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칼럼

[이우근 칼럼] 1월…두 얼굴의 시간, 기억과 결단 사이에서

야누스

새해는 두 얼굴의 신비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1월을 뜻하는 영어 단어 January의 밑말은 로마신화에서 문(門)의 수호신인 야누스(Janus)다. ‘한 해가 시작되는 문’이라는 뜻일 게다. 야누스는 두 얼굴을 지니고 있다. 문 뒤를 응시하는 얼굴은 지난해에 걸어온 옛길을 돌아보고, 문 앞을 내다보는 얼굴은 돌아서서 앞으로 나아갈 새길을 바라본다. 돌아봄의 응시, 돌아섬의 전망이다.

해가 바뀐다고 세상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 앞에 서는 마음가짐이 달라지면 삶의 모습도 달라진다. “신(神)은 새해를 주기보다 새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성찰이다. 새해의 회상과 전망은 과거를 끌어안고 동시에 미래로 나아간다. 지난날의 무게가 새로운 깨달음으로 이어지고, 그 깨달음이 우리를 다시 새롭게 세운다.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기대감이 마음을 설레게 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 제11편에서 시간을 ‘과거의 기억, 현재의 직관, 미래의 기대’라고 해석했다. 서양철학 최초의 ‘주관적 시간론’이다. 기억‧직관‧기대가 한 자리로 응축되는 시점이 연말연시의 경계 아닐까? 그 응축된 긴장 속에서 우리는 삶이 무엇인가를 깊이 성찰하게 된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인가? 아니다. 우리 삶 속에서 이미 익어가고 있는 시간이다. 작가 쿤데라(Milan Kundera)는 ‘기억은 희망을 지닌 과거’라고 썼다. 과거의 기억 속에 희망의 미래가 공존한다.

<창조적 진화>를 쓴 베르그송(Henri-Louis Bergson)은 과거의 기억을 ‘지속(durée)하는 의식의 흐름’으로 정의한다. 기억은 단순히 과거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를 ‘재구성’한다. 인생은 마치 음악과 같다. 음 하나하나를 끊으면 음악이 사라져버리듯, 삶의 과거‧현재‧미래도 끊을 수 없는 지속의 흐름이다.​

헬레니즘의 시간이 크로노스(χρόνος)라면, 헤브라이즘의 시간은 카이로스(καιρός)다. 크로노스는 수평적‧연속적으로 흐르는 물리적 시간, 카이로스는 수직적‧급진적으로 다가오는 역사적 시간이다. 성서는 카이로스의 시간을 말한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가복음 1:15)

영원과의 관계에서 열리는 카이로스는 우리의 결단과 응답을 요구하는 존재론적 시간, 지금 결단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체절명의 시간이다. 시간은 흘러가지만 의미는 남고, 그 의미는 오늘을 거쳐 내일로 이어진다. “미래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준비하는 것이다.”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통찰이다.​

지난해, 우리는 무엇을 붙잡으려고 그토록 발버둥 쳤던가? 새해에는 또 무엇을 붙잡을 것인가? 아니, 무엇을 놓아야 하는가? 이 물음은 한편으론 고통스럽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희망적이다. 이 물음과 함께 우리는 변화의 새로운 흐름에로 나아간다. 지난해의 아픔과 부끄러움을 그대로 안고 새해를 살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날의 기억은 나를 만들었지만, 그 기억에서 해방되는 망각은 나를 다시 새롭게 세운다. 기억도 망각도 모두 새해 아침에 찾아드는 은총이다. 과거의 기억은 우리를 참회와 감사로 이끌고, 그 참회와 감사는 망각을 거쳐 새해의 소망으로 나아간다. 과거의 기억은 지난날의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다. 다가오는 미래의 시간을 향해 열려있다.​

새해의 문턱에 서서 잠시 걸음을 멈춘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고,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바라본다. 지난 한 해는 언제나 그랬듯 내 안의 계획보다 내 밖의 우연들이 더 많았고, 절제된 의지보다 해묵은 습관의 힘이 더 강했다. 시작할 때는 분명한 목표를 세웠지만, 하루하루를 버티다가 어느새 목표가 사라져버린 날도 적지 않았다.

그렇지만 세월의 경계에 멈춰 선 고독 속에서 우리는 지나간 날들이 마냥 헛되이 흘러버리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실패처럼 보였던 선택들이 실은 우리를 조금 더 겸손하게 만들었고, 삶의 발걸음을 더 정직하게, 하루하루의 시간을 더 진지하게 이끌었다.​

새해의 전망이 언제나 밝은 것은 아니다. 새해의 다짐도 거창하거나 극적(劇的)인 것일 수 없다. 나라의 현실과 세계의 정세는 여전히 불확실하지만, 우리의 삶마저 불확실한 상태로 내버려 둘 수는 없다. 더 빨리 달려가기보다는 나아가는 방향을 놓치지 않고, 더 많이 가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불필요한 것들을 한 줌씩 덜어내는 한 해가 되어야 한다.

새해, 새날들이 새로운 여백으로 다가온다. 그 여백은 세상의 소음, 타인들의 시선 속에 실종된 자아(自我)가 스스로 자기중심을 되찾는 순간, 존재의 깊은 침묵에로 돌이키는 방향전환이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향해 돌아서는 방향전환은 새로운 시작을 향한 기대감으로 이어진다. 얼마나 신비로운 일인가? 과거를 향한 돌아봄과 미래를 향한 돌아섬이 한자리에서 만나는 새해 아침, 대기가 유난히 맑고 신선하다.

이우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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