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칼럼

[이우근 칼럼] 성전인가, 광야인가…제사장인가 예언자인가

안토니오 치세리 ‘이 사람을 보라’

가톨릭의 수도사제(修道司祭) 마르틴 루터는 무겁고 칙칙한 사제복을 흔연히 벗어 던지고 종교개혁의 좁은 길을, 그 험한 가시밭길을 걸었다. 교단이 인정하는 제사장전승(祭司長傳承)을 버리고 벌거벗은 몸으로 홀로 광야에 나서는 예언자전승(預言者傳承)으로, 사제종교에서 평신도신앙으로… 체코의 얀 후스는 화형대에서 순교했고, 독일의 루터는 교황의 손길을 피해 쫓겨 다녀야 했다.

제사장은 백성을 위해 하나님께 속죄의 은혜를 구하는 직분이고(히브리서 5:1∼3), 예언자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백성들에게 전하는 직분이다(예레미야 1:9,10). 제사장전승은 모세가 광야에서 선포한 율법에 기초를 둔다. 모세와 그 형 아론이 속한 레위지파만이 제사장의 직분을 맡을 수 있었다. 기름부음을 받은 레위인들은 구별된 예복을 입고 구별된 대우를 받으면서 오래 동안 세습적 지위를 확보하여 이스라엘의 정통 사제그룹으로 자리잡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왕정체제가 안정되고 제사장제도가 확립되자 대부분의 제사장들이 왕권과 손을 잡고 백성들 위에 군림하는 새로운 귀족계급으로 탈바꿈했다. 가난한 백성들이 바친 제물로 섬김과 대접을 누리는 타락의 길을 걸은 것이다. 양(羊)​의 무리를 돌보아야 하는 목자의 겸손한 자리가 도리어 양을 억압하는 권위의 자리로 변질되고, 하나님께 은혜를 구해야 하는 참회의 고백이 엉뚱하게도 권력 앞에 아부하는 역겨운 속삭임으로 전락한 것이다. 이들 타락한 제사장의 무리에게 끊임없이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고 공의와 회개를 촉구한 것이 바로 광야의 예언자들이었다. 이사야, 예레미야, 아모스로 이어지는 예언자전승이다.

​신구약성서 전체는 제사장전승과 예언자전승이 충돌하는 긴장된 갈등으로 가득하다. 광야의 예언자들은 가난하고 버림받은 백성들과 함께 고난의 험한 길을 걸어야 했다. 성전제사장과 궁정​(宮廷)​제사장들은 광야예언자들을 ‘기름부음 받은 제사장을 대적하는 교만한 무리’라고 비난하며 미워하고 박해했다. 광야예언자들이 제사장계급의 윤리적 파탄과 그 속에 숨겨진 부끄러운 일들, 그 위선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폭로했기 때문이다.

미켈란젤로 ‘이사야’

광야예언자는 부르짖는다.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다…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하더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내가 보는 앞에서 너희의 악한 행실을 버려라.”(이사야 1:13~17) 삶과 동떨어진 성전예배, 윤리와 정의를 외면한 제도종교는 진정한 신앙의 자리가 아니라는 질책이다.

​“자기만 돌보는 목자들은 화 있으리라. 목자들이 양 떼를 먹이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냐?”(에스겔 34:2). 제사장전승을 향해 던지는 예언자전승의 절절한 외침이다. 현란한 말과 꾸며낸 몸짓으로 신자들의 눈을 속이며, 엄숙한 의식과 종교적 권위로 자신의 안일을 도모하는 위선의 종교인들을 예수는 ‘삯군 목자’라고 꾸짖었다(요한복음 10:12).

참 대제사장이신 예수(히브리서 5:6, 7:21)는 제사장전승이 아니라 예언자전승에 서있었다. 제사장 가문인 레위의 자손이 아니라 유다의 후손으로 탄생한 예수는 아예 처음부터 제사장의 신분적 자격조차 없었던 셈이다. 대제사장 가야바는 헤롯왕과 로마총독 빌라도의 정치권력과 손을 잡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제사장전승과 예언자전승이 정점(頂點)에서 충돌한 사건이었다.

​중세 가톨릭의 제사장전승은 정치권력까지 제 앞에 무릎을 꿇렸지만, 종교개혁자들은 제사장전승을 꾸짖으며 광야 같은 예언자전승으로 나아갔다. 오늘날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세속권력을 거머쥔 정치세력은 언론과 국민의 입에 재갈을 물려 날카로운 비판의 목소리를 잠재우려 하고, 교회의 성직자들은 신성하다는 종교권력을 거머쥐고 ‘신의 대리자’라는 이름을 앞세워 올곧은 광야의 목소리를 억누르려 한다.

제사장의 길과 예언자의 길은 오늘도 곳곳에서 갈등을 드러내고 있다. 말과 행실이 다르고 삶의 모범이 되지 못하여 신자들의 신뢰를 잃어버린 직업종교인들이 종교계를 좌지우지하고 있지는 않은가? 모두가 ‘왕 같은 제사장'(베드로전서 2:9)인 크리스천들은 어느 토대 위에 서 있는가? 제사장전승인가, 예언자전승인가? 성전에 가득한 축복의 기원인가, 광야에서 울려오는 질정(叱正)의 외침인가?

세례 요한이 무리에게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외치며 설교하는 장면을 재현한 이미지 (AI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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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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