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사회

[이택순의 아무르 답사19] 시베리아횡단철도, 대륙을 잇고 동북아를 흔들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블라디보스토크 플랫폼에서 필자

6월 초, 초여름의 햇살이 부드러운 저녁, 시베리아 횡단철도(TSR:Trans Siberian Railways) 블라디보스토크 역에 도착했다. 청춘 시절부터 몽상 속에 그려보던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탑승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저녁 6시에 출발하여 아무르강의 도시 하바롭스크까지 다음날 새벽 6시반에 도착하는 여정이다.

장장 900Km를 12시간 30분 동안, 야간열차로 이동하게 된다. 설레는 가슴으로 벅찬 출발을 기다리며 이 거대한 대륙철도의 역사적 탄생과 동북아의 지정학적 격동의 상념에 빠져든다. 러시아는 이 철도를 건설하여 유라시아 대륙에 어떤 국제정치적 변동을 만들어 냈을까? 한반도에는 이 거대한 철도가 어떠한 지정학적 변화를 초래했을까?

소박한 역사 내부, 출발을 기다리는 여행객들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거리가 무려 9288km(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는 650Km 추가됨)이다. 한반도 남쪽 협소한 면적에서 자란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너무나 멀고 먼 거리이다. 서울과 부산을 연결하는 경부선이 441km이므로 20배도 넘는 긴 거리이다. 거의 무한의 공간이 펼쳐지는 유라시아 대륙은 한반도와는 스케일이 완전히 다른 무한의 무대였다.

블라디보스토크역 <사진 이택순>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2025년 기준으로 편도에 6박 7일(총 148시간)이 소요되는 세계에서 가장 긴 철도였다. 1900년대 개통 초기에는 모스크바-블라디보스토크 간 약 4주(28일)의 시일이 소요되었다. 예기치 못한 사태로 중간에서 며칠씩 지연되는 것은 다반사였다. 대륙 곳곳에 퍼붓는 폭우와 홍수, 폭설 한파로 선로가 붕괴되고, 마적의 습격으로 여행객은 위험에 빈번히 노출되었다. 대륙횡단 철도여행은 생명을 건 값비싼 모험에 가까웠다.

​미국의 대륙횡단철도는 샌프란시스코-뉴욕 간 5470km를 3박 4일(약 75-80시간) 간 달린다. 양 대륙의 철도를 비교해 보면 시베리아 철도가 1.7배 이상 거리가 길며, 시간도 2배 이상 소요되는 대단한 규모임을 알게 된다.

시베리아 횡단철도 기념비, 9288

19세기 후반, 런던과 파리에서 극동지역 베이징, 도쿄에 증기선으로 도착하는데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 항로는 약 90-110일 이 소요됐다. 1869년 개통된 지름길, 수에즈운하를 통과해도 50-60일이 소요된다. 해양이동은 장기간이 소요되며, 항해의 위험에 노출되었음에 비해,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상대적으로 신속하고 효율적인 루트로 각광받기 시작한다.

​18세기부터 세계의 해양패권을 장악한 영국은 동아시아로 진출하며, 대륙국가 러시아의 남하정책과 필연적으로 충돌하게 되었다. 영국은 1869년 개통된 수에즈운하를 이용하여 극동 아시아에 도달하는 시간을 50일로 단축하고 영국군을 극동으로 전진 배치했다. 1886년 조선의 영토 거문도를 불법 점령하고 군대를 주둔시키며, 언제든 블라디보스토크를 점령할 수 있는 군사력을 갖추었다.

​영국의 동아시아 진출에 대해 대륙세력 러시아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해양세력으로부터 극동의 영토를 수호하고 시베리아의 개발을 촉진시키기 위한 방안에 대해 고민한다. 결론은 대륙을 관통하는 철도의 건설이었다. 군사력을 신속히 이동시켜 영국의 진출에 대항해야 한다는 국가전략을 채택하게 된다.

19세기 말 러시아에는 애국주의 광풍 속에, 대륙횡단철도 건설에 광신적 집념을 가진 슬라브의 사내들이 있었다. 1881년 개혁군주 알렉산드르 2세가 폭탄 테러로 사망한다. 국가위기 속에 제위를 계승한 알렉산드르 3세 황제(재위 1881-1894년 )는 강경 보수주의자였다. “무너진 국가질서를 확립하고, 광활한 시베리아 영토를 통합하여 위대한 러시아를 만들겠다”라는 차르의 의지는 시베리아 철도건설의 커다란 모멘텀이 되었다.

