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치의 절대 권력에 굴복한 독일기독교는 히틀러를 ‘하나님이 보내주신 구원자’라고 선포하며 나치 독재에 적극 협력했다. 그때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목사는 마르틴 니묄러(Martin Niemöller) 목사와 함께 고백교회(Bekennende Kirche)를 창립했고, 신정통주의 신학자 칼 바르트(Karl Barth)가 기초한 바르멘 선언(Barmer Erklärung)에 참여하는 등 나치 반대운동의 선두에 섰다. 그의 반나치 운동은 정치투쟁을 넘어선 신앙의 전투였다.
전쟁이 임박하자 본회퍼는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는 미국 유니온신학교에서 교수직을 제안받았지만, 히틀러의 독재 아래 고통받는 조국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어 깊은 고민에 빠졌다.
어느 날 <헤른후터 로중>(Die Losungen der Herrnhuter)이라는 명상집을 읽던 본회퍼는 디모데후서 4장 21절에서 큰 충격을 받고 귀국을 결심한다. “너는 겨울이 되기 전에 어서 오라.”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전한 마지막 인사다. 디모데후서는 바울이 두 번째 로마 감옥에 갇혔을 때 유언처럼 남긴 마지막 편지이기도 하다. 달려갈 길을 다 마친 바울이 디모데에게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당부하는 간곡한 권면이 담겨 있다.
“겨울이 되기 전에 어서 오라.” 이 구절을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는 계시로 받아들인 본회퍼는 니버에게 편지를 써 보낸다. “역사의 어려운 시련을 내 민족과 함께 하지 않는다면, 나는 전쟁 후에 독일 크리스천들과 재회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독일로 돌아온 본회퍼는 나치 반대운동을 주도하다가 결국 감옥에 갇힌다. <작전명 발키리(Valkyrie)>라는 영화로도 잘 알려진 히틀러 암살 모의에 가담한 혐의로, 본회퍼는 종전을 불과 20여 일 앞두고 서른아홉 살에 교수대에서 처형당했다.

제자도란 고난받는 그리스도께 헌신하는 것이다.” -디트리히 본회퍼
본회퍼는 이런 설교를 남겼다.
“오늘 우리의 싸움은 값싼 은혜가 아니라 값비싼 은혜를 얻기 위한 싸움이다. 값싼 은혜는 죄인을 의롭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의롭다고 하는 것이다. 싸구려 은혜는 그리스도를 본받음이 없는, 십자가 없는 은혜에 불과하다. 교회는 타자를 위해 현존할 때 진정한 교회가 된다.”
라인홀드 니버는 20세기의 순교자 본회퍼의 삶을 가리켜 ‘현대의 사도행전’이라고 회고했다.
본회퍼 신앙의 위대함은 단지 ‘나치에 항거했다’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나치의 희생자들 편에 섰다’는 데 있다. 사악한 세속 권력이 하나님을 부인하고 십자가의 은혜를 모독한다면, 그때가 신앙의 겨울일 것이다. 북한 동포들은 이미 그 겨울 속에서 오랫동안 고통받고 있다. 그리고 그 겨울이 우리에게도 닥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겨울이 오기 전에 우리 신앙의 자리가 다시 굳건해지기를 소원한다. 값비싼 은혜를 지키기 위한 선한 싸움의 그 자리에서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