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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근 칼럼] ‘병오년’ 붉은 말의 해…질주 아닌 절제와 인내의 시간으로

한 해의 끝과 새로운 또 한 해의 시작, 그 경계에 서면 우리는 기묘한 상념에 잠긴다. 괴로웠던 날도, 아늑했던 시간도 모두 슬며시 사라지면서, 새 달력의 첫 장이 사르르 펼쳐진다. 그 때,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난 한 해는 나에게 무엇이었던가? 새로운 이 한 해에는 또 어떤 삶이 열릴 것인가?”

이 물음은 해가 바뀔 때마다 습관적으로 겪는 회고나 전망이 아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기 삶을 새로이 해석하고 진지하게 결단하는 정신의 반성이다. 그 반성은 시간의 경계를 넘어선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다던가? “인간은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기대하며, 현재를 견딘다”고.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물리적으로 다가오는 수평적 시간은 크로노스(χρόνος), 하나님이 역사에 직접 개입하는 수직적 시간은 카이로스(καιρός)다. 가장 직접적이고 결정적인 카이로스는 예수의 성육신에서 나타난다.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계셨다.”(요한복음 1:14)

성육신은 창조주의 ‘영원’이 피조물의 ‘시간’ 속으로, 하나님의 ‘지금’이 우리의 ‘오늘’ 안으로 들어온 기적의 역사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not yet) 우리 앞에 이미(already) 가까이 다가와 있는 하나님의 때, 무한(無限)이 유한(有限)의 몸을 입고 우리 삶과 하나로 만난 신비한 사건이다.

​그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 새로운 하루하루가 펼쳐진다. 성서의 하루(욤, יוֹם)는 고난의 날이지만 또한 참회의 날, 구원의 날이기도 하다.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다.”(고린도후서 6:2). 참회는 과거의 회상이 아니다. 미래의 약속을 향한 전진이다. 고통의 오늘 이 하루는 구원의 존재론적 시간, 회개와 응답의 결단을 요구하는 절체절명의 시간이다.

2026년 새해 첫날, 우리는 카이로스의 시간 앞에 선다. 새해는 병오년(丙午年), 붉은 말(馬)띠 해다. 오(午)는 태양이 지구와 가장 가까워진 정오의 한낮을, 병(丙)은 오행(五行)의 불(火)을 뜻한다. 병오년은 한낮의 태양이 불길처럼 이글거리는 전쟁터를 맹렬하게 치달리는 전마(戰馬)의 해, 붉은 말의 해다. 삼국지의 명장 여포와 관우가 탔던 적토마(赤兎馬)도 붉은 말이었다.

​붉은 말은 성서에서 말세(末世)의 둘째 생물로 등장한다. “둘째 봉인을 떼실 때에… 붉은 말이 나왔다. 그 (말을) 탄 사람이 땅에서 평화를 없애고 서로 죽이게 하는 권세를 가졌으며, 또 큰 칼을 가지고 있었다.”(요한계시록 6: 3,4) 붉은 색은 시뻘건 피, 생명파괴의 유혈사태를 뜻한다. ‘큰 칼’은 개인들의 작은 폭력이 아니라 집단적·구조적인 전쟁 곧 국가·민족·이념 차원의 무력 충돌, 파괴와 학살을 상징한다.

말세의 첫째 생물인 흰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는 견해도 있고 반대로 적(敵)그리스도를 의미한다는 견해도 있지만, 글의 전체 문맥으로 보아 ‘거짓 평화를 약속하는 정복자’로 해석하는 견해가 유력하다. 이 견해에 따르면, 붉은 말은 그 거짓 평화에 뒤따르는 폭력의 시대를 의미한다. 거짓 평화와 전쟁과 폭력은 우연한 사건이 아니다. 인간의 죄성(罪性)을 하나님이 잠정적으로 용인하는 권력 세계의 본 모습이다. 인류역사에서 평화가 깨어지고 세상이 전쟁과 살육으로 붉게 물든 비극이 얼마나 많았던가?​

적토마

붉은 말의 해는 그래서 우리에게 절제와 인내를 요구한다. 빨리 달리기보다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불은 밝은 빛과 따뜻한 열을 주지만, 적절히 통제되지 않으면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파멸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기수(騎手)의 손은 말의 고삐를 늘 단단히 틀어쥐고 있어야 한다.

불을 통제하는 고삐가 물이다. 불은 오만하게 위로 높이 치솟고, 물은 겸손하게 아래로 낮게 흐른다. 말의 질주를 다스리는 것은 고삐, 불의 오만을 다스리는 것은 물의 겸손이다. 치달리는 붉은 말의 해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말의 속도를 늦추는 ‘느림’의 고삐가, 나지막이 흐르는 물의 겸손이 필요하다.

​새해는 새 달력의 첫 장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새 일’에서 시작된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이사야 43:18,19)

사도바울은 고백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다. 옛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다.”(고린도후서 5:17) 새로운 피조물은 성공을 향한 질주와 경쟁으로 온통 시끄럽고 혼탁한 붉은 말의 전쟁터를 벗어나, 그리스도 안에서 고요히 새로운 길을 걷는 사람이리라. 그 새로운 피조물의 첫발을 내딛는 새해 아침이 싱그럽다.

이우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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