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사회

[이택순의 아무르 답사20] 대관식 축포 뒤에서 태어난 제국의 거래, ‘동청철도’의 시작

러시아 건축양식의 하르빈풍경. 동청철도의 유산이다 <사진 이택순>

1896년 5월 26일(태양력), 모스크바 러시아정교회 우스펜스키 대성당에서 웅장한 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전 세계의 왕실과 외교사절이 모인 가운데, 신임황제 니콜라이 2세 대관식이 장엄하게 열린 것이다. 강경 보수파였던 부친 알렉산드르 3세가 철도사고의 후유증으로 2년 전 갑자기 사망한 후, 집권 준비없이 맞이한 젊은 차르 니콜라이 2세였다.

모스크바 우스펜스키성당 <위키피디아 자료>

새 황제를 맞은 제정러시아는 개혁을 바라는 국민적 기대 속에, 긴장과 흥분 열광 속에서 축제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대관식장에 모인 세계의 외교사절들, 그 중간에 동아시아 3국(청국, 일본, 조선)의 특사들은 긴장하며, 러시아인들의 이국적인 대관식을 호기심 속에 주시하고 있었다.

니콜라이2세 부조상, 로마노프왕가 마지막 차르

만고풍상을 겪은 73세의 청국(중국) 총리 리홍장(1823-1901)과 일본의 전 총리대신 58세의 야마가타 아리토모 (1838-1922)가 서로 눈길도 주지 않고 자리하고 있었다.

청국과 일본은 1년 전 전쟁으로 격돌하며 청국은 패전의 대가로 대만과 팽호열도를 빼앗기고 막대한 전쟁보상금을 물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청국은 다행히도 러시아와 독일 프랑스의 도움(삼국간섭)으로 요동반도의 대련과 여순항을 반환받았다. 하지만 삼국 특히 러시아로부터 어떤 청구서가 날아올까 몹시 우려하는 처지였다.

​당시 리홍장의 나이 73세, 1년 전 전쟁종결 협상 중 시모노세키에서 일본인의 총격으로 부상을 입은 상처가 얼굴에 아직도 남아있었다. 고령으로 언제든 죽음의 통지서가 날아올 나이였건만, 러시아는 대관식을 빛내기 위해 동양의 실력자 리홍장의 직접 참석을 재촉했다. 6척 장신의 거물, 리홍장만한 인물이 청국에는 없었다. 언제든 눈 감을 수 있다는 예감으로 황금빛 목관을 청국 군함에 싣고 수에즈운하를 거쳐 흑해로 들어와 러시아 기차를 타고 참석한 것이다.

​다부진 눈매의 야마가타 아리토모 전 일본총리는 누구인가? 일본 죠슈군벌의 보스로 내각보다 막강하다는 일본 육군을 대표하며, 문신 이토 히로부미와 쌍벽인 전쟁영웅 무관 대표였다.

시종무관장 민영환 <네이버 지식백과>

이들보다 많이 연소한 35세의 민영환 조선특명전권공사(1861-1905년 예조판서)가 숨죽이며 양자의 눈치를 보며 자리하고 있었다. 청일전쟁 전만 해도 이런 외교석상에 참석하는 것은 상국인 청국의 사전 승인을 받으라는 불호령을 내리던 리홍장이었다.

청일전쟁의 결과 조선은 독립국이라며 형식적 족쇄는 풀렸지만, 왕비(민비)가 일본에 의해 살해당하는 국란의 상황이었다. 일본의 군사력에 점령된 처지에서 일본 특사 야마가타의 눈치도 봐야 하는 딱한 형편이었다.​

더구나 출발 직전에는 고종임금이 러시아공사관으로 도피한(아관파천) 상황에서, 특사 민영환은 러시아의 군사원조를 얻어야 하는 사명에 가슴 졸이고 참석한 처지였다. 체구가 왜소한 조선특사 민영환의 모습은 마치 강대국에 흔들리는 조선의 상황을 보여주듯 더욱 가련해 보였다. 조선은 늑대와도 같은 제국주의자들에게는 너무도 손쉬운 먹잇감이었다.

시베리아횡단열차, 블라디보스토크 <사진 이택순>

이 대관식에 참석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던가? (민영환의 <해천추범(海天秋帆> 참조) 민비의 조카이며 예조판서를 역임해 서양 외교관과 친분이 있는 민영환은 1896년 4월 러시아 니콜라이 2세 대관식 특명전권공사로 임명받았다. 사절단은 국제사정에 밝은 윤치호 등 수행원 2명, 중국어, 러시아어 통역관, 러시아공사관 서기관 스테인 등 6명이었다. 고종은 러시아공사관에 피신 중이었다. 마침 러시아 황제의 대관식 참석을 계기로 추가 병력의 파견과 차관공여, 러시아의 협력을 요청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일행은 두 달전, 경성(서울)을 출발하여 인천항에서 러시아가 제공한 군함으로 일본 나가사키로 이동했다. 나가사키에서 영국 상선을 타고 중국 상해에 도착했다. 중국 상해에서 네덜란드나 영국 상선으로 유럽으로 가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유럽 배편은 한 달에 한 번 운행하며, 그것마저 직전에 이미 출발한 상황이었다. 러시아황제 대관식 참석을 포기해야 하나? 왕명을 받고 나라를 구하기 위한 길이 막혀버린 것 아닌가!

