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을 공격하여 복종시키면 반란의 기미가 스스로 사라지니, 예로부터 병법을 아는 자는 전쟁을 좋아하지 않는다.(能攻心則反側自消 從古知兵非好戰).”
중국 사천성 성도의 무후사(武侯祠)에 걸린 청나라 문인 조번(趙藩)의 공심련(攻心聯)이다. 무후사는 군주인 유비와 신하인 제갈량을 함께 모신 사당인데, 공심련은 제갈량이 남만을 정벌할 때 맹획을 일곱 번 사로잡고 일곱 번 풀어주어 진심으로 복종하게 만든 칠종칠금(七縱七擒)의 심리전략을 찬양하는 글이다.
전쟁은 단순한 무력의 충돌이 아니다. 마음과 마음의 충돌이다. 적을 악마화하고 희생을 정당화하는 절대선과 절대악의 대립적 신념체계로 작동한다. 그 신념은 구성원들에게 전쟁의 의미와 전투의 사명을 각인시켜, 희생을 순교로 받아들이게 하는 성스러운 종교적 상징이 된다.
나라와 민족, 자유와 혁명이 절대선으로 인식되고, 문명과 야만의 대결이 역사의 필연으로 인식되면서 전쟁은 일종의 세속종교가 된다. 구약성서는 유일신 야훼를 ‘강하고 전쟁에 능한 신’이라 부른다(시편 24:8). 고대로부터 종교는 희생을 요구하는 전쟁을 제의화(祭儀化)하여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했다.
종교는 다만 사랑과 평화와 구원을 가르치지 않는다. 진리를 독점하고 불신자를 적으로, 이단(異端)으로 규정한다. 종교가 정치가 되고 정치가 전쟁이 되면, 정치와 전쟁 또한 종교화한다. 정치의 상대방은 선의의 경쟁자가 아니라 악의를 품은 적으로 간주된다.
종교는 사랑과 포용의 관용체계가 아니라 권력과 지배의 동원체계로 전락한다. 종교가 영성(靈性)의 광야를 벗어나 전쟁의 핏빛 벌판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중세의 십자군 전쟁, 30년 전쟁, 이슬람의 지하드… 다 같이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모시는 셈족의 3대 종교인 기독교·유대교·이슬람교가 정치 및 전쟁과 삼위일체를 이룬 광기의 신념이었다.
그 종교들만이 아니다. 칼 야스퍼스(Karl T. Jaspers)는 ‘불교는 이교도 탄압, 종교재판, 종교전쟁을 일으키지 않은 유일한 종교’라고 말했는데, 살생을 엄격히 금지하는 불교의 역사에는 실제로 기독교나 이슬람처럼 대규모 전쟁을 벌인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러나 이것은 상대적인 고찰일 뿐이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무기를 들었던 호국불교는 예외라 하더라도, 자비를 외치는 불교가 전쟁에 깊이 관여한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불교는 군국주의 정권에 적극 협조했고, 임제종 승려 오모리 소겐(大森曹玄)은 ‘천황 폐하의 자비로운 마음이 만백성에게 흘러내릴 것’이라고 외치며 극우파 군사정권을 지지했다. 일본의 선종과 정토종은 막대한 전쟁비용을 헌납했고, 이름난 선사들이 제국주의 전쟁을 옹호했다.
자크 라캉(Jacques Lacan)의 주장처럼,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모방하다가 결국 같은 것을 놓고 경쟁하면서 적이 되고, 마침내 폭력과 전쟁으로 나아간다. 욕망의 끝은 전쟁이다. 전쟁은 희생양을 필요로 하는 점에서 종교와 매우 닮았다. 공동체는 폭력의 위협 앞에서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는다. 그 희생양에게 무기를 겨누고, 희생양 덕분에 갈등이 해소되며, 전쟁의 무질서는 소수의 희생양 때문에 다시금 질서로 회복된다. 희생은 종교적 의례가 되고, 폭력은 제사가 되며, 전쟁은 신화로 승화된다.
전쟁은 공동의 적을 만들고 내부를 결속시켜 희생을 정당화한다.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서로를 모방하다가 싸우고, 싸움을 멈추기 위해 희생양을 만들며, 그 희생을 종교적으로 신성화하고, 그 종교가 정치와 손을 잡으면서 다시 전쟁을 낳는다. 희생을 정당화하고 폭력을 제의로 바꾸면서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는 세속종교는, 폭력을 관리하는 체계화된 전쟁이나 다름없다.
전쟁의 배후에는 정치가, 정치의 배후에는 종교가, 종교의 배후에는 광기의 전쟁이 도사리고 있다. 악순환 구조다. 삶의 갈등과 고통을 완화·해소·치유해야 할 종교가 신념의 갑옷을 입고 도그마의 총칼을 휘두르면서 피비린내 나는 물리적 폭력으로 이어진다. 깨달음과 평화를 사모하는 종교가 정치권력과 손을 잡고 성전(聖戰)의 깃발 아래 증오와 살생의 폭력을 찬양하며 전쟁을 정당화해온 것이 인류 역사의 흐름이다.
이란의 신정(神政, Velâyat-e Faqih) 체제가 반정부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하며 수천 또는 수만 명을 학살하자,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무장을 막겠다며 어마어마한 폭탄을 쏟아부었다.
미국의 트럼프는 스스로를 크리스천이라고 밝혔고, 이스라엘의 네타냐후는 유대교도이며, 이란의 모즈타바 하메네이는 이슬람 성직자다. 우크라이나를 무력 침공한 러시아의 푸틴도 정교회 신자라고 한다. 이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고대 로마의 절대권력자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종신직 최고제사장(Pontifex Maximus)이기도 했다. 정치권력이 종교권력까지 움켜쥔 것이다.
마음에 종교를 품었다는 권력자들이 어둠의 손을 뻗어 서로를 죽일 듯 전쟁을 벌이고 있다. 손으로는 살상을, 입으로는 사랑과 용서를 말한다. 신도 인간도 모두 속이려는 끔찍한 거짓 아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