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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근 칼럼] 성전과 법정…”진실은 일부러 다듬고 꾸미지 않는다”

미켈란젤로, 피에타 / Michelangelo, Pietà


1503년에 착공된 지 120년만인 1624년에 준공된 베드로 대성당에는 뛰어난 미술품들이 가득하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비롯, 파브리스의 베드로 상, 코르나키니의 엘리아 상, 타돌리니의 바오로 상 등이 베르니니의 발다키노와 함께 웅장한 성당 안에 자리하고 있다.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 등 거장들의 손길을 거치며 르네상스 예술을 한껏 드높인 베드로 대성당은 5백여 년 전에 지은 건물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예술적으로, 건축학적으로 놀랍도록 장엄하다. 지금도 수많은 신자와 관광객들이 그 앞에서 경탄을 멈추지 못한다.

​큰 성당이나 웅장한 대형 교회당에 많은 신자들의 발걸음이 이끌린다. 그런데 성서는 뜻밖의 명령을 내린다. “다듬지 않은 돌로 하나님의 제단을 쌓아라.”(신명기 27:6)

다듬지 않은 돌, 그것은 번영과 풍요의 손길로 갈고 다듬어 번지르르하게 광택을 낸 원목이나 대리석이 아니다. 광야에 구르는 투박한 돌, 아무 꾸밈 없는 평범하고 밋밋한 돌이다. 하나님은 아마도 그 투박한 돌로 지은 집이 마음에 쏙 드시는 모양이지만, 정성껏 건축헌금을 바친 신도들의 생각과는 달라도 너무나 다른 것이 야속하기까지 하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값비싼 원목이나 대리석이 아니라 다듬지 않은 돌로 지은 ‘진실의 집’, 그것이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가르침이다. 진실은 일부러 다듬고 꾸미지 않는다. 빈 수레가 요란한 법, 가짜일수록 치장이 화려하고 교만한 인격일수록 짐짓 겸양을 떨기 마련이다.

진실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다만 존재할 뿐이다. ‘거짓은 노예의 종교, 진실은 자유인의 신앙!’ 막심 고리키의 신념이다. 거짓말이 혀에 붙어있는 사람은 비록 신앙인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해도 실은 우상의 사슬에 질끈 매인 위선의 노예나 다름없다.

​​변변찮은 내 법조 경험에 의하면, 혐의를 숨기는 범인일수록 긴 변명을 늘어놓기 일쑤다. 말이 길어질수록 앞뒤가 마구 엉클어지고, 거짓말이 통하지 않으면 부득부득 이를 갈며 ‘하늘을 두고 맹세한다’는 따위의 확인할 방법 없는 담보를 꺼내들곤 한다. 인격과 삶으로 신뢰를 쌓지 못한 사람들이 늘 써먹는 수법이다.

예수는 그 속임수를 이미 2천여 년 전에 꾸짖었다. “너희는 하늘로도 땅으로도 맹세하지 말라.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아니다’ 하라.”(마태복음 5:34∼37). 그래서 나는 ‘하나님께 맹세한다’는 큰 소리는 믿지 않기로 하고 있다. 그 큰 소리의 주인공이 아무리 성경책을 가슴에 꼭 끌어안고 하나님과 가깝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웅장한 베드로 대성당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로마시 외곽에 지하 공동묘지 카타콤이 있다. 그 안에 초대교회와 속사도(續使徒)시대의 비밀 예배장소가 남아있는데, 베드로 대성당과는 비교할 수 없이 초라한, 그러나 더할 수 없이 순결한, 순교의 핏자국이 남아있는 곳이다.

거칠고 투박한 바위틈 사이의 땅굴에서 가톨릭 신부가 이렇게 설명했다. “당신은 조금 전 지상에서 가장 화려한 성전인 베드로 대성당을 보았다. 그러나 지금은 지하의 가장 순결한 성전, 순교의 터전 위에 세워진 진정한 교회, 지하묘지 카타콤에 와있다.”

​​카타콤 어디에서도 번쩍이는 대리석 벽면이나 휘황찬란한 스테인드글라스를 볼 수 없다. 직업 종교인들이 제 아들에게 물려줄 호화로운 원목 강단도 보이지 않는다. 흐릿한 순교의 핏자국만 남아있을 뿐이다. 헤롯왕이 화려하게 증‧개축한 예루살렘 성전 앞에서 예수가 놀라운 신성모독의 발언을 쏟아낸다. “이 성전을 헐어라!”

종교의식과 율법의 문자(文字)는 충실히 지키면서도 율법의 정신과 신앙의 삶은 잃어버린 성전종교, 그 껍데기 신앙을 향한 예수의 질책이다. 예수의 신앙은 성전이나 제단에 있지 않았다. 마음 속에, 인격 속에, 일상적 삶의 자리 안에 있었다. “하나님은 사랑의 삶을 원하시고, 성전제사를 원하시지 않는다.”(호세아 6:6)

​성전은 화려할 필요가 없다. 카타콤처럼 순결해야 한다. ​성전이 무너진다 해도 신앙은 무너지지 않는다. 성전 안의 종교인들이 탐욕의 우상 앞에 무너질 때, 신앙도 함께 무너진다.

법원 건물이 파손된다 해도 사법의 권위는 파손되지 않는다. 법정(法廷) 안의 법관들이 정파(政派)의 우상 앞에 무너질 때, 사법의 권위도 신뢰도 함께 무너진다. 법정이 있듯이, 올곧은 법의 숨결이 법조인의 마음 속에 살아있어야 한다.

​‘법정 안에 몸은 있으나 마음 안에 법의 정신이 없는 법률가’를 예수는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던가 보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학자들의 정의보다 더 낫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태복음 5:20)

더 할 수 없이 어지러운 나라의 혼란 한복판에 서있는 법원과 헌법재판소에, 그 안의 법관들에게, 섬뜩한 불호령이 떨어질까 두렵다. “이 법정을 헐어라!”

이우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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