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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이택순의 아무르 답사기 28] 소련 영웅이 된 고려인 장교 김유천…하바롭스크 거리에 남은 이름
하바롭스크 레닌광장, 평화와 전쟁의 교차로에서 평화의 상징 비둘기들이 모이를 찾고 있다 하바롭스크 시내 레닌광장에서 우리는 시내 번화가로 차를 이동했다. 최고의 번화가인 ‘칼 마르크스’ 거리와 평행하게 뻗어 있는 고풍스러운 거리가 ‘김유천 거리(표트르 김 울리짜)’이다. 고려인(러시아 국적 한인)의 이름 ‘김유천(표토르 김)’으로 명명한 거리가 어엿하게 도시 중심가에 자리 잡고 있다는 현실이 믿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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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이택순의 아무르 답사기 29] 수이푼 강가의 이상설…연해주에 남은 고려인의 역사
아무르에서 만난 멋쟁이 러시아정교 성직자 러시아인들은 하바롭스크를 극동 러시아의 중심이며 자존심이라 한다. 블라디보스토크(Владивосток)가 동해(일본해)의 진취적 해양도시라면, 하바롭스크(Хабаровск)는 웅장한 아무르강의 개척도시였다. 오늘 우리가 목적지로 삼은 우수리스크(Уссурийск)는 연해주 수이푼강 유역의 풍요로운 농업 도시라 말할 수 있다. 거구의 러시아 정교 복장을 한 성직자와 이슬람식 모자를 착용한 그 동료를 하바롭스크 아무르(흑룡강) 강변에서 만났다. 하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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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순의 아무르 답사기 27] 연해주 전장 누빈 김경천, 독립군 총사령관에서 수용소의 죽음까지
김경천이 방문한 하르빈 역사 1920년대 / 하르빈 안중근의사기념관 연해주로 출발하는 제국의 장교 출신 김경천의 목표는 5천 명의 독립군 병력을 모집하여 두만강을 넘어 고국으로 진공하는 것이었다. 세계 정세와 일본의 군사력을 감안할 때 순진한 청년 장교의 무모한 꿈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숭고한 꿈을 가슴에 간직하고 연해주 벌판으로 달려 나갔다. 김경천의 연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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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순의 아무르 답사기 26] 김 알렉산드라…망명의 끝에서 총살된 고려인 여성 혁명가
1918년 9월 16일 새벽- 하바롭스크 아무르강 우조스 절벽, 우아한 자태의 조선인 여성 시신이 절벽으로 던져져 아무르강으로 사라졌다. 죽기 전 그녀가 외친 마지막 말은 “조선독립 만세! 사회주의 만세! 여성의 자유 만세!”였다. 하바롭스크 지역의 아무르 역사기행은 이 여인으로부터 시작했다. 김 알렉산드라, 우수리스크 최재형기념관 이목구비가 수려한 지성미가 풍기는 미인, 이 여인의 이름은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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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이택순의 아무르 답사기 25] 하바롭스크 ‘죽음의 계곡’에서 만난 고려인 지식인 ‘조명희’
아무르강 ‘죽음의 계곡’ 기념비 하바롭스크 아무르강 ‘죽음의 계곡’ 기념비에서 우리는 고려인(러시아 국적 조선인) 역사의 아픈 상처를 또 하나 발견하게 된다. ‘조명희(러시아어, Чо Мен Хи)’라는 이름이다. 하바롭스크 어딘가에서 총살되어 아무르강으로 사라져 버린 또 한 명의 조선 지식인, 조명희였다. 조명희는 누구이며, 어떻게 러시아로 망명했고, 왜 ‘죽음의 계곡’에서 비극을 맞이했는가? ‘포석 조명희(1894~1938)’는 구한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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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이택순의 아무르 답사 24] 하르빈, 극동의 모스크바…게른그로스와 러시아의 만주 야망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만주와 극동 지역에서 러시아의 군사적 영향력을 상징하는 인물이 있다. 그는 러시아 제국 육군 중장 알렉산드르 게른그로스(1851년~1920?)이다. 오늘의 하바롭스크 탐사는 군인 게른그로스의 흔적을 따라 아무르와 북만주의 제국주의 역사를 찾아보는 일정이다. 1920년대 하르빈역 풍경, 하르빈 안중근 의사 박물관 게른그로스의 트레이드마크는 ‘동청철도경비대’라는 조직이었다. 철도경비대는 점령군이나 정규군이 아닌 치안 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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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이택순의 아무르 답사 23] 하바롭스크, 야망의 개척사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중국 하르빈으로 연결되는 교통요지 우수리스크역에서 잠시 정차한 후, 밤의 적막을 뚫고 대륙의 땅을 밤새 달렸다. 간간히 정차하는 중간역도 명멸하는 푸른 등불 이외에 인적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식당 칸 레스토랑을 방문해 보았으나 우크라이나 전쟁의 탓인지 손님이 별로 없다. 혹시나 우수리강이 보일까 서쪽 창을 응시했지만, 어둠속에 보이는 것은 적막속의 수림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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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이택순의 아무르 답사 22] 시베리아 횡단열차, 석양속으로
블라디보스토크역, 러시아의 전통과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고대하던 TSR(시베리아 횡단열차 Trans-Siberian-Railway)에 탑승하기 위해 블라디보스토크역 건물에 들어섰다. 건물은 작지만 우아한 외형은 우리의 서울역이나 일본의 도쿄역보다 더 귀족적이고 예술적이었다. 서양식 궁전처럼 생긴 돔형 역사는 원래 황제와 귀족들을 위한 문화 예술공간으로 건축되었다. 역사 건물안에 장식된 니콜라이 2세 황태자의 황금색 부조상과 로마노프 왕조의 문양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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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이택순의 아무르 답사21] 남만주철도, 격돌하는 제국주의
