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기 칼럼] 한화 김승연 회장의 ‘의리’를 생각한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국내 임직원 6만9000여명 전원에게 보양식을 보낼 계획이라고 한화그룹이 12일 밝혔다. 삼계탕과 갈비탕, 설렁탕으로 구성된 세트다. 비용은 회사 돈이 아니라 사비 30억여원이라고 한다. 더 눈에 들어오는 것은 선물을 회사에서 나눠준 것이 아니라 임직원 집으로 보낸다는 점이다.
김 회장은 편지에 이렇게 썼다고 한다. “끊임없는 도전과 난관 속에서도 묵묵히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준 임직원 여러분의 헌신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작은 정성이나마 여러분과 가족의 건강에 보탬이 되면 좋겠다.”

이 대목에서 김승연이라는 기업인이 지닌 독특한 기질을 생각한다.
그는 사람을 챙긴다. 한번 맺은 인연을 쉽게 버리지 않는 편이다. 2004년부터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임직원 자녀들에게 합격 기원 선물과 격려 편지를 보냈고, 지난해까지 이를 받은 가족이 8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코로나19에 걸린 임직원에게는 쾌유를 기원하는 편지와 꽃을 보냈다. 한화이글스 선수단도 때때로 직접 챙겼다.
이런 모습에는 요즘 기업경영에서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옛날식 ‘정’과 ‘의리’가 있다. 숫자와 성과로 사람을 평가하기 전에 “내 식구”라는 생각이 먼저 앞서는 것이다.
그러나 김승연의 ‘의리’를 이야기하려면 반드시 함께 꺼내야 할 사건이 있다. 2007년 보복폭행 사건이다.
아들이 술집에서 폭행당했다는 말을 들은 아버지가 직접 나섰다. 자식을 다치게 한 사람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다는 아버지의 분노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변명이 될 수 없다. 재벌 총수가 자신의 힘과 사람을 동원해 사적으로 응징하려 한 것은 명백히 잘못된 일이었다. 법치국가에서 누구도 사법권을 대신할 수 없다. 힘이 클수록 그 힘을 절제해야 한다.
그 사건은 김승연의 ‘사나이다움’이 잘못된 방향으로 표출된 순간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나이다움은 내 아들을 때린 사람을 찾아가 응징하는 것이 아니다. 정말 힘 있는 사람의 사나이다움은 때릴 힘이 있는데도 참는 데 있다. 의리 역시 내 사람을 위해 상대방에게 보복하는 데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내 사람뿐 아니라 약한 사람까지 품는 데서 완성된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질문 하나를 더 던지려 한다. 사람은 한번 잘못하면 그 잘못으로 평생 규정되어야 하는가. 나 역시 오랫동안 ‘공정’이라는 말을 매우 산술적으로 이해했다.
성경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장면 가운데 하나가 마태복음 20장의 포도원 품꾼 이야기였다. 아침 9시에 와서 땀 흘려 일한 사람도 한 데나리온, 낮 12시에 온 사람도 한 데나리온, 오후 3시에 온 사람도 한 데나리온이다. 심지어 오후 5시에 와서 겨우 한 시간 일한 사람에게도 똑같이 한 데나리온(요즘 화폐로 15만원 상당)을 준다.
처음 읽었을 때 내 생각은 단순했다. “이런 불공정, 불공평이 어디 있는가?”
십자가의 강도 이야기도 마찬가지였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달린 죄인이 죽음을 바로 앞두고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한다. 그러자 예수는 그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한다. 평생을 어떻게 살았는지 모를 사람이 마지막 순간 돌아섰다고 낙원이라니. 내가 가지고 있던 세상의 계산법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10여 년 전부터 조정민 목사를 만나고 그의 설교를 들으면서 내 가치관에도 변화가 생겼다. 성경이 말하는 은혜는 인간이 만든 계산표와 다르다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됐다. 아침 9시에 온 사람에게 약속한 한 데나리온을 빼앗아 오후 5시에 온 사람에게 주는 것이 아니다. 9시에 온 사람에게도 약속한 것을 주고, 5시에 온 사람에게도 살아갈 몫을 주는 것이다.
십자가의 강도 역시 죄를 짓지 않았다고 선언된 것이 아니다. 그의 과거가 갑자기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인간에게는 마지막 순간까지 돌아설 문이 열려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김승연의 2007년을 잊어서는 안 되지만, 김승연을 2007년에 가둬두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잘못은 잘못대로 기록해야 한다. 피해자의 아픔도 지워서는 안 된다. 돈과 권력이 법 위에 설 수 있다는 생각에는 더욱 엄격해야 한다. 그것이 언론의 역할이다. 동시에 사람이 그 이후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보아야 한다.
이번 30억원의 보양식보다 내가 더 주목하는 것은 6만9000명이라는 숫자다. 임원 몇 사람이나 장기근속자만 골라 챙긴 것이 아니다. 국내 임직원 모두에게 보냈다. 그 가족의 밥상까지 생각했다.
기업가 정신은 거창한 경영철학에만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함께 일하는 사람을 비용으로만 보지 않는 것, 어려울 때 사람을 버리지 않는 것, 한번 맺은 인연을 오래 기억하는 것도 기업가의 중요한 덕목이다.
김승연은 올해 74세다. 그에게 이제 필요한 ‘사나이다움’은 젊은 시절의 그것과 달라야 한다. 주먹보다 절제, 보복보다 용서, 내 사람을 향한 의리를 넘어 사회의 약한 사람을 향한 책임으로 가야 한다. 한화를 세계적인 방산·우주·조선 기업으로 키우는 것 못지않게 자신이 가진 힘을 어디에 쓰느냐가 그의 남은 기업가 인생을 평가할 것이다.
나는 요즘 오후 5시에 포도원에 들어온 사람을 가끔 생각한다. 예전에는 그 사람이 한 데나리온을 받는 것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그에게도 저녁밥을 먹고 가족에게 돌아갈 한 데나리온이 필요했을 것이다.
사람에게는 마지막까지 달라질 기회가 있다. 기업가에게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몇 시에 포도원에 들어왔느냐만이 아니다. 그 뒤 남은 시간에 어떻게 살았느냐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