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라이프스타일세계

[이택순의 아무르 답사 22] 시베리아 횡단열차, 석양속으로

블라디보스토크역, 러시아의 전통과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고대하던 TSR(시베리아 횡단열차 Trans-Siberian-Railway)에 탑승하기 위해 블라디보스토크역 건물에 들어섰다. 건물은 작지만 우아한 외형은 우리의 서울역이나 일본의 도쿄역보다 더 귀족적이고 예술적이었다. 서양식 궁전처럼 생긴 돔형 역사는 원래 황제와 귀족들을 위한 문화 예술공간으로 건축되었다.​

역사 건물안에 장식된 니콜라이 2세 황태자의 황금색 부조상과 로마노프 왕조의 문양이 이 건물의 탄생을 말해주고 있었다. 1891년 5월 니콜라이 2세 체사레비치(황태자)가 역사적인 극동방문과 함께 기공식을 올린 것이다.

니콜라이2세 황태자와 왕조문장,복원된 역사다.

우아한 궁전의 외형과는 달리, 역에 출입하는 절차는 거칠기만 했다. 굳게 닫혀있는 역 건물의 출입문은 단 한 군데에 있다. 출입문을 열면 입을 꽉 닫은 검색요원이 막아선다. 여권이나 신분증을 꺼내들고 금속탐지기를 지나야 한다. 가방과 수하물은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X-레이 검색을 거쳐야 들고 갈 수 있다. 국내선 기차를 타는 게 이렇게 까다로운 일인가? 한번 역 건물에 들어왔더라도 잠시 역사 외곽으로 나가면 다시 검색대에 올라야 한다. 익숙하지 못한 외국인들은 깜짝 놀라기 마련이다. 몸이 오그라드는 느낌이다.​

왜 이런 엄격한 절차를 열차 여행객에 적용하고 있는가? 러시아 철도건설 초기, 제정 러시아에서 기차로 여행하는 것은 특권에 속했다. 귀족과 관리, 외교관, 군인과 황제를 지지하는 일부 유산자층에게만 허용된 권리였다.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경찰의 사전허가가 필요했고, 탑승 시 엄격한 신원확인 절차를 거쳐야 했다. 이런 점에서 러시아의 철도 역사는 서유럽의 철도 역사와는 매우 다른 발전 경로를 가게 된다. 서유럽 철도는 자유의 확산과 산업혁명의 동인이며, 민주 평등사회로 가는 정치혁명의 산실이 되었던 것이다.

시베리아횡단열차 기관차 모형. <사진 이택순>

제정러시아는 철도가 노동자와 반체제 세력의 거주이전의 자유로 인해 민주화와 혁명 수단이 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철도 이용은 국가적 목적을 위해 군사 및 통신(우편)과 물류수송 목적 등으로만 제한했다. 이 역사적 전통의 파급 효과일까, 소비에트 공산주의 사회의 페쇄적 유산일까? ​아니면 체첸 민족 분규 후 테러 방지를 위한 목적인지는 알 수 없지만, 철도 탑승에는 반동적 유령이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중국과 같은 공산주의 사회에서도 보기 드문 엄격한 통제다.

조선의 망명자와 독립운동가들은 이런 엄한 절차를 통과하며, 모스크바와 파리, 런던을 향해 가슴 졸이며 이 역사를 드나들었다. 1903년 만주지역으로 우회하는 동청철도가 연결되며,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전 구간이 임시 개통되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모스크바- 하르빈-블라디보스토크행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한 달에 2번 운행되었다. 아시아로 떠나는 외교관, 동양을 오가는 부유한 상인, 낭만적 여행자들이 주로 이용했다.

횡단열차 전 구간 탑승요금은 현재 가격으로 환산했을 때 1등석이 1800만 원, 3등석이 450만 원이라 하니 다시금 놀라게 된다. 여행 기일이 20일 이상 소요되며 중간에 휴식과 식사 등을 감안할 때 비용은 더욱 증가되니 여행은 상류층만의 특권이라 할 수 있었다. 1907년 이상설과 이준 등 헤이그밀사는 여비가 모자라 연해주의 교포로부터 모금해야 했다는 비화가 있다. 비싼 철도요금을 고려하면 사실로 보여진다. 일국의 외교사절이 여비가 부족했다니 믿고 싶지 않은 서글픈 조선의 역사다.

​물론 현대에 이르러서는 대량수송과 기술혁신으로 철도요금이 대폭 낮아졌다. 대략 3등석 25만원, 2등석 50만원, 1등석 150만원으로 대중화되었다. 소수 엘리트 계층의 전유물이 시민에게 개방된 결과이다. 비행기를 이용하면 시간도 빠르고(8시간), 요금이 이코노미 기준 30만원 정도이니 철도를 타는 사람은 필자와 같은 고전적 여행객 이외는 없을 것이다.

검소한 역사내부,평화로운 여행객들 <사진 이택순>

유라시아 대륙을 연결하는 대 허브인 블라디보스토크역의 청사는 검소함을 넘어 궁색함을 못 면하고 있었다. 관광객이 별로 없어 사진 촬영을 하는 동안 지장을 받을 일도 없었다. 작은 카페 한 곳이 손님도 없이 한가하게 문을 열고 있었다. 이 역사 안에 맥도널드나 스타벅스같은 자본주의의 불꽃이 피어날 수는 없었을까?

