왜 그리 슬퍼하실까?

    슬프거나 괴로울 때면 저절로 눈물이 난다, 그렇지만 너무 기뻐서 눈물을 흘릴 때도 있다. 그 눈물은 기쁨이 있기까지 겪어야 했던 고통의 기억들이 말끔히 사라지면서, 그동안 맺혀있던 서러움이 눈물로 터져 나오는 슬픔의 보상(報償)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랫동안 고생하며 실패를 거듭했던 일이 드디어 성공하자 감격해서 흘리는 눈물은 기쁨의 눈물이지만, 실은 그동안 남모르게 쌓였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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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우근 칼럼] 천국과 지옥

    [아시아엔=이우근 변호사, 숙명여대 석좌교수] 도스토옙스키의 대하소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는 ‘대심문관의 전설’과 ‘양파 한 뿌리’라는 두 개의 액자소설이 등장한다. 액자소설은 ‘소설 속의 소설’을 말한다. 1권 끝부분에 나오는 대심문관의 전설은 ‘최종적이며 반박할 수 없는 그리스도교 비판’이라고 평가될 만큼 당시의 교회에 대한 날카로운 질책이다. 여기에서 도스토옙스키는 천국을 ‘용서가 있는 곳’으로, 지옥을 ‘사랑이 없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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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우근 칼럼] 멈춤, 기적의 자리

    세계 최고라는 명성을 지닌 모터스포츠 경기 포뮬러1(Fomula 1)에 피트 스톱(pit stop)이라는 규정이 새로 도입되었다. 주행거리가 60km 가량 더 늘어난 이 슈퍼레이스 경기에서 최고 시속 270km로 질주하던 차량들이 두 개 이상의 타이어를 교체하고 기름을 넣기 위해 3초 동안 정차하는 피트 스톱이 의무화된 것이다. 3초 동안에 두 개 이상의 타이어를 교체하고 기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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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우근 칼럼] 6.25의 불행을 ‘사랑과 화평’의 길로

    [아시아엔=이우근 변호사, 숙명여대 석좌교수] 구약시대의 유대인들은 1년에 네번 금식하는 절기를 지켰다. 유대력 넷째 달에는 예루살렘을 침략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유다 왕 시드기야의 두 눈을 뽑고 바벨론으로 잡아간 사건을 기억하며 슬퍼하는 금식이었다. 다섯째 달에는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사건을, 일곱째 달에는 유대 총독 그달리아가 암살당한 사건을, 열째 달에는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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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우근 칼럼] “6?25는 ‘북한의 남침’…’사르트르’ 틀리고 ‘레이몽 아롱’이 옳았다!”

    [아시아엔=이우근 변호사, 숙명여대 석좌교수] 한반도를 남북으로 두 동강 낸 6?25전쟁은 프랑스 지성계도 두 쪽으로 갈라놓았다. 공산당 기관지 <뤼마니테>는 6?25가 ‘남한의 북침’이라는 소련의 주장을 그대로 보도했고, 작가 장 폴 사르트르도 이에 동조했다. 사르트르와 고등사범학교 동기이자 나치 치하에서 레지스탕스 활동을 함께 했던 사회학자 레이몽 아롱은 <르 피가로>에 6?25가 ‘북한의 남침’이라는 정반대의 글을 기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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