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5 광복을 여섯 달 앞둔 1945년 2월 16일, 스물여덟 살의 윤동주 시인은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마지막 숨을 거둔다.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바람이 불어) 식민제국주의의 먹구름이 젊은 시혼(詩魂)을 짓누르던 그 지옥 같은 시대를 어찌 슬퍼하지 않았으랴!
사랑을 고백할 단 한 명의 여인도, 뜻을 펼칠 단 한 뼘의 자리도 갖지 못했던 윤동주 시인이 그나마 겨우 소유할 수 있었던 것은 하늘과 땅 사이 그 드넓은 공간에서 오직 잎새에 이는 바람, 그 바람에 스치는 별뿐이었다. 울분의 시대를 슬퍼할 여유조차 없었던 식민지의 청년은 “한 번도 손들어 보지 못한 나/ 손들어 표할 하늘도 없는 나”(무서운 시간)를 고뇌하며 가쁘게 숨 쉬어야 했다. 20대 젊음에게는 그보다 더한 고통이 없었을 게다.
무슨 결벽증인 듯 창백하기만 했던 그의 윤리의식은 사람들의 눈길에는 아예 기대를 접은 채 오로지 하늘과 땅, 잎새와 바람, 그 바람에 스치는 별빛을 향해 치열하게, 정갈하게 펼쳐지면서 ‘죄 없는 죄의식’으로 승화되어갔다. 그리고 그 ‘죄 없는 죄의식’은 종내 스스로를 처형하고 만다.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붉은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십자가)
윤동주의 성찰은 철학자의 시선보다 치열했고, 그의 저항은 혁명가의 가슴보다 뜨거웠으며, 그의 역사의식은 독립투사 못지않게 투철했고, 그의 참회는 신앙인의 영혼만큼 그윽했다.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라고 탄식하는 시인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참회록)고 다짐한다.
녹슨 구리거울처럼 빛바랜 민족의 역사 앞에 자신의 피곤한 실존을 비춰보며 시대의 아픔을 씻어내는 거룩한 의식을 집례(執禮)해보지만,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팔복)이라는 체관(諦觀)에 이르자, 차라리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또 다른 고향)고 스스로를 유혹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를 애타게 부르며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별 헤는 밤)하고자 애썼던 시인의 숨 깊은 절언(絶言)들은 온통 내 젊은 날의 질풍노도였고, 이제까지의 모호한 열정을 이끌어준 삶의 별자리이기도 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序詩)
스물다섯 살 창창한 나이에 쓴 첫 번째 시를 어찌 ‘죽는 날’로 시작할 수 있는가! 어둑어둑한 첫 구절에서부터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는 마지막 구절까지 온통 부끄럼, 밤, 괴로움, 죽어가는 것들로 이어지는 적막한 단조(短調)의 노래는 또래의 젊음으로는 선뜻 토해내기 어려운 아득한 영혼의 각혈이다.
창백하리만치 정갈한 시혼(詩魂)을 운명처럼 끌어안고 식민지의 적막한 삶을 괴로워했던 슬픈 영혼은 일제의 감옥에서 스물여덟 해의 처절한 삶을 짤막하게 거둔다. 스물다섯에 ‘죽는 날’의 <서시>를 쓰고, 스물여덟에 그 마지막 구절처럼 ‘별이 바람에 스치’듯 일제의 감옥에서 숨을 거둔 윤동주의 깊은 성찰을, 성직자라도 품기 어려운 저 맑디맑은 영성(靈性)을, 그 곱절이 넘은 나이에도 나는 흉내조차 내지 못한다.
“너의 어깨에 기대어 마음 놓고 울어보고 싶을 때…창가에 문득 햇살이 눈 부실 때, 새들이 톡톡 안개를 걷어내고 바다를 보여줄 때… 가난한 윤동주의 서시를 읽는다”던 어느 시인의 이채로운 독법(獨法)이 떠오를 뿐이다(정호승 <윤동주의 서시>). 한겨울 2월, 얼어붙은 가슴으로 윤동주 시인을 추모한다.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윤동주… 겸허히 옷깃을 여미며 그의 시어를 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