한국의 대기업을 유치하여 발전 계획을 수립한다면, 어마어마한 인프라를 갖추고 블라디보스토크 시민 다수를 취업시킬 수 있을 터인데 아깝기가 한량없다.

철도역에서 만난 러시아 군인과 세련된 여인, 그리고 필자

하지만 철도역은 역시 모든 물류가 모여드는 출입의 관문이었다. 평화롭게 보이는 서민층 한 가족이 담소하며 열차를 기다린다. 육군 군복 차림의 장정을 처음 보게 되었다. 전쟁의 부상병도 중간역에서 목격하게 된다. 시골 청년, 소수민족 청년들이 전쟁에 자원하는 경우가 많다 한다. 참전 후 그들에게 파격적 전쟁 수당과 복지, 주택 제공 등의 혜택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전쟁은 국력의 싸움, 경제력의 대결이라는 결론이다.

5번 탑승구 하바롭스크행, 1번 탑승구 모스크바행, 열차운행표

기념 촬영과 역사 내 문화 탐색을 모두 마쳤다. 드디어, 20시 01분 출발하는 하바롭스크행 열차에 탑승하기 위해 객차 번호를 찾아 차량문 앞에 섰다. 제복을 입은 아리따운 러시아 승무원이 엄숙한 표정으로 탑승객의 명단을 확인하고 있다. 다시 패스포트와 승차 티켓을 내밀었다. 벌써 몇 번째 확인인가? 탑승 오케이!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굳게 닫힌 문이 열렸다. 내일 새벽이면 우리는 극동의 불꽃, 하바롭스크에 도착한다.​우리는 4인실 2등석(일명 쿠페)으로 상하칸에 1인씩 4명이 출입문이 있는 방실을 배정받았다. 2인 1실인 1등석(륙스/럭셔리)과 칸막이가 없는 복도형 개방식 침대석인 3등석(플라츠 카르타)의 중간 등급이었다. 중간에 창문을 통해 외부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게 되어있다. 계단을 올라야 하는 2층 석보다는, 하층 석이 이동이 편해 요금이 비싸다는 설명이다.

누가 우리와 같이 여행을 할 것인가! 기대와 설렘도 잠시, 샤워실을 빨리 이용하기 위해 제공된 타월과 내의를 감고 샤워실로 달려갔다. 온수가 콸콸 쏟아지니 몇 차례 겪어야 했던 검문검색의 불쾌감이 씻은 듯 사라진다.

시베리아횡단열차 하바롭스크행

개운한 마음으로 객실로 들어가 편의복으로 갈아입었다.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아직도 동승객이 오지 않는다. 안내하던 송 선생이 말한다. “아 행운이에요! 가끔 이런 일이 있어요! 2등석 요금 내고 일등석으로 가시는 겁니다.” “아 그렇군요! 우리는 아리따운 러시아 여인이라도 탈까 기대했는데…”

창랑 장택상의 회고록에 의하면, 1915년경 시베리아 열차에서 만난 러시아 여인이 눈치도 보지 않고 반 나체로 옷을 갈아입어 부끄러워 자기가 얼굴을 돌렸다고 한다. 창랑은 이 여인의 도움을 받아 런던으로 무사히 갈 수 있었다.

승무원 빅토리야, K-팝 마니아였다.

저녁식사용 도시락이 도착했다. 야간 이동이어서 식사가 제공되는 것이다. 항공기 이코노미 수준의 식사였으나, 러시아의 경제 상황을 감안하면 무난한 수준이라고 보여진다. 러시아 미녀 대신 객실 담당 승무원인 ‘빅토리야’가 우리방을 방문했다. “탑승을 축하하며, 좋은 여행을 기원한다”며 한국에 대한 깊은 관심과 호의를 표한다.

의례적 방문이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한-러 관계가 최근 냉각된 것에 비해 민간관계는 아직도 매우 우호적인 분위기임을 감지했다.

우수리구간- 블라디보스토크-우수리스크-하바롭스크

열차는 아프리카의 마라톤 선수처럼 출발선을 힘차게 뻗어나간다. 우수 어린 창문 속으로, 석양이 누워버린 대륙의 저녁이 어슴푸레 다가왔다.

열차는 도시를 벗어났다. 그리고 시베리아의 망망대해 야경과 자작나무가 빽빽한 수림지대로 빨려 들어간다.

철도연변의 자작나무숲, 시베리아의 영혼 자작나무

이 쯤되면 푸시킨의 시 한 구절이라도 기억해 내는 것이 시베리아 여행자의 도리가 아닐까?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픔의 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늘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에 가고 지나간 것은 다시 그리워지나니…

​우리를 태운 열차는 대륙의 심장부를 향해 어둠을 뚫고 달려나갔다.

이택순

전 경찰청장, '이택순의 실크로드 도전기' 저자

필자의 다른 기사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본 광고는 Google 애드센스 자동 게재 광고이며, 본 사이트와는 무관합니다.
Back to top button