​차르는 세르게이 비테(1849-1915)라는 총명하고 야망이 충만한 인물을 발탁했다. 카프카즈의 개척지에서 성장한 비테는 평민 출신으로 철도관리로 승승장구하여 재무장관의 직위에 올랐다. 명석하면서 야망이 충만한 비테는 마키아벨리스트였다. 그는 “극동지역을 철도로 연결해 유럽과 아시아 사이의 무역에서 러시아가 중요한 자리를 구축한다. 모스크바를 세계의 중심도시, 제3의 로마로 만든다”는 창대한 구상을 황제에게 지속적으로 진언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역사 내 니콜라이 2세 부조상

비테는 철도건설위원회 위원장으로 장래의 황제 니콜라이 2세(재위 1894-1917) 황태자를 옹립했다. 주변의 반대를 물리치고 무한정의 정부 예산을 쏟아붓고 강압적인 관료체제를 동원했다.

1891년 니콜라이 2세 황태자는 야심찬 극동 순방 중에 ‘러시안 오리엔탈리즘(러시아와 아시아 사이에는 역사적 유사성이 있다는 친아시아주의)’에 경도되었다. 유약했던 황제였지만 재위기간 내내 극동 진출과 횡단철도 건설에는 든든한 보증인이었다.​

1891년 5월, 지구 역사상 가장 큰 토목공사인 시베리아횡단 철도공사가 시작되었다. 동쪽은 극동을 순방 중인 니콜라이 황태자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서쪽은 차르 알렉산더 3세가 첼라빈스크(모스크바에서 2천 km 거리)에서 참석해 동시에 팡파르가 울렸다.

최난도의 공사구간, 이르쿠츠크~하바롭스크(자바이칼 구간)

시베리아 철도건설 대역사는 대체로 구간을 5개의 구간으로 진행되었다. 유럽구간(모스크바-첼라빈스크), 서시베리아 구간(첼라빈스크-노보시르스크), 동시베리아 구간(노보시르스크-이르크츠크), 자바이칼 구간(이르크츠크-하바롭스크), 우수리 구간(하바롭스크-블라디보스토크)이었다.

그 중 유럽구간은 1880년대에 첼라빈스크까지 이미 철도가 개통되어 있었다. 나머지 4개 구간을 관통하는 공사 중 서시베리아는 평지와 저지대로 비교적 공사가 수월하였다. 그러나 동시베리아와 자바이칼 구간은 험난하며 가혹한 자연조건이 가로막았다. 산세가 험한 야블로노이산맥 , 세계최대의 호수 바이칼 호, 아무르강(흑룡강)이 피할 수 없는 장애물로 우뚝 버티고 있었다. 게다가 영하 40도를 넘나드는 지구상에서 가장 혹독한 추위와 영구동토가 죽음의 덫처럼 대륙 곳곳에서 잠복하고 있었다.

​가장 부족한 것은 노동력이었다. 8만9천명이라는 노동자가 동시에 고용되었는데 러시아인은 시베리아 동쪽에 거주하지 않았다. 값싼 임금의 중국인과 고려인(이주 한인)이 우수리구간과 자바이칼 난공사 구간에 주로 동원되었다. 그레도 부족한 인력은 군인과 죄수를 동원하는 방식으로 강행했다.

​농업국가인 러시아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막대한 예산이 필요했다.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8억 5500만 루블(현 시가 580억 달러, 한화 80조원 수준)을 동맹국 프랑스로부터 빌려 채권을 발행하게 된다. 이 금액은 현재 시점에서도 경악할 수준의 소요 자금이었다.

모스크바-첼라빈스크-노보시르스크-이르쿠츠크-하바롭스크-블라디보스토크 철도요도

아무르강을 건너 1860년 두만강 국경까지 남하한 러시아였다. 조선은 1884년 외교고문 뮐렌도르프의 건의로 러시아와 외교관계를 수립했으나, 러시아의 지정학적 영향력은 청 일의 견제 속에 비교적 느슨한 관계였다.

​1894년 청일전쟁으로 동아시아 안보지형은 심대한 지각변동을 겪게 된다. 전쟁의 승리로 동아시아의 새로운 패권자로 등장한 일본에 대한 러시아의 견제(삼국간섭)는 일본의 대륙진출을 원천봉쇄했다. 반면, 패전국 중국(청나라)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은 급격히 높아졌다. 1896년 조선에서도 일본의 위협을 피해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대피(아관파천)하며 친러정권이 수립되며 러시아에 깊이 의존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개통되면 러시아 군에 의해 일거에 급소를 찔린다는 국가적 위기감에 쌓인 일본은 대응책 마련에 부심했다. 일본의 강력한 반발 속에,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동아시아의 안보지형에 급격한 변동을 예고하며 기적소리를 울리고 다가온다.

다카이치 사나에

​최근 일본 여성수상 다카이치 사나에의 ‘대만 유사시 개입’ 발언은 동아시아에 새로운 긴장을 유발했다. 기다렸다는 듯 중국의 과격한 보복과 반응은 동아시아 패권경쟁이 언제든 폭발할 활화산임을 보여준다. 격랑에 흔들리는 현금의 극동 정세는 19세기 말 시베리아철도가 개통될 당시 상황을 조망하는데 매우 시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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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순

전 경찰청장, '이택순의 실크로드 도전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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