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빛의 속도가 1초에 30만 킬로미터이니 129억 광년은 도저히 상상되지 않는 거리다. 그것도 그 빛이 오는 동안 우주가 팽창을 계속하여 현재 기준으로는 280억 광년 떨어져 있다고 한다. 그 별이 아직 존재한다면 말이다.
가히 무한히 먼 거리라 부를 만한데, 인간은 예로부터 이처럼 먼 거리와 긴 시간을 머릿속에 그렸던 듯하다. 억겁(億劫)은 불교에서 유래한 말로,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오랜 시간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겁’은 우주가 한 번 생성되고 소멸하는 주기를 뜻하는데, 그것을 억으로 곱한 시간이다. 비유적으로 1겁은 1,000년에 한 방울 떨어지는 물방울로 바위에 구멍을 내거나, 100년에 한 번씩 내려오는 선녀의 치맛자락에 돌산이 닳아 없어지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억겁은 수많은 우주의 생성과 소멸이 반복되는, 무한대라 부를 만큼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아득한 시간이다.
그런가 하면 찰나(刹那)는 아주 짧은 시간이다. 75분의 1초에 해당하는 지극히 짧은 시간을 의미한다. 순식간, 즉 눈 한 번 깜빡하는 시간인 ‘순(瞬)’이나 숨을 한 번 쉬는 사이인 ‘식(息)’은 그에 비하면 오히려 긴 시간이다. 손가락을 한 번 튕기는 시간을 ‘탄지(彈指)’라고 하는데, 그동안 65찰나가 흐른다고 한다. 그러므로 찰나는 거의 무한대로 쪼개어 나눈 시간의 단위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사람들은 무한대로 긴 공간이나 시간뿐 아니라 무한대로 짧은 시공간도 머릿속에서 그릴 수 있다. 수가 무한대로 뻗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고대 수학자들은 이내 당황한 듯하다. 무한대를 숫자로 취급하고 그것으로 산술 연산을 하면 어떻게 되나?
“무한대 더하기 무한대는 무한대이다. 그러므로 무한대는 무한대의 두 배다.”라거나 “무한대 곱하기 무한대는 무한대이니, 무한대는 무한대의 제곱이다.” 등의 논리적 모순에 빠진 것이다.
결국 아리스토텔레스(BC 384~BC 322)가 “무한대는 진실이 아닌 상상의 과정이므로 잠재적으로 존재하지만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정리하였다. 이는 문제를 교묘하게 회피한 것이지만, 이 정의가 르네상스 시대까지 향후 2천 년간 유지되면서 무한대에 대한 논쟁은 잠들었다.
무한대로 고대 수학자들을 당황케 한 것에는 제논의 역설도 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제논이 모든 현실은 하나이며 변하지 않는다는 일원론을 옹호하기 위해 고안한 논증이다. 거북이보다 10배 빠른 아킬레우스가 거북이와 경주를 하는데, 거북이는 100m 앞에서 출발한다. 아킬레우스가 100m를 달리면, 거북이는 그보다 10m 앞에 가 있을 것이다. 아킬레우스가 10m 더 달리면, 거북이는 그보다 1m 앞에 있고 아킬레우스가 또 1m 가면 거북이는 그보다 0.1m 앞에 있다. 이 과정을 무한히 반복해야 하므로 아킬레우스가 느림보 거북이를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제논의 역설에는 이외에도 “A에서 B까지 가려면, A와 B 사이의 C, C와 B 사이의 D, D와 B 사이의 E 등 무한히 많은 점을 통과해야 하므로 물체는 움직일 수 없다”라는 이분법 역설이 있다. 또 “화살이 날아가는 시간을 무한으로 쪼개면 결국 시간이 0이 되면서 화살이 정지될 것이다. 매 순간 정지해 있다면 화살은 실제로 움직이지 않는다.”라는 화살의 역설도 있다.
제논의 역설은 무한 분할과 연속성, 시간의 유한성 등 현대 수학의 개념이 없던 시절에 제기되어, 당시에는 반박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이제 현대 수학에서는 이 ‘무한히 많은 단계’가 유한한 시간 안에 끝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아킬레우스가 거북이의 출발점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첫 번째 구간(100m)에서 1(예: 10초)이라면, 두 번째는 1/10(10m, 1초), 세 번째는 1/100(1m, 0.1초) 식으로 줄어들 것이다. 이를 더하면 𝒕 = 1 + 1/10 + 1/100 + 1/1000···의 무한급수가 되는데, 이 급수는 유한한 수 1.1111····(10/9)로 수렴한다.