​일행을 수행한 윤치호와 러시아 외교관 스테인이 이리저리 수소문했다. 상해에서 일본을 거쳐 태평양을 건너 미국으로 가는 캐나다 배편이 있다는 것이다. 태평양-미국을 거쳐 유럽으로 가는 노선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뒤돌아 볼 겨를 없이, 다시 일본 고베까지 캐나다 상선을 얻어타고 들어갔다. 일본 고베에서 2주 만에 태평양을 건너 캐나다 뱅쿠버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캐나다 대륙을 횡단하는 캐나다 횡단열차를 타고 뉴욕으로 향했다. 뉴욕에서는 영국 상선으로 대서양을 건너 런던으로 향했다. 세계 제1의 도시 런던을 보는 듯 마는 듯 정신없이 도버해협을 건너 파리로 향했다. 파리에서 기차를 타고 독일 폴란드를 거쳐 러시아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했다. 거의 50일이 소요된 것이다. 기력이 완전 소진되었다.

대관식장은 여기서 650Km 떨어진 러시아의 정신적 성지, 모스크바 러시아 정교회 우스펜스키 대성당이었다. 다시 열차로 이동했다.

​엄숙한 대관식이 끝나고 , 샴페인이 터지며 수염이 텁수룩한 테너 가수의 축가와 여성 발레리나의 축하무도가 이어졌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대표 야마가타는 거만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리홍장과 민영환은 수심으로 가득찬 얼굴들이었다.

이 파티가 끝이 나면, 모스크바의 차가운 밤하늘 아래 제국의 맹수들이 울부짖는 수림으로 나가야 한다. 약소국 먹잇감을 놓고 이리저리 흥정을 하는 마키아벨리의 협상이 이어질 것이다. 아! 천근같이 머리가 무겁다.

치타-치치하얼-하르빈-블라디크는 동청철도 지름길이다.

낯에는 무도회, 밤에는 협상으로 며칠이 지났다.

일본 특사 야마가타와 러시아 외무상 로바노프는 조선문제에 관한 협상을 진행한다. 러시아와 일본이 조선에 군대를 파견할 권한과 영향력을 상호 인정하며. 무력충돌을 피하려는 합의를 하게 된다. 아관파천으로 인한 기울었던 한반도에서 일본의 수세가 회복된 것이었다. 조선은 안중에도 없었다. 민영환 일행은 이를 알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조선은 자주권을 양국에 의해 침해받으며 공동간섭하에 처하는 상황이 된다. 말하자면 ‘조선 패싱’이다.

민영환의 협상은 러시아의 군사교관과 재정고문을 지원받는 데에 그쳤다. 러시아는 일본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군사지원을 약속하지 않았다.

​한편 러시아의 실세 세르게이 비테 재무상은 청국 대표 리홍장과 비밀협상을 추진하며, ‘중러밀약(상호원조조약)’을 체결하게 된다. 일본 침략에 대비하여 공동방어와 전쟁 발발 시 러시아군함의 중국항구 사용권, 중국영토내 철도부설권(동청철도/만주횡단철도)을 부여받는다.

니콜라이 2세의 철도기공식 <모스크바철도박물관>

여기서 가장 파란을 일키는 것은 동청철도부설권이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 최고의 난공사 지역인 아무르강(흑룡강)을 우회하여, 만주지역을 횡단하는 철도건설권이었다. 이는 철도용지와 부속지를 포함한 토지(선로, 역, 창고, 공장, 거주지)의 전반적 사용권으로 이어진다. 이 광범위한 지역이 러시아의 행정 치안권이 미치는 지역으로 사실상의 치외법권 지역으로 변모하게 된다.

​후일 철도보호를 목적으로 ‘동청철도 경비사령부’까지 설치하여 러시아군을 합법적으로 주둔시키는 수준으로 확대된다. 학자들은 동청철도를 따라 ‘가늘고 긴 회랑형의 러시아 영토’가 생겨난 것이라 말한다.

러시아가 건설한 만주 거점 하르빈역사의 현재 모습 <사진 이택순>

이 당시 러시아가 건설한 대표적 도시가 하르빈이며, 후일 안중근 의사도 이런 국제법적 성격을 충분히 알고, 하르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게 된다. 망명 독립지사나 무장 독립군도 러시아의 보호에 의지해 일본을 피해 이곳으로 몰려든다. 하르빈은 조선독립운동의 주요거점이 된다.

러시아와 일본 양국 간 비밀협정이라 국제사회는 이 내용을 전혀 알 수 없었다. 시베리아횡단철도를 조기에 연결시켜 극동지역을 장악하려는 세르게이 비테의 책략이었다.

리홍장에게는 신흥대국 일본이 러시아보다 더욱 두려웠다. 일본의 침략을 막기 위해 러시아의 군사협력을 받는 대가로, 만주지역에 러시아가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허용했다. 만주가 러시아의 절반 식민지가 되는 길이었다. 돌이킬 수 없는 외교적 대실책이었다. 이후 중국은 열강들의 도마에 올라 갈기갈기 찢기기 시작했다.

동청철도의 지름길 송화강, 하르빈에서 필자

대관식 파티장 무대 뒤에서 시베리아횡단철도의 지름길, 동청철도는 탄생하였다. 동청철도가 추진되면서 일본은 아연 실색했다. 러시아의 책략에 당한 것을 알았다. 국가적 위기감이 극에 달했다. 그리고 전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동청철도는 지정학적 파열음의 기적을 크게 울리며 만주벌판을 달려온다.

이택순

전 경찰청장, '이택순의 실크로드 도전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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