하르빈역 야경, 러시아의 건축과 문화유산을 엿볼 수 있다. <사진 이택순>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여행자에게 대륙을 넘나드는 낭만의 철도였다. 이름도 생소한 동청철도(東淸鐵道)와 남만주철도는 만주지역의 편리한 교통망에 불과했다. 러시아와 만주지역을 답사하기 전의 단순한 생각에 불과했음을 알게 된다. 하르빈역에 내려서면서 만주지역 세 철도망의 역사적 실체를 재조명할 시각을 가지게 된다. 극동지역의 지정학적 균형을 뒤흔드는 시베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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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순의 아무르 답사20] 대관식 축포 뒤에서 태어난 제국의 거래, ‘동청철도’의 시작
러시아 건축양식의 하르빈풍경. 동청철도의 유산이다 <사진 이택순> 1896년 5월 26일(태양력), 모스크바 러시아정교회 우스펜스키 대성당에서 웅장한 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전 세계의 왕실과 외교사절이 모인 가운데, 신임황제 니콜라이 2세 대관식이 장엄하게 열린 것이다. 강경 보수파였던 부친 알렉산드르 3세가 철도사고의 후유증으로 2년 전 갑자기 사망한 후, 집권 준비없이 맞이한 젊은 차르 니콜라이 2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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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순의 아무르 답사19] 시베리아횡단철도, 대륙을 잇고 동북아를 흔들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블라디보스토크 플랫폼에서 필자 6월 초, 초여름의 햇살이 부드러운 저녁, 시베리아 횡단철도(TSR:Trans Siberian Railways) 블라디보스토크 역에 도착했다. 청춘 시절부터 몽상 속에 그려보던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탑승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저녁 6시에 출발하여 아무르강의 도시 하바롭스크까지 다음날 새벽 6시반에 도착하는 여정이다. 장장 900Km를 12시간 30분 동안, 야간열차로 이동하게 된다. 설레는 가슴으로 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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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이택순의 아무르 답사18] 루스키 섬에서 만난 러시아의 휴일, 자유의 얼굴
해풍 속에 피어난 야생화를 뒤로 하고, 나란히 걷는 남과 여. 그들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아무르 프로젝트의 전반부, 블라디보스토크 답사도 일정이 마무리되고 있었다. 답사일정은 빠듯하지만, 한나절을 활용해 현대 러시아인들의 휴일 일상을 경험해 보기로 했다. 장소는 현지에서 추천한 블라디보스토크 남단, 루스키 섬이었다. 트래킹을 하며 내해 아무르만과 외해(동해/현지에서는 일본해로 부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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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이택순의 아무르 답사18] ‘헌신의 혁명가’ 이상설이 잠든 연해주로 가다
차량이 넘치는 포그라치나야 거리, 고려인들의 영혼이 깃든 곳이다. <사진 이택순> 다시 블라디보스토크(해삼위)의 번화가, 포그라니치나야 거리(구 개척리)를 걸어본다. 현대식 건물이 즐비한 이곳에서 고려인(19세기 말 이주한 조선인)과 망명 우국지사들의 사라진 발자취를 찾아보려는 것이다. 흔적이 없다면 영혼의 울림은 있으려나?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이후 망명 우국지사들은 러시아의 보호와 고려인 동포들의 지원을 기대하며 신세계로 여겨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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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이택순의 아무르 답사17] 이동휘, 이념의 경계를 넘어 독립 꿈꾼 민족주의의 길
이동휘의 석조 부상 , 파크롭스키성당 근처 석조물 중국대륙과 러시아의 한국독립운동가를 탐사하다 보면 난해한 문제 중의 하나가 그들의 이념성향에 관련된 문제이다. 친일문제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독립운동 전선에서 민족주의자(자유민주주의자) 인가, 사회주의자(공산주의자)였는가의 구별이다. 중국지역은 만주와 상해지역이 차이가 있지만,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가 병존이 가능했다. 그러나 러시아 지역은 1917년 러시아혁명이 발발 후에는 독립운동가 대부분이 사회주의로 기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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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이택순의 아무르 답사⑮] 블라디크-신한촌, 민족의 혼과 별
이방의 땅에서 피운 조국의 불꽃 –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의 기억 20세기 초 러시아지역 한인독립운동의 성지는 블라디보스토크(약어:블라디크)이며, 그 중심은 ‘신한촌‘이라 불리는 지역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은 어떻게 언제 생겨났을까? 오늘은 블라디보스토크 독립운동의 거점 신한촌을 찾아보기로 한다. 1870년 초부터 블라디보스토크에 ‘고려인'(1864년 이후 조선에서 이주한 한인)들이 집단거주한 곳은 아무르만 남쪽 평지인 바닷가였다. 이곳은 현재의 시내 중심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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