즉 111m(11.1초)에서는 거북이가 앞서 있지만, 112m(11.2초)에서는 아킬레우스가 앞에 있다는 뜻이다. 이처럼 무한히 많은 과정도 유한한 시간 안에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제논의 역설은 무너졌다.
바로 미적분학의 기초가 되는 ‘극한(limits)’ 개념을 깨달은 순간이다. 이처럼 17세기에 창안된 미적분은 무한의 개념을 사용하여 만들어졌다. 미적분의 절차는 미분(微分)된 무한소로 나눈 순간 변화율을 구하는 것인데, 무한소는 계속 작아지다가 결국 사라지는 수다. 이후 무한대에 매료된 수학자들은 무한대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매우 실용적인 도구임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예를 들어 기하학에서 평행선은 ‘무한히 멀리 있는 점(무한원점)’에서 만난다고 간주하는데, 이 이론은 오늘날 3D 그래픽 등에 활용되고 있다.
1655년 영국의 수학자 존 월리스(1616~1703)는 무한대의 기호를 누운 8자(∞) 모양으로 만들었다. 그는 원래 신학을 공부한 성직자였는데, 뒤늦게 수학과 물리학을 공부해 옥스퍼드대학의 기하학 교수가 되었다. 또 1755년에는 오일러가 <미분학 입문서>에서 합을 나타내는 기호 시그마(∑)를 사용하였다. 무한히 계속되는 과정을 표현할 때 ·····를 쓰지 않고 한 항목으로 깔끔하게 표시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합을 뜻하는 그리스어의 첫 자에서 따왔다는 시그마는 극한을 뜻하는 ‘lim’ 기호와 함께 이후 미적분의 극한과 적분 정의에 널리 쓰이고 있다.
위 제논의 역설을 해결한 수열처럼, 무한대를 이용한 수열들이 하나씩 수학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예를 들면 1/8 + 1/16 + 1/32 + 1/64······ = 1/4로 수렴하는 수열도 그중 하나다. 특히 오일러가 π와 관련된 가장 우아하면서도 놀라운 수식을 발표하면서 무한대의 수열에 관한 관심이 최고조에 달했다.
아래 식에서 우변에 있는 수열의 합은 바젤 문제(Basel Problem)로 당시 수학자들 간에 가장 중요한 질문 중 하나였는데, 젊은 오일러가 답은 π²/6이라고 밝혔다. 그때까지 아무 관련이 없어 보였던 π와 정수 사이의 관계를 보여준 것이다. π²/6 = 1/1² + 1/2² + 1/3² + 1/4² + ····· (π²/6 = ∑1/n²)
무한대는 프랙탈 이론에서도 등장한다. 프랙탈 이론은 자연 현상의 모양이 스케일과 관계없이 비슷하게 반복되는 현상을 말한다. 예를 들어 항공사진으로 찍은 리아스식 해안선의 모습과 우리가 눈으로 보는 바닷가의 들쭉날쭉한 모습, 그리고 현미경으로 보는 바위의 구조가 축척만 다를 뿐 생긴 모양은 모두 닮은꼴이라는 것이다. 만일 현미경으로 보는 선을 따라간다면 해안선의 길이는 무한대가 될 것이다. 프랙탈 현상에는 그밖에도 브로콜리 잎, 눈송이, 산맥, 구름, 혈관 등 자연에서 다양한 예를 찾을 수 있다.
프랙탈 이론은 자연 현상뿐 아니라 경제, 기상 현상,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패턴 분석에 활용되고 있다. 사람들의 상상 속에 갇혀 있던 무한대는 이제 하나의 수로 자리 잡았다. 고대에 괴물로 보고 잠재웠던 무한대가 근대에 이르러 깨어난 것이다. 거기에는 무한히 큰 수, 무한히 작은 수, 그리고 무한히 계속되는 수열이 포함된다.
π와 𝒆를 포함한 무리수가 소수점 아래 순환 없이 무한대로 이어진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사람들이 가졌을 경외심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할 수 있다. 아마도 무한히 깊은 신비의 심연을 대하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인류의 모험은 무한대라 부를 만큼 넓고 큰 우주를 향하고 있다. 우리는 그 모험이 어디까지